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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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우리들처럼 사부님께서도 우리들의 글에서 뿐만 아니라 책 속에서 우리들을 읽어 내셨다. 독서 가운데 우리들을 느끼며 읽으셨다. 오늘 책을 읽으며 이제야 이 생각에 미친다.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를 3번 부인했다.
늘 돈, 돈하며 현실에 발목 잡혀 글쓰기에 핑곌 대는 나는 얼마면 책을 쓰기 전에, 아니 내 일생의 허욕을 위하여 사부님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100억? 1000억? 조?
100억쯤은 일찍이 내 인생에서 꿈꿔본 숫자이다. 몇 년 전 강남의 초등학생들에게 얼마 정도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슴없이 100억 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왔었다. 따라서 얼마 안 되는 돈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1억이나 100억이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20대에 꿈꿔본 숫자이지만 나는 더 불리지를 못하였다. 프로골퍼인 최경주씨는 100억을 목표했으나 200억을 넘게 초과달성하자 얼마 전 재단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물론 돈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있으면 더 긴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나의 꿈은 쪼그라들었고 어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실패한 내 인생을 만회하는 길은 돈 뿐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변.경.연을 알고부터 그리고 연구원을 하고부터는 더욱 정당하고 옳지 않은 돈은 꿈꿀 수가 없어졌다. 튀겨도 보고 둘러치기도 해봐야 무언가 남는 것이 있을 텐데 all stop이다. 젠장... .
그래서 몇 푼 안 되는 나의 자산은 줄어버리고 말았다. 요행은 복권밖에 바랄 것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좋은 시절을 만들어야 하는 판에 책만 읽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한동안 이것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갈등요인이기도 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재능 없이 살아날 수 없고, 여전히 돈 없이 행세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한 귀퉁이에 근근이 들러붙어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헤일 수 없고 하염없이... .
얼마면 사부님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내게 얼마를 주면 그 돈 가지고 배터지게 잘살 수 있을까? 아니, 탱자탱자하면서 글만 쓰고 살아갈 수 있을까 말이다. 모두가 제각각 부의 기준은 달라서 애매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으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망상을 해보곤 하다가 멈추고는 했다. 미친X 지랄하고 또 미친 짓거리를 하는 구나 지탄 받을 것이 뻔하고, 나 자신도 당위성을 찾지 못해 혼자 김빠진 맥주처럼 골머리를 두드리며 산발을 하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오늘 책을 읽다말고 불현듯 다시 생각을 들고 나왔다. 책을 읽으며 내내 같은 생각을 하며 읽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내 일상 가운데 모순의 두 개의 축이었을까?
현실과 이상, 나와 꿈 사이에서. 아니, 지금과 피안사이에서. 변명과 낙관사이에서.
그럴 때마다 진실로 두려운 것이 있었다. 내가 혹시 도리어 현실감을 상실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글쓰기가 또 다른 도피로 향하는 현실적 부적응에 대한 가치부여가 아닐까 하는 염려.
수없이 내게 삿대질로 퍼붓는 지인들의 질문 가운데, 그래서? 그 과정을 하고 나면 무엇이 주어지는데? 어떤 결과를 얻고 무슨 이득이 남는가를 물을 때, 나는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종종 걸음만 치고 있었을 뿐, 큰 밑그림을 그리지 못해왔고 겁내왔던 것이리라.
그러나 한 성깔 하는 나, 한다면 하는 나,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나, 아직 펴보지 못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외치고 싶어 한다. 어디에? 세상이겠지. 그러나 준비가 안 되었다면 너 혼자라도 쓰고 죽으라고, 사부님은 내가 이 나라 대통령께 바라고 내 사랑에게 말하는 그 말을 내게 도로 일러 주셨다. 너도 죽어라. 너도 죽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너도 겁내지 말거라. 네가 정작 밀알이, 씨과실이 되고 싶으면 너답게 죽기를 무릅쓸 방법 밖에는 없다. 네 스스로의 씨과실이 되고, 네 스스로의 밀알이 되고, 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르신다.
