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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4일 13시 09분 등록
한 해 동안 어떻게 글쓰기를 하여왔나를 생각해보자니, 어쩌다가 연구원까지 하게 되었을까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2007년 한 해는 전혀 예측하거나 준비하지 않은 채 시간이란 놈에게 몸을 내어맡기며 살아본 한 해였던가 싶다. 오래 동안 속앓이 하듯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끌탕만 해오던 그녀에게 변.경.연 이라는 낯선 친구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중년이 뉘엿뉘엿 해거름을 향해 달리면서 문득 마음이 초조해졌던 것이 사실이리라.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에 저무는 석양빛 아래를 홀로 길을 헤매듯 걷는 여자의 서글픔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땅거미가 내려앉는 벌판을 이리 저리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부끼듯 흩어지고 있었다.

현실이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는 아득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만큼이나 덧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녀에게는 이미 별은 반짝이는 무엇이 아니었고, 더 이상 꿈꾸며 밤하늘을 수놓는 요정들의 향기로운 잔치는 더욱 아니었다. 그녀의 고된 삶만큼이나 검은 하늘에 그저 점점이 박힌 알 수 없는 의미, 전혀 상관이 없는 무심함 그 자체였을지 모를 일이다.

사랑할 수 없고 받지 못하는 모진 인연만큼이나 그녀의 인생길도 답답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개 자욱한 날에 홀로 떠도는 노숙자처럼 그녀의 10년 동안의 방향성 없는 인생길에 대해서도 무언가 결단을 내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딴엔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노라 내심 스스로를 갈무리하며 위로하지만, 외로움이기에 앞서 여전히 암흑 같고 불투명한 인생길에 대한 온갖 상념들과 답답함ㆍ불안함ㆍ초조함 등으로 가파른 고개를 넘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남은 인생의 안정, 왜 그렇게 현실에 숨이 막히도록 꽉 틀어박혀서는 기지개 한 번 크게 펴지 못하고, 세상 한 번 활개치고 돌아보지 못하면서 그토록 안정에 목숨을 걸듯 얽매어 살아가고 있었을까? 하여튼 그녀는 그녀가 가져야 할 것보다 많은 양,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무조건 더 나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며 정신적 빈곤으로 아사직전의 찌들고 비틀어진 사막의 구렁텅이 속에 처박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재미라기보다 의무였고 끊임없는 압박감에서 잠시도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더욱 옥죄이며 달달볶을 일들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래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살 수 없을 거야. 너는 이제 곧 힘이 없어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해야만 하고, 더 오래 고용상태를 지속할 수 있는 안정이란 놈을 표방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야만 해.’ 그녀는 하루에도 수없이 그녀 안의 그녀에게 악마처럼 흡혈귀처럼 들러붙어 속삭여 댔다. 쉴 틈이라고는 줄 수 없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태와 게으름일 뿐이야.’하며 그녀 스스로를 하루 종일 쇠뇌하기에 바빴다.

마침내 그녀는 이런 저런 갈등과 고심 중에 꿈 프로그램에서 사부님께로부터 함자만 알게 된 부산의 초아선생님께로 그녀 인생의 혹은 한 해의 운세를 점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혹을 뗄 묘안을 얻으러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싱겁기 짝이 없었다. 성미 급한 그녀가 그녀 인생을 대충 말씀 드렸고, 우선 한해를 어떤 계획을 세워 살아야 할지 3가지 생각 중에 어느 것이 좋을 지를 3지 선다형 객관식으로 여쭈었다. 초아선생님은 그녀의 설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신 듯하였다. 그중에 한 가지가 비슷했고 이윽고 말씀해 주셨다. 그녀도 거기까지는 수긍을 하였다. 그런데 대뜸 ‘작가’를 해보라고 하셨다. 아뿔사! 작가라니....... . 이 나이에 이제 와서 무슨 작가씩이나? 하는 심사로 그녀는 시큰 둥 하였다. 어쩌면 정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나 여기지 않았을 런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전혀 납득할 수조차 없는 말씀만 듣고 혹을 떼기는커녕 도리어 혹 하나를 붙여가지고 울산의 친구 집이랑, 포항의 운제 어당팔 김달국님을 찾아뵙고 그 예쁜 집에 초대까지 받고 조언과 덕담을 나누었으며, 천안의 <마실>에까지 들러 자로 박노진님을 만나 진수성찬에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고 며칠 걸려 상경하였다. 올라와서 변.경.연 홈피를 방문해 보니 웬걸, 초아선생님께서 그녀가 부산을 다녀갔노라고 솔직하게도 쓰셔서 글이 올라와 있지 뭔가. 그래서 그녀는 사실 그 날 이후로 그동안의 변.경.연의 역사에 전무한 홀로 사는 여인의 정체와 절박함과 어설픔을 만천하에 고백하며 살기 시작하게 되었다.

