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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4일 19시 28분 등록
지난 1월의 연구원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낮술을 마시고 수업하는 거, 이게 사실 처음부터 나의 꿈이었다. 다들 어쩔까 했는데 사부는 다행히 아주 많이 드셔 주셨다. 그리고 몇몇 그의 젊잖은 제자들도 그만큼 취해 주어 이 몸 몹시 기뻤다고 전하고 싶다.

우리는 약속 장소인 경복궁 미술관에서 칼같이 만나 즉시 그 근처로 이동을 했다. 막걸리에 빈대떡, 메밀 전병에 뭐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맛도 예술이고 가격 또한 예술이었다. 게다가 막걸리는 내가 좋아하는 서울 장수 막걸리다. 그 전전날도 막걸리로 샤워했는데 어째 계속 같은 술이 걸린다. 그럼 어떠냐, 사람이 좋은데 술 가릴 일 없고 안주 가릴 일 없다.

사실 막걸리 한 사발이면 배가 불러오는데 안주가 너무 맛있고 사람 냄새가 구수하니 배가 부르다는 것은 그저 투정인 게다. 사부는 여기서 비빔국수를 안 먹으면 평생 후회한다고 하여 우리는 배가 터짐에도 마지막에 비빔국수로 입가심을 했다. 그날 조금 남긴 것이 안타까웠는지 그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그 맛을 기억하며 일요일 아침부터 비빔국수를 혼자서 해 먹고 만 이도 있다. 누군지는 굳이 말하지 않기로 한다.

수업은 아주 화기애매하고 동물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사부의 특징은 Go는 Go다. 뭐 중간에 술 마셨으니까 기냥 이대로 놀까나.. 이런 건 절대로 안 되는 분이다. 그걸 알면서도 꼭 나이 드셨음에도 철 안든 인간은 사부에게 개김의 철학을 읊는 이가 하나 있는데 이런 건 늘 그 즉시 reject당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쨌거나 낮술을 마시자는 말씀이셨는지라 이 몸께서는 그간 다 마시고 딱 한 병 남았던 복분자주를 수업에 참가시켰다.

세상이 만드는 사람으로 살지 마라, 니가 니 인생을 만들어 가라. 네가 살았던 인생을 물어라, 네 안의 너를 찾아라, 그 가장 아름다운 너만의 너의 소리를 찾아라.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 내라, 네 안의 괜찮은 너를 찾아라..
책을 쓴다는 것은 아이를 낳는 것이다. 아이를 쏟아내는 고통과 피를 느껴라, 그 기쁨을 느껴라, 첫 번째 독자이며 기쁨은 나다, 모든 피를 쏟아서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아이이다. 너를 가로막고 있는 벽, 그것이 네가 풀어야 할 것 이다…

사부는 거의 눈을 감고 말씀을 하셨다. 제자들도 반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것은 낮술의 핑계일 뿐, 그들은 마음으로 음미하고 있었다. 눈을 잠깐 뜬 술 센 제자는 그것을 옮겨 담았다. 다들 복분자 석 잔을 우습게 알았나 보다. 요즘 도덕경을 번역하며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살다 부부싸움까지 한 이는 이 술의 무시무시함을 알았노라며 덩치에 안 맞게 토로하는가 하면 개중에는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고 와서는 그 날 이후 매일 죽만 먹고 있노라는 토끼 같은 이도 있었다. 이걸 석 잔씩 먹고 시를 써제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스승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하시온지 계속 말씀을 하시었다.
이제부터 스승은 없다, 너희들 문제를 가지고 너희가 책을 써야 한다. 주어진 책을 읽는 것과 스스로 알아서 읽는 것은 다르다. 낮술, 이건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것이다. 낮술을 마시고 우리는 완전히 변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사부께서는 요즘 컴퓨터를 지참하시곤 무언가를 계속 두들기고 계신다. 막걸리에 이어 복분자주가 그의 잔에서 거듭 태어나며 거침없는 변화를 몸소 보여주시고 계시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실 때마다 안경을 위로 올려 머리띠를 하시곤 했는데 그 놈의 주책 맞은 안경은 그 곳이 미끄러웠는지 어쨌는지 그만 뒤로 홀라당 자빠지셨다. 스승은 개의치 않으신 몸짓이셨지만 실은 놈이 그렇게 넘어간 것도 모르는 듯 하셨다. 바로 옆에 앉은 햇반이 냉큼 주워드렸다.

