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香山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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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서로 다른 두 해가 맞닿는 자리에서 우리는 수 많은 것들을 쏟아내곤 합니다. 가는 해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앞서고 다가오는 해에 대한 포부와 기대가 그 뒤를 잇습니다.
어떠세요? 2007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한 해였나요? 또 2008년은 어떤 한 해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저에게 2007년은 예년과는 조금 다른, 진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처지에 분노하고 절망하던 제가 이 곳 변경연에서 변화의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원 지원서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던 한 해가 여러 가지 그림 같은 사연들로 가득 채워지고 이제 새로운 기수를 모집한다는 글과 함께 저물었습니다.
거짓말처럼 힘들었고, 꿈처럼 행복했던 일 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일 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정리해두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새해에는 그 중에 무엇을 어찌 이어가야 할지 나름의 계획을 차곡차곡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말랑말랑해진 가슴으로 더듬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저녁, 그러니까 12월 30일 밤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이라고 말하고 보니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아무튼 아내와의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치한 싸움의 대표주자인 부부싸움은 언제나 그렇듯이 별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서 불이 붙어 점차 주변의 일들도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했던 그 자리에서 잘 다독여 마무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이 점차 커지면서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습니다.
덕분에 지난 한 해의 좋은 일들을 정리해보고자 했던 제 마음과는 다르게 아내와 제 가슴 속에 아쉽게 맺혀있던 서운한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엔 뭐 별게 있겠나 싶었는데 막상 물꼬가 터지니 잘도 쏟아져나옵니다. 그렇게 교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싸움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그럼 우리 헤어져!"
지난 7년을 연인으로 또 부부로 살아오면서 제법 많은 다툼을 넘어왔지만 한번도 이별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던 아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충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카운터를 제대로 얻어맞은 저는 거의 그로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완벽한 수세에 몰렸습니다. 맹렬히 내뿜던 독설을 거두고 급히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승기를 잡은 아내는 기세를 몰아 저를 몰아세웠습니다.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망쳐가며 밤이 깊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참 많이 다릅니다. 말다툼을 하고 나면 그 치열함이 잦아드는 순간부터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저와 감정의 앙금이 자연스레 가라앉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한 아내 사이에서는 언제나 마음 급한 제가 약자입니다. 며칠만 그냥 시간에 맡겨두면 해결될 일을 빨리 풀지 못해 속이 타 들어가니 시간은 언제나 아내의 편입니다.
이번엔 아주 제대로 화가 난 아내를 끝내 달래지 못한 채로 2007년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여전히 화가 난 아내의 손에 아이를 맡기로 회사로 향하려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회사에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결국 은남 누나가 베풀어준 여성 심리에 대한 조언을 새기며 연신 문자 메시지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달 보너스 받은 거 몽땅 다 줄게. 화 풀어라.'
'내가 아주 각서를 쓸게. 응? 이제 그만 좀 하자.'
'내가 무릎이라도 꿇으마. 오늘이 2007년 마지막 날이야.'
수도 없는 전화질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자 세례에도 아내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슬슬 화가 나기도 하는 사이로 문득 엉뚱한 생각이 새어 들었습니다. 소중한 이와 단절되자 한 해 동안 이룬 것과 앞으로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시시해 져버렸습니다. 계속 앞으로 걸어갈 이유가 희미하게 사라졌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이룬 것과 이룰 것에 마음을 빼앗겨 주변에 잔잔히 있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과 더 열심히 살아갈 것만 생각했지 그런 나를 그렇게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조심스레 자리를 피해주던 아내의 내조를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나 봅니다. 항상 곁에 있어주어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존재들과의 불협화음 속에서야 겨우 무엇이 정말 필요하고 또 중요한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폭탄 문자 세례에도 끔쩍 않던 아내와 화해한 데는 구구절절 한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 쓰는 이 글에서는 털어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날 늦게야 우리 부부는 와인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조금은 서먹한 가운데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시시해졌던 2007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2008년을 살아갈 힘을 충전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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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2007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한 해였나요? 또 2008년은 어떤 한 해로 맞이하고 계신가요?
저에게 2007년은 예년과는 조금 다른, 진한 한 해가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처지에 분노하고 절망하던 제가 이 곳 변경연에서 변화의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원 지원서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던 한 해가 여러 가지 그림 같은 사연들로 가득 채워지고 이제 새로운 기수를 모집한다는 글과 함께 저물었습니다.
거짓말처럼 힘들었고, 꿈처럼 행복했던 일 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일 년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단단히 정리해두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쳤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새해에는 그 중에 무엇을 어찌 이어가야 할지 나름의 계획을 차곡차곡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말랑말랑해진 가슴으로 더듬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저녁, 그러니까 12월 30일 밤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이라고 말하고 보니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아무튼 아내와의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치한 싸움의 대표주자인 부부싸움은 언제나 그렇듯이 별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서 불이 붙어 점차 주변의 일들도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했던 그 자리에서 잘 다독여 마무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일이 점차 커지면서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습니다.