기대한 것도 어떤 작심을 하고 덤빈 것도 아니지만 변.경.연은 그렇게 그녀에게로 다가왔고 그녀 역시 변.경.연을 친구처럼 의지하며 생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 전략도 없었다. 정말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녀의 마음과 글이 가는대로 실어 옮겼을 뿐이었다. 당시 근래에 보기 드문 현상이었는지 여기저기서 도대체 그녀가 누구냐고 들 궁금해 했다고 해야 할까 어리둥절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늦바람이 무섭듯이 생전 처음으로 변.경.연을 만나 그 흔하디흔한 채팅 한 번 혹은 메신저 한 번 안 해본 솜씨로 변.경.연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리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녀가 오늘날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문화대학에서 연구원활동까지 한 개기가 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문득 감회가 새롭다. 선배 하나는 하여튼 보기 드문 인물이라고 평하여 주었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무성한 조언과 채찍과 경계와 우려 속에서도 어쨌든 여태까지 더군다나 훌륭하지도 않은 글을 가지고 버티어냈으니 그 조화를 모르겠다고 들 한다.ㅋ

그녀는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잘 쓰려고 하지 않았고 보여주려고 욕심내지 않았다.
그럴 만큼의 여유조차 없는 그녀였다. 날마다 근심걱정이 판을 치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딴에 조심한다고 하였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녀의 환한 웃음이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는 정반대로 그녀의 내면은 날마다 징징거리고 있었다. 잘해도 혹시나 하는 염려가 그녀를 놔두지 않았고 못하면 못해서 안달했으며, 미리부터 조바심치는 데는 그녀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만큼 가히 병적 증세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한가롭지 못하였다. 다행이 타고난 천성적인 낙천적 기질 만이 유일한 숨통이었을지 모른다.

욕심은 전체 연구원에게 누가 되거나 빠지기 않기 위한 성의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녀 특유의 한과 넋두리가 담긴 일기 같은 글이었고, 자신만의 공개된 비밀노트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허물을 벗어나갔고, 그러한 가운데 때로는 흐느꼈고 때로는 성내면서 몸부림을 한껏 쳐댔다.

뛰는 말을 올라타듯 여러 경쟁자들과 일제히 경주가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잔뜩 겁먹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의 매끄럽고 조리다운 글 앞에서 오래도록 절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칸을 채워나가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더러 조언들이 도리어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그녀 스스로의 감정과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글쓰기를 계속하였다.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고 어느 날은 하염없이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녀는 그것을 애써 숨기려 하거나 미화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갖지 못하는 어찌 보면 바보 멍청이같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연유로 아직도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녀는 이 과정을 사랑하는 듯하다. 도망가지 않는 친구, 늘 곁에 붙어 있는 친구로서 그녀의 글쓰기는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만났다하면 주절주절 잘도 떠들어 대니 말이다.

언젠가 그녀가 변.경.연 어딘가에 변.경.연과 결혼하였노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녀의 성장을 지켜봐주는 든든한 나무 같은 변.경.연은 그녀에게 연구원 타이틀은 하나의 약속일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가운데, 글을 나누기위한 학습의 시간이었을 뿐이고 사실은 벗과 혹은 스스로와의 소통과 화해를 통한 더 나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모색이었다는 것을 내심 훈훈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한다.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고자 꿈꾸었던 글쓰기, 다소라도 나아졌을 맞춤법 하나 철자 하나가 정겹다. 무엇보다 이 시간까지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이 과정과 암암리에 결속된 굳은 언약에 감사한다. 우리는 이 과정동안 많이 아프기도 했고 힘겨워 했으며, 또 여러 일상과 병행하느라 갖가지 어려운 고비들을 넘겨야 했다.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 준 아름다운 시간들을, 나아가 이 과정이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나은 과정으로 꽃피워져 나가기를, 먼저 길을 걸오 온 사람으로서 감히 바래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경주, 그러나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는 너나없이 다짐하며 내색하지 않은 우리 마음 가득 우정과 신뢰가 쌓여가고 있다. 이 시간을 거쳐 오는 동안 더 많은 이해와 성찰의 시간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글쓰기와 함께 늘 새롭고 신나게 시작되어 가고 있음을.

