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8년 1월 3일 09시 49분 등록

“장난하지 마세요!”

갑자기 거울에서 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던 중에 불이 꺼진 것이다. 나는 당연히 태규가 장난친다고 생각해서 불이 켜라고 말했다. 우리는가끔 화장실 불을 끄는 장난을 치곤한다.

“아빠, 무서워요.”

불은 켜지 않고 오히려 무섭다고 나를 찾는다. 집안의 모든 불이 다 꺼졌다. 앞을 볼 수가 없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것을 기다려 전등을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무섭다고 이리저리 허둥대고 있었다.

“전기가 나간거야. 전등을 찾을 동안 너무 겁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렴.”

아내가 전등을 찾아 불을 밝혔다. 일단 우리 집만 전기가 나간 것인지 확인부터 하였다. 두꺼비집의 퓨즈는 그대로 인 것을 보니 우리 집만 나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 주위를 살폈다. 집 주변 전체가 어두웠다. 태양전지로 작동하는 가로등만 도로를 밝히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별빛이 오히려 뚜렷하게 보였다. 몽골의 밤하늘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양평의 밤하늘도 꽤 아름다운 편이다.

집에 있는 초에 불을 밝혔다. 촛불로 밝혀진 집 안 분위기가 오히려 따스한 기운을 느끼게 하였다. 가끔은 촛불을 켜는 것도 좋을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지 무섭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기가 나가고 나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날은 추운데 작동하던 보일러도 멈췄고, 전화도 걸리지 않았고, 심지어 수족관의 물고기와 거북이도 죽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히터기가 작동하지 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어진 사람들이 일순간 전기가 없어지자 아무런 힘을 쓰지도 못하다니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우리들은 중요하지만 익숙해진 것들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소홀하게 대할 때가 많다.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사용하는 물건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익숙해지게 되면 그의 존재를 잊어버려 그의 필요성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가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 가족은 매우 소중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공기처럼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 그의 가치를 놓쳐버린다. 가까운 존재일수록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소홀히 대한다.

‘뼈다귀를 문 개’의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개 한 마리가 입에 뼈다귀를 하나 물고 다리를 막 건너다가 다리 아래 수면에 비친 자기모습을 보게 되었다. 뼈다귀 하나에 만족하지 못한 그 개는 탐욕스럽게도 물속의 개가 물고 있는 뼈다귀도 마저 갖고 싶어졌다. 개는 강물을 향하여 사납게 짖었다. 그러면 그 놈이 겁을 집어먹고 뼈다귀를 버리고 갈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에 자기가 물고 있던 뼈다귀만 물에 빠져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들은 부족한 것에 관심을 갖고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반면, 가진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소홀히 대한다. 마치 우화 속의 욕심 많은 개처럼 말이다. 넘치는 것이 있으면 부족한 것이 있기 마련이고, 부족한 것을 갖고 싶은 사람의 마음 또한 당연한 일이다. 부족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어야 성장이 있고 발전이 있다. 다만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에 감사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소중히 대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무자년 새해가 밝았다. 세월 감을 탓하지 말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됨을 감사히 여기고, 새해에도 꿈과 동행하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IP *.212.167.5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칼럼 #18 스프레이 락카 사건 (정승훈) [4] 정승훈 2017.09.09 1661
5205 마흔, 유혹할 수 없는 나이 [7] 모닝 2017.04.16 1663
5204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1717
5203 9월 오프모임 후기_느리게 걷기 [1] 뚱냥이 2017.09.24 1747
5202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1751
5201 2. 가장 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 2018.03.05 1779
5200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1781
5199 7. 사랑스런 나의 영웅 file [8] 해피맘CEO 2018.04.23 1790
5198 11월 오프수업 후기: 돌아온 뚱냥 외 [1] 보따리아 2017.11.19 1796
519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1798
5196 12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2.17 1800
5195 일상의 아름다움 [4] 불씨 2018.09.02 1806
5194 칼럼 #27)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법 (윤정욱) [1] 윤정욱 2017.12.04 1809
5193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