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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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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4일 11시 53분 등록

결혼한 셋째동생이 놀러왔습니다. 나의 동생은 현재 임신 7개월째이지요.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늘 산책을 다녀오곤 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공원에 산책을 하러 나섰습니다. 눈이 온 후 매섭게 차가워진 바람을 느끼며 동생과 나는 팔짱을 힘껏 끼웠습니다. 공원에 설치된 코스를 3바퀴 돌기로 목표를 설정하고 걷기 시작 했습니다. 두 바퀴를 채 돌지 않았을 때, 뭔가 나의 발걸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쳐다 보니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습니다. 추위에 움츠러든 몸은 대충 끈을 운동화 속으로 끼워 넣었습니다. 걷기 시작했습니다. 몇 발자국 못가서 운동화 끈은 나의 발걸음을 또 방해했습니다. 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운동화 속에 대충 끼워 넣었습니다. 약간의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귀찮은 마음에 그냥 걸었습니다. 또 그렇게 몇 발자국 못가 운동화 끈은 풀렸습니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열 번 쯤 운동화 끈이 풀리고서야 나는 멈춰 섰습니다. 주머니 깊이 넣어 둔 두 손을 빼고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운동화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왜 한쪽 끈이 자꾸 풀리는지 곰곰이 살펴보았지요. 오른쪽 운동화를 자세히 보니, 맨 끝의 구멍 두개에 끈이 끼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헐렁하게 묶여 풀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운동화 끈은 인생의 사인이 아닐까 하구요.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은 양치기라는 자신의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그가 영혼의 연금술사가 되기까지 그 긴 여행을 안내하는 것은 수많은 사인들이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사인이 함께 합니다. 사인이라는 것은 운동화의 끈처럼 대부분은 현실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연구원 과정이 필름영상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1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연구원에 붙었을 때, 나는 새로운 재능 발견에 들떠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내안에 샘솟고 있었지요. 그 열정은 내 안으로 향하지 못했습니다. 외부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천 없이 마음만 조급해 졌습니다. 관계의 문제, 회사와의 갈등, 어머니의 병으로 이어지는 사인들이 저에게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이곳을 도망치려고 하거나 외부에서 위로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나의 운동화 끈을 묶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말이지요. 이렇게 인생의 사인은 나에게 말해왔습니다. “제발 나를 외면하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주의 깊게 바라봐주세요. 당신은 지금 내가 보내는 사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그 문제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인생에 대한 야심이 너무 만만할 때도, 마음이 조급해서 서두를 때도, 혹은 세상과 맞설 힘이 너무 부족할 때도 운명은 우리를 제지하곤 합니다. 물론 전부터 삶의 방식을 다시 점검해보라는 크고 작은 인생의 메시지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원칙과 명분, 의무감과 두려움 등에 매여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세계적인 불교학자이자 명상지도자인 잭 콘필드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인생의 어려움을 ‘하늘의 전령’ 혹은 ‘저 너머 부름’에 비유합니다. 하늘의 전령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 삶에 결여된 ‘완전함’을 찾으라는 하늘의 전갈을 전하러 왔다고 말입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던 방식, 이제까지 매달렸던 것들에 대해 회의하고 떠나보내면서 좀 더 완전한 삶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지요.

다시 풀어진 운동화 끈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다시 가지런히 묶이기를 기다리는 운동화의 모습이 꼭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잡아당겨 묶었습니다. 꼼꼼하고 단단하게 끈을 매듭하고 일어나 다시 걸었습니다. 이상이 없는지 몇 발자국 뛰어봅니다.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풍경도 좀 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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