도대체 사부님은 몇 번을 죽고 또 죽으셨길 레 이렇게 느끼게 하실 수 있으실까?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사부님의 죽음을 목격한다. 부적응을 창조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골백번이고 수천 번이고 죽고 또 죽어왔음을. 결코 일상을 게으르거나 나태하게 퍼질러 놓지 않으심을.
이제 방법이 없다. 나도 따라 죽을 수밖에. 죽지 않고서 건강하게 살아날 수 없는 나이기에.
내가 사부를 팔아넘기고 일신의 평안을 누리고자함은 이완용의 무리들이 일본에게 조선을 팔아넘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일본의 앞잡이로 협잡꾼 노릇을 하지 않았던들 죄 없는 백성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가거나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이 일신의 영욕과 타협하지 않았던들 이 나라 이 땅의 우리 삼천리금수강산이 그토록 못이 박히는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죽었더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살았더라면, 적어도 내 아이들이 부모로 인해 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조나 경 단위의 돈을 탐하지 않는다면 변.경.연이 오래도록 맑고 밝게 동방의 빛을 낼 것이다. 그와 더불어 모두가 빛나고 지구촌이 하나 되는 어울림과 상생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이것이 우리의 COREANITY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스승을 팔아넘길 수가 없다. 등을 칠 수가 없고 배은망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되먹지 못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수치를 무릅쓰고 글쓰기를 해볼 것이다.
단 한권도 팔리지 않는 책, 쓰레기를 모은 글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써볼 것이다.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불꽃처럼 영롱한 혼신을 쏟으리라.
두려워 말라, 인생아. 날마다 물어보자. 너는 스승을 얼마면 팔아넘길 것인지를.
얼마면 성에 찰 것인지를.
.........................................................................................................
IMF, 모두가 망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많았음을,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 이제는 좋은 시절 다갔어. 이제는 늦었어. 라고 했지만 여전히 기회는 살아 있었고 죽은 것은 노력하기보다, 시도하기보다 체념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시든 한숨뿐 이었음을.
망상을 통한 망발을 하였습니다. 저의 허물을 벗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IP *.70.72.121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는 예수를 3번 부인했다.
늘 돈, 돈하며 현실에 발목 잡혀 글쓰기에 핑곌 대는 나는 얼마면 책을 쓰기 전에, 아니 내 일생의 허욕을 위하여 사부님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100억? 1000억? 조?
100억쯤은 일찍이 내 인생에서 꿈꿔본 숫자이다. 몇 년 전 강남의 초등학생들에게 얼마 정도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슴없이 100억 이라는 숫자가 튀어나왔었다. 따라서 얼마 안 되는 돈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1억이나 100억이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20대에 꿈꿔본 숫자이지만 나는 더 불리지를 못하였다. 프로골퍼인 최경주씨는 100억을 목표했으나 200억을 넘게 초과달성하자 얼마 전 재단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물론 돈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있으면 더 긴요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나의 꿈은 쪼그라들었고 어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실패한 내 인생을 만회하는 길은 돈 뿐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변.경.연을 알고부터 그리고 연구원을 하고부터는 더욱 정당하고 옳지 않은 돈은 꿈꿀 수가 없어졌다. 튀겨도 보고 둘러치기도 해봐야 무언가 남는 것이 있을 텐데 all stop이다. 젠장... .
그래서 몇 푼 안 되는 나의 자산은 줄어버리고 말았다. 요행은 복권밖에 바랄 것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좋은 시절을 만들어야 하는 판에 책만 읽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한동안 이것이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갈등요인이기도 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재능 없이 살아날 수 없고, 여전히 돈 없이 행세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한 귀퉁이에 근근이 들러붙어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헤일 수 없고 하염없이... .
얼마면 사부님을 팔아넘길 수 있을까? 내게 얼마를 주면 그 돈 가지고 배터지게 잘살 수 있을까? 아니, 탱자탱자하면서 글만 쓰고 살아갈 수 있을까 말이다. 모두가 제각각 부의 기준은 달라서 애매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으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망상을 해보곤 하다가 멈추고는 했다. 미친X 지랄하고 또 미친 짓거리를 하는 구나 지탄 받을 것이 뻔하고, 나 자신도 당위성을 찾지 못해 혼자 김빠진 맥주처럼 골머리를 두드리며 산발을 하고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오늘 책을 읽다말고 불현듯 다시 생각을 들고 나왔다. 책을 읽으며 내내 같은 생각을 하며 읽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내 일상 가운데 모순의 두 개의 축이었을까?