덕분에 지난 한 해의 좋은 일들을 정리해보고자 했던 제 마음과는 다르게 아내와 제 가슴 속에 아쉽게 맺혀있던 서운한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엔 뭐 별게 있겠나 싶었는데 막상 물꼬가 터지니 잘도 쏟아져나옵니다. 그렇게 교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싸움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그럼 우리 헤어져!"
지난 7년을 연인으로 또 부부로 살아오면서 제법 많은 다툼을 넘어왔지만 한번도 이별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던 아내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 충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카운터를 제대로 얻어맞은 저는 거의 그로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완벽한 수세에 몰렸습니다. 맹렬히 내뿜던 독설을 거두고 급히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승기를 잡은 아내는 기세를 몰아 저를 몰아세웠습니다.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망쳐가며 밤이 깊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참 많이 다릅니다. 말다툼을 하고 나면 그 치열함이 잦아드는 순간부터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저와 감정의 앙금이 자연스레 가라앉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한 아내 사이에서는 언제나 마음 급한 제가 약자입니다. 며칠만 그냥 시간에 맡겨두면 해결될 일을 빨리 풀지 못해 속이 타 들어가니 시간은 언제나 아내의 편입니다.
이번엔 아주 제대로 화가 난 아내를 끝내 달래지 못한 채로 2007년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여전히 화가 난 아내의 손에 아이를 맡기로 회사로 향하려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회사에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결국 은남 누나가 베풀어준 여성 심리에 대한 조언을 새기며 연신 문자 메시지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달 보너스 받은 거 몽땅 다 줄게. 화 풀어라.'
'내가 아주 각서를 쓸게. 응? 이제 그만 좀 하자.'
'내가 무릎이라도 꿇으마. 오늘이 2007년 마지막 날이야.'
수도 없는 전화질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자 세례에도 아내는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슬슬 화가 나기도 하는 사이로 문득 엉뚱한 생각이 새어 들었습니다. 소중한 이와 단절되자 한 해 동안 이룬 것과 앞으로 이루려고 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시시해 져버렸습니다. 계속 앞으로 걸어갈 이유가 희미하게 사라졌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이룬 것과 이룰 것에 마음을 빼앗겨 주변에 잔잔히 있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과 더 열심히 살아갈 것만 생각했지 그런 나를 그렇게 살도록 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조심스레 자리를 피해주던 아내의 내조를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나 봅니다. 항상 곁에 있어주어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존재들과의 불협화음 속에서야 겨우 무엇이 정말 필요하고 또 중요한지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폭탄 문자 세례에도 끔쩍 않던 아내와 화해한 데는 구구절절 한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 쓰는 이 글에서는 털어놓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날 늦게야 우리 부부는 와인 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조금은 서먹한 가운데로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시시해졌던 2007년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2008년을 살아갈 힘을 충전했습니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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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그런 걸 구렁이 담넘어 가듯 한다고 하지. 아주 괜찮은 도주법이기도 하고.... 결혼 7년이 되어 종윤이가 그걸 익혔구나. 내공이 한 갑자 늘어난 것이다. 연구원이 많이 도움을 준 모양이다.
답자기 소정이 생각난다. 지난 송년회때 내가 물었어.
"너 언제 결혼하니 ? "
"모르겠어요. 남자친구가 철이 없어서. "
나중에 중요한 말을 그 애에게 잊고 말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지금 해 주마.
"소정아, 남자는 철들지 않아. 철들때 기다리다간 너 할미된다"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라는 말은 윌 듀란트가 했지. 그래서 길이 좀 덜 들었어. 가끔 속을 썩이지. 그래도 귀엽지 않는냐, 숲속의 향기야.

종윤
옹박아~ 잘 아는구나. 그래, 싸우면서도 같이 성장하는거지. 싸웠으니 너랑 나는 서로 맞지 않다고 등돌리고 멀어지는 대신 그렇게 같이 또 커가는거지. 그게 부부고,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문자는 말이지. 이 글에다가 너무 원문 그대로 말랑말랑하게 써놓으면 형평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 써놓은거야. 나름 성의를 담아서 썼지. ㅎㅎ 장미차 좋더라. 흠집 난 몸 잘 챙겨라.
숲속의 향기~ 다 그런거쥐~ 보너스는 다 줄거고, 나머지는 좀 봐주세요. 작년 한 해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할께.
사부님~ 전 아직 멀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결혼 30년만에 익히신 그 놀라운 신공을 이제 겨우 5년차인 제가 알겠습니까? 언제나 철이 들런지... 과연 철이 들기는 할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문자는 말이지. 이 글에다가 너무 원문 그대로 말랑말랑하게 써놓으면 형평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 써놓은거야. 나름 성의를 담아서 썼지. ㅎㅎ 장미차 좋더라. 흠집 난 몸 잘 챙겨라.
숲속의 향기~ 다 그런거쥐~ 보너스는 다 줄거고, 나머지는 좀 봐주세요. 작년 한 해 고마웠고, 앞으로도 잘 부탁할께.
사부님~ 전 아직 멀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결혼 30년만에 익히신 그 놀라운 신공을 이제 겨우 5년차인 제가 알겠습니까? 언제나 철이 들런지... 과연 철이 들기는 할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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