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8년 1월 14일 20시 17분 등록
나는 왜 동물이 그렇게 좋을까, 사람도 물론 좋지만 동물에 대해서만큼은 애정이 각별하다. 사실 동물뿐만이 아니다. 식물도 그렇고 조류, 어류도 그렇고 하다못해 벌레도 귀엽다.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자랐고 늘 그 아이들과 뛰어 놀았었다. 그 조그마한 것들이 살아보겠노라고 콧구멍으로부터 가는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내게는 생명이 있는 것은 사람만큼이나 다 소중하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요즘은 고양이 테리와 함께 살지만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이 다 사라진다. 녀석은 사실 그렇게 수다스러운 놈이 아니다. 하루에 딱 몇 마디를 내게 건넨다. 예를 들어, 간식을 줄 시간에 내가 잊고 있는 경우 “간식 줄 시간인데 모하고 있어요?”, 지껀 꼭 챙겨먹는 놈이다. 그리고 어찌나 깔끔을 떠는지 내가 멋 적을 지경인데 응가를 하고 나면 꼭 내게 다가와선 “ 내꺼지만 너무 냄새가 심한 거 같아, 빨리 치워줘요.” 은근히 냐옹댄다. “알았어” 하고 부삽으로 퍼내 처리해 주면 멀리서 확인하곤 지 방으로 들어가 털을 핥아대며 몸단장에 정신이 없다.

그러다 정말 아주 심심하면 책을 읽고 있는 내 다리에 볼을 비비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거야? 냐옹” 하며 투정을 한다. 그러면 “엄마, 지금 책 읽잖아. 테리도 혼자 놀아..” 그래도 곁을 떠나지 않고 앉아있는다. 그렇구나,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하며 테리가 좋아하는 내 손을 코 앞에 들이민다. 녀석은 손이 좋은지 그것을 가지고 제 몸을 비비고 핥기도 하고 무거운 궁둥이를 바닥에 대며 자세를 잡고는 내 손을 꼭 껴안고 있는다. 나는 녀석의 배를 만진다. 그럼 다리를 쭈욱 피며 배를 보여준다. 나는 놀면 뭐하냐 하며 장 맛사지를 열심히 해준다. 내일 건강한 똥 눠…

그러다 내가 불을 끄고 침대에 올라가면 눈도 안 보이는 놈이 어떻게 알았는지 꼭 침대 옆으로 와선 세상에 그런 애절한 소리가 있던가 하는 것처럼 “ 나도 침대에 올려조요…네,네,,,,. 미야옹” 하며 옆 모서리를 긁어댄다. 처음엔 “안돼!” 로 밀고 나갔는데 요즘은 그 소리가 하도 처량하여 올려주기로 했다. 나보다 어차피 수명이 짧을 터인데 애정에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자라는 생각이다. 점프도 못하는 녀석이라 늘 누웠다 일어나 놈의 다리를 들어 올려주어야 한다.

침대에 올려 옆에 누이면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는 듯 골골골 소리를 우렁차게 읊어댄다. 요즘은 그 소리가 자장가 소리가 되어 이젠 오히려 내가 잘 때가 되면 테리를 부르게 된다. 녀석은 내가 팔을 뻗으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베게 삼아 지 몸을 눕힌다. 그러다 잠드는 경우도 있지만 주인이 술 먹은 경우가 아니면 거의 내가 팔이 불편해 등을 돌린다. 그럼 녀석은 내 등이 닿는 부분에 살짝 지 몸을 대며 같이 쿨쿨 잠 속으로 빠진다. 그런데 일어나보면 항상 녀석이 없다. 이상하다고 의문이 들어 어느 날 자는 척을 했더니 내가 잠들면 녀석은 내려가 지 방으로 들어가 자는 것이다.

귀여운 녀석, 나를 재워주러 매일 침대로 올라오는구나... 곁에 누우면 수염이 너무 간지러워 뽀뽀는 한 번도 안 해줬는데 녀석은 가끔 내게 뽀뽀를 하려는지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수염이 한 십 센치는 족히 되는 지라 그 거리만큼 가까워지면 내가 기절하고 도망친다. 영국 신사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젠틀멘인 녀석은 절대 강요하지 않으면서 “아, 그러세요?” 하곤 딱 내가 좋아하는 범위까지에서 만족해 주는 것이다.