현실과 이상, 나와 꿈 사이에서. 아니, 지금과 피안사이에서. 변명과 낙관사이에서.
그럴 때마다 진실로 두려운 것이 있었다. 내가 혹시 도리어 현실감을 상실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글쓰기가 또 다른 도피로 향하는 현실적 부적응에 대한 가치부여가 아닐까 하는 염려.
수없이 내게 삿대질로 퍼붓는 지인들의 질문 가운데, 그래서? 그 과정을 하고 나면 무엇이 주어지는데? 어떤 결과를 얻고 무슨 이득이 남는가를 물을 때, 나는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종종 걸음만 치고 있었을 뿐, 큰 밑그림을 그리지 못해왔고 겁내왔던 것이리라.
그러나 한 성깔 하는 나, 한다면 하는 나, 죽지 않고 꿈틀거리는 나, 아직 펴보지 못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외치고 싶어 한다. 어디에? 세상이겠지. 그러나 준비가 안 되었다면 너 혼자라도 쓰고 죽으라고, 사부님은 내가 이 나라 대통령께 바라고 내 사랑에게 말하는 그 말을 내게 도로 일러 주셨다. 너도 죽어라. 너도 죽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으리라. 너도 겁내지 말거라. 네가 정작 밀알이, 씨과실이 되고 싶으면 너답게 죽기를 무릅쓸 방법 밖에는 없다. 네 스스로의 씨과실이 되고, 네 스스로의 밀알이 되고, 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르신다.
도대체 사부님은 몇 번을 죽고 또 죽으셨길 레 이렇게 느끼게 하실 수 있으실까?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사부님의 죽음을 목격한다. 부적응을 창조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골백번이고 수천 번이고 죽고 또 죽어왔음을. 결코 일상을 게으르거나 나태하게 퍼질러 놓지 않으심을.
이제 방법이 없다. 나도 따라 죽을 수밖에. 죽지 않고서 건강하게 살아날 수 없는 나이기에.
내가 사부를 팔아넘기고 일신의 평안을 누리고자함은 이완용의 무리들이 일본에게 조선을 팔아넘긴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일본의 앞잡이로 협잡꾼 노릇을 하지 않았던들 죄 없는 백성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가거나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이 일신의 영욕과 타협하지 않았던들 이 나라 이 땅의 우리 삼천리금수강산이 그토록 못이 박히는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죽었더라면 죽기를 각오하고 살았더라면, 적어도 내 아이들이 부모로 인해 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조나 경 단위의 돈을 탐하지 않는다면 변.경.연이 오래도록 맑고 밝게 동방의 빛을 낼 것이다. 그와 더불어 모두가 빛나고 지구촌이 하나 되는 어울림과 상생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이것이 우리의 COREANITY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스승을 팔아넘길 수가 없다. 등을 칠 수가 없고 배은망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되먹지 못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수치를 무릅쓰고 글쓰기를 해볼 것이다.
단 한권도 팔리지 않는 책, 쓰레기를 모은 글에 지나지 않을 지라도 써볼 것이다.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불꽃처럼 영롱한 혼신을 쏟으리라.
두려워 말라, 인생아. 날마다 물어보자. 너는 스승을 얼마면 팔아넘길 것인지를.
얼마면 성에 찰 것인지를.
.........................................................................................................
IMF, 모두가 망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많았음을,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 이제는 좋은 시절 다갔어. 이제는 늦었어. 라고 했지만 여전히 기회는 살아 있었고 죽은 것은 노력하기보다, 시도하기보다 체념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시든 한숨뿐 이었음을.