발표는 계속되었다. 날라리도 있는가 하면 제대로 밤잠 안자고 해온 이도 있었다. 사실 척보면 다 아는데도 스승은 그러냐 너그럽게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각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그들의 특징과 장점을 말씀해 주셨다. 낮술 덕택인지 생전 안 하시던 리피트도 있었다. 발표가 남았는데도 다 끝난 줄 알고 계시기도 했고 예의 눈 감은 표정은 어쩌면 저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주곤 하셨다.

이런 글을 쓰는 날라리는 사실 책을 쓰실 생각은 전혀 없으시다. 그저 배우는 게 좋고 어리석은 나의 뒤통수를 한 번씩 쳐주는 스승들이 있어 좋을 뿐이다. 배우고 느끼고 그렇게 있는 게 좋은 데 그건 안 된다고 하신다. 책을 써야 졸업을 한다는 말씀이시다. 협박 같은 말씀도 툭 하고 한 마디 하셨다. “그럼 너 재수할래?”, 날라리는 기절초풍하며 일초도 안 걸리고 “아뇨!!!”하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큰일 났다. 뭔가 써야 한다.ㅠㅠ.

책을 쓴다는 것은 공부다.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라, 모르기 때문에 책을 써야 한다. 그렇게 공부하고 찾아내서 쓸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그 연습을 1년 동안 해 왔다. 이제 모르는 것을 앎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책을 쓰는 것이다.

날라리의 마음은 묵직한 것이 이만저만한 갈등이 아니다. “내가 어쩌다가…” 앞날이 캄캄하다. 올해 노는 계획만 가득 잡아놓은 인간은 이 난국을 어찌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저는 수료가 목적이었다고 이실직고하고 광명을 찾을 것인가? 아님 자비출판으로라도 뭔가를 하나 맹기러야 하나? 일단 닥친 위기부터 넘기고 보자.

중간이 끝나갈 즈음 조교가 들어왔다. 아 새로운 패션인가? 선글라스에 고구마아저씨 모자이다. 참 기가 막히다. 그래도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다. 저 혼자 다 겪고 사람들 앞에서 웃는다. 그래 우는 것 보다 낫다. 마음이 안쓰럽지만 더 머리가 좋아졌겠다고 익살을 떠는 날라리와 악수를 한다. 스승은 그러는 우리가 웃겼나 보다. 실은 스승도 다른 제자들도 마음이 아프다. 조교는 빨리 나아 원래의 머리카락과 눈을 보여다오.

조금 있다 또 한 명의 환자가 들어왔다. 우리가 몽골에서 재발견한 그 남자. 그 이름하야 HS…….몽골에서 여자끼리 냇가에서 목욕했다니까 전라였느냐고 물어보던 수상쩍던 그 남자. HS…… 그 역시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이 인간은 어디가 아프다고 티 하나 안 낸다. 뒷풀이도 마다하고 수척한 모습으로 가버리고 말았지만 계속 머리 속에 맴돈다. 니가 아프면 우리도 아프단다. 예의 그 깡충깡충으로 빨리 돌아와다오.

푸닥거리를 하던가 뭔가 해야겠다. 다들 비실비실해서 이거 어디 되겠는가. 조만간 건강해지면 한바탕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갖도록 하자. 삶이 당연히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죽음 또한 그렇다. 삶도 죽음도 인생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날라리는 내일 제주로 떠나신다. 삶을 확인하러 가는 길. 살아서 돌아오면 글도, 리뷰도, 칼럼도 열심히 쓰겠노라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살살 다짐하면서…
IP *.48.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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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2008.01.15 08:29:12 *.180.46.11
잘 다녀와요.
제주도 말들은 다들 몸 성히 잘 있는지,....편한 말 두고 힘들게 자전차 탄나고 푸히힝거리고 있지나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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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2008.01.16 04:10:58 *.177.93.244
약주 냄새 n 스승이 있다는 자랑 내 잘 맡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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