아직도 작가라는 말은 그녀에겐 무지하게 낯설기만 하다. 감히 꿈도 꿔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수행한 이상, 그녀는 과제만은 완수하고 싶어 한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그녀의 저서를 통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고 했지만, 무덤까지라도 가서 써야만 할 것 같기도 한 그녀다. 어줍잖게 시작된 그녀의 글쓰기라도 연구원 한 해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성장이 되었길 기대해 보며, 꾸준한 글쓰기로 그녀 내면의 아름다운 일상적 취향으로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는 가운데, 나아가 죽어도 후회스럽지 않을 그녀 인생의 혁명적 글쓰기를 해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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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8.01.04 19:35:50 *.131.127.98

써니야!

나는 일 년동안에 변해버린 니가 부럽다. 아노...?

Aza Aza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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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2008.01.04 23:15:21 *.70.72.121
동정표 감사 하고만유.

난 말이유,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했으면 좋겠시우.

오래 시간이 지날 수록 '아, 그때 그랬었지' 하고 생각날 것만 같아유.

책은 몰러유.

나탈리 골드버그가 한 5년 무조건 쓰라네유. 쓰기만 해도 사람이 된다나 뭐라나.

바람 산이나 바람 나지 마유. 나는 어제도 써니 오늘도 써니 내일도 써니구먼유.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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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1.05 07:42:44 *.72.153.12
제작년 꿈벗 10기로 만나서 뭐 이런 사람이 있노 했다.
3기 뽑는 레이스를 할때는 하고 싶으면서도 왜 이리 못한다 그러노 했다.
3월 남해에서 사부님께 절 할때 난 그냥 놀래서 하~ 했다. 충격이었다.
4월 5월 자신의 상처를 안고서 어찌할 줄을 몰라 놀란 새끼 고양이 마냥 보듬어 주려는 사람 할퀴어 대서 안타까웠다.
6월 7월 속에 붙는 열로 변경연에 불을 지르는 것을 보고 놀랬다.
8월 아무방향이나 말달리고, 신나게 노는 언니를 보고 좋았다.
그리고 그 후 햇살로 따뜻하게 하는 Ssunny가 됨으 보고 좋았다.
10월 11월 언니가 가끔은 징징거리고 아파서 안타까웠다.
언니가 웃는 모습을 보니 좋다.

많이 웃고 또 울고, 어느새 울었는지 모르게 말갛게 씻고 다시 웃고 하는 써니가 됨을 보고 옆에 있는 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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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언니
2008.01.05 07:51:59 *.70.72.121
정화야, 나가 그래부렀냐?
기억 상실 맨코로 아무 생각이 안 난다야, 이거이 뭔 일이다냐. 미치겠다.
냉중에 칼럼 찾아 읽어보꾸마. 어찌된 영문인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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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8.01.05 09:22:18 *.253.249.10
"사람보는 걸 평생 해 왔고 그게 나의 직업"
현재의 상태에 불안을 느끼고 광주에서 교원 임용시험을 치러고 날 처음 찾아 온 목적은 우짜몬 돈을 벌수 있을 건지가 목적이 였을 것이다. 난 돈은 벌수 없으니 글쟁이가 돼라 했다. 그때 써니의 말이 지금도 생각 난다.

"선생님 아들이 절 찾아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난 그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다. 진솔한 모정을 보았기 때문 이다.

나는 써니에게
"아들이 찾아 오거든 ^엄마의 책^을 쥐어 주라 했다."

써니야 정말 고생했다.
이제는 너 마음데로 글을 쓰라. 누구를 미친년이라 해도 좋고, 대통령 똥구멍을 찔러도 좋타. 너가 가진 감성으로 마구 써라.
지난 일년동안 도(道)를 익혔으니, 이제는 예(藝)의 기세를 펼쳐라.

지난해는 어린애에게 칼을 쥐어 주었다면 지금은 훌륭한 요리사의 칼이다. 잘 갈아, 잘 들수록 명작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오호 하늘이시여 !
명마가 나갑니다. 그에게 운을 주어서 깊은 심연의 이념을 펼칠 기회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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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올림
2008.01.06 01:07:43 *.70.72.121
오늘은 아니 어제는 이른 점심을 사부님과 함께 하고 수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새해 첫 수업이었는데 한 해를 견뎌온 연구원 가족들의 정말 화기애애한 가족 모임 후 약간 기분이 달뜬 상태에서도 정신을 바싹 차리고 모두가 어찌나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던지요.

사부님께 맛있는 점심 대접도 받았거니와 정초에 여유 있게 일찍 만나서 덕담을 나누며 하는 수업은 완전히 뽕맛 저리가라 였습니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늘 저희를 음으로 양으로 지켜봐 주시며 더러 악역(?)까지도 마다 않으시고 격려해 주시고 보듬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항상 저희와 함께 하시면서 든든한 변.경.연의 파수꾼이 되어 주시기에 저희가 늘 편안합니다. 새해에도 변함없는 사랑 퍼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가내 두루 평온하시길 손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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