녀석과의 목욕타임은 또 각별하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이유는 그래야 비로소 화장실 대청소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빌딩의 지하에는 스포츠 클럽이 있고 나는 운동은 안 해도 샤워는 하러 내려가기 때문에 집에서는 거의 목욕탕을 쓸 시간이 없다. 녀석의 목욕을 빙자해 비로소 대대적인 화장실 청소가 이루어진다.

녀석들은 물을 싫어한다고 되어있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대청소를 하는 낌새가 보이면 그 하얗고 이쁜 배를 지면에 아주 깊게 착지하곤 나의 눈치를 슬슬 살핀다. 내가 아무리 걸레질을 해도 저완 상관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런데 녀석은 안다. 잘못하다간 오늘이 목욕날이구나 하는 것을…., 그래 나는 꼭 테리에게 말을 해 준다. “오늘은 자기가 목욕해야 될 것 같아요....일단 각오를 부탁해요…,,,,” 녀석은 늘 그렇지만 못들은 척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바닥에 밀착하고 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주인은 나오지 않겠다는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들고서는 어차피 씻을 몸인데 하며 털 많은 녀석의 몸을 사정없이 볼에 부벼대곤 한다. 목욕탕에 들어가서야 녀석은 세상의 속절없음을 인식하는 듯하다. 체념한 표정으로 목욕 자세를 취한다. 나는 절대로 난폭하게 굴지 않는다. 샤워기의 온도를 적당히 맞추며 “이쁜 테리 오늘 목욕해야지…그치?”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지만 샤워기가 꼬리에서 다리로 가기 시작하면 목을 우아하게 위로 들어 제끼며 “그래 어차피 해야하는 거라면 즐기면서 하리다” 하는 폼새다. 뭔가 아는 놈이다 .

녀석은 익숙한 듯 하다. 나는 아주 빨리 목욕을 시킨다. 더운 물에 어느 정도 털이 익숙해지면 비누를 꺼내어 거품을 낸다. 마지막에 얼굴을 빡빡 문질러 준다. 눈이 매운 듯 꼭 감고 있다. 그러면 또 잽싸게 샤워기를 얼굴에 뿌려주고 눈부터 닦아준다. 녀석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목욕을 마치고 타월로 대충 짜내고선 녀석의 엉덩이를 툭 친다. 그럼 녀석은 지 몸에 묻은 털을 세게 흔들어 대어 목욕탕 벽에 있는대로 튀겨놓고는 우아하게 폴짝하고 뛰어 밖으로 나간다.

비로소 주인은 간만에 목욕탕 대청소를 시작한다. 혼자 사는 사람이 떡 저 하나일 텐데 아니 왜 이렇게 지저분한거야,,,하며 보는 사람도 없는 데 놀라는 척하는 주인이다. 사실 그곳만 그럴까? 많은 의문이 들지만 내 방은 형광등 조명이 아닌지라 나도 모르고 손님도 모른다는 끝내주는 곳이다.

이윽고 청소를 끝내고 나면 테리는 구석에서 제 몸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고개를 아주 많이 사용하는 지라 목 근육이 발달 되어 있다. 나는 그 즈음 녀석에게 다가가 드라이로 말려주거나 목 부분을 맛사지 해준다. 그리고 손톱과 발톱을 날카롭지 않게 정렬해 주곤 한다. 고양이는 일부러 사람을 할퀴는 게 아니라 두려워서 발톱을 세우거나 하고 또 낯선 곳에서는 내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꽉 잡으려고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상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은 모든 것이 다 끝나면 시장기를 느끼는 지 꼭 가서 음식을 먹는다. 털이 다 말라 보송보송해지면 내게 다가와선 또 지 몸을 부벼댄다. 그건 이런 말이다.’ 나를 씻겨줘서 고마워요…야옹.” 나는 녀석에게 “아 테리한테 이쁜 냄새나요..” 하고 칭찬해준다. 목욕을 한 날은 녀석이 아주 잘 잔다. 마치 사람이 그런 것처럼 그 날은 기분이 좋은가 보다. 나는 샤워한 날은 녀석을 꼭 끌어안고 칭찬을 해준다. 녀석이 알까?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샤워를 싫어하면서도 또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사실 가슴이 덜컹한 날이다. 녀석의 송곳니가 빠지면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젖니도 아닌데 빠져 버렸다. 녀석은 갑자기 화악하는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지가 그 피를 다 핥고 있다. 주인은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에 동물병원에 전화하지만 오늘은 주말,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녀석의 이빨을 고이 보관해 둔다. 조금 있다보니 다시 사료를 먹고있다. 아 정말 다른 건 몰라도 밥을 먹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세상의 기쁨 중,제 자식 입에 밥 들어 가는 것과, 농부가 제 논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이라고 했던가..나는 테리가 밥을 잘 먹고 응가를 제대로만 싸 주면 바랄게 없다.