망상을 통한 망발을 하였습니다. 저의 허물을 벗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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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써니에게
오늘 네 글에 울림이 있구나. 마음이 살아 있구나. 그 격랑이 나쁘지 않구나. 생각해 보아라. 나침반은 늘 흔들리면서 한 곳을 찾아간다. 흔들리지 않고는 갈 길을 갈 수 없다. 뻣뻣한 나무토막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사람과 미움 사이에서, 신념과 이익 사이에서 늘 갈등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해야한다.
글을 쓰려면 돈이 많아 글만 쓸 수 있으면 좋다. 글쟁이는 늘 그것을 원한다.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약간의 돈을 허락하소서라고 빈다. 그러나 그들은 또 안다. 몸이 퍼지만 정신은 이내 썩어가고 죽은 정신으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불안과 고통 없이 그 글이 글이겠느냐. 돈이 때때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또한 때때로 돈으로 부터의 자유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 있다.
네 주머니가 점점 가벼워진다니 안됐구나. 앞으로 사람들과 밥먹고 네가 돈을 턱 내는 그런 일은 하지 말거라. 돈을 아껴 쓰도록 해라. 돈을 많이 벌거나 돈을 아껴쓰는 것, 그것이 축재의 기본이다.
네가 1000 페이지에 이르는 지나간 인생을 쓰고 죽기로 했다니 참 좋은 결심이다. 나는 네가 남해에서 절하던 모습이 기억나는구나. 지금 너의 이 글이 다시 그 장면을 불러 들이는구나. 이미 책이 한 권 나왔다는 것을 내가 믿게 되었다. 다 털어내고 자유로워 지거라. 그것이 새로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 가짐이다. 너는 결국 써니의 집을 가질 것이고, 사람들은 너의 집을 찾을 것이다. 너의 두번 째 인생은 매우 빛날 것이다. 너를 알게 되어 좋구나.
차순성
마침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 생각나
몇 해 전쯤인가 메모해 두었던 것을 꺼내어 한 번 올려봅니다.
[밥벌이에 대하여...]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이다.
더러운데 하는 것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 본성에 가장 안 맞는 것은
희망 없이 견디는 일이다.
[돈에 대하여...]
돈은 실물의 그림자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돈의 탄생은 하찮았다.
그러나 이 그림자가 실물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키고
유통의 마당에서 몰아내기도 한다.
돈이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의미로 각인되고 있는가를 말하기는 쉽지않다.
그것이 쉽지않은 까닭은
사람들의 정서가 돈으로부터 완전히 격절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돈이 주는 안도감과
돈이 주는 불안감.
돈이 주는 성취감과
돈이 주는 절망감으로부터 우리는 도망칠 수가 없다.
돈은 추상성과 구체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무서운 일이다.
고전 속의 효녀 심청이도 이데올로기적 ‘효孝’라는 미명아래
실존적으로는 돈 때문에 죽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다니엘디포가 그려낸 로빈슨크루소에게 금은 보따리는
아무런 소용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올 겨울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따뜻함이 배어있으면 좋겠다.
몇 해 전쯤인가 메모해 두었던 것을 꺼내어 한 번 올려봅니다.
[밥벌이에 대하여...]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이다.
더러운데 하는 것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 본성에 가장 안 맞는 것은
희망 없이 견디는 일이다.
[돈에 대하여...]
돈은 실물의 그림자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돈의 탄생은 하찮았다.
그러나 이 그림자가 실물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키고
유통의 마당에서 몰아내기도 한다.
돈이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의미로 각인되고 있는가를 말하기는 쉽지않다.
그것이 쉽지않은 까닭은
사람들의 정서가 돈으로부터 완전히 격절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돈이 주는 안도감과
돈이 주는 불안감.
돈이 주는 성취감과
돈이 주는 절망감으로부터 우리는 도망칠 수가 없다.
돈은 추상성과 구체성을 동시에 완벽하게 완성해낸다.
무서운 일이다.
고전 속의 효녀 심청이도 이데올로기적 ‘효孝’라는 미명아래
실존적으로는 돈 때문에 죽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다니엘디포가 그려낸 로빈슨크루소에게 금은 보따리는
아무런 소용없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올 겨울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따뜻함이 배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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