눈도 안 보이는 데 송곳니까지 빠졌다. 녀석이 가여워 견딜 수가 없다. 윗 이는 전에 기르던 이가 부러뜨려 놓아 저래도 잘 씹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 차에 녀석이 밥을 먹고 있다. 그리곤 그 앙증맞은 입을 있는 대로 이리저리 운동하며 사료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 승리가 아니고 고양이 승리다…테리야, 엄마는 그저 고맙구나…

사실 오늘은 예정에 없었는데 이가 빠져 정신이 없었는지 어쨌는지 녀석이 이상하게 응가를 잔뜩 묻히고 나왔다. 걷는 폼이 수상쩍어 꼬리를 들쳤더니 이거 아주 큰 사건인 것이다. 대형사고다. 오늘 따라 찬물이 안 나오고 뜨거운 물만 나오는 아주 요상한 시스템. 여기저기서 물을 길어다 녀석을 씻기는 난리다. 저도 보통 깔끔이 아닌지라 몹시 찝찝했을 것이다.

내일이면 주인은 제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데 꼭 어딘가 가기 전에 고양이가 사고를 친다. 주인은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그래 테리에게 꼭 양해를 구해야 한다. 내가 이래서 저래서 거긴 꼭 가야 되거덩. 그러니 니가 이해해조….,부탁해. 테리….
나는 녀석의 말을 내가 알아듣듯 내 말도 녀석이 알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꼭 무슨 일이던 테리에게는 말해준다. 녀석은 늘 졸리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는 녀석이 이해해 주리라 굳게 믿고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동물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건 서로의 느낌이다. 내가 너를, 니가 나를 신뢰하는 그 느낌으로 살아간다.
너의 진정을 나는 알았노라, 나의 진정을 너는 알았을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우리는 살아간다. 부디 목록을 적어 말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런 느낌이 우리의 삶 속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그런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면 그 때는 감동의 희열에 두근두근한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미국에 사는 친구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붉은 색 털실 가디건에 초콜렛, 그리고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향수…모자…..정감 있게 포장 되어진 그것들..
그녀는 이것을 고르며 내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색깔이며 사이즈를 떠 올렸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워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면서 동시에 뭉쿨해진다.
사람이 사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런 정. 잔잔한 정. 폼 잡지 않는 너, 그리고 나….우리..
오늘은 테리때문에 울컥했고, 멀리서 온 소포가 또 나를 감동하게 한다.
“오늘 하루 그대들 때문에 행복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날이다.

----------------------------

오늘은 테리를 데리고 병원엘 다녀왔습니다. 노환으로 이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치아 손질하느라 가벼운 마취 주사를 맞혔더니 녀석이 걷는 게 힘든가 봅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어 잠시 안아주고 안정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녀석이 좋아하는 통조림을 땄습니다. 먹어 줍니다. 아주 씩씩하게 잘 먹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앞으로도 이 삼년은 문제 없을 꺼라고 합니다. 지금 보니까 쿨쿨 자고 있습니다. 마음이 든든합니다.
IP *.48.40.19

프로필 이미지
광현
2008.01.14 23:29:45 *.65.107.202
휴...다행입니다....가슴이덜컹했드랍니다...제주도잘다녀오세요..테리걱정시키지마세요*^^*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08.01.15 01:43:58 *.48.40.19
네 그럴께요. 녀석이 이젠 저보다 나이가 많아요. 인간나이론 거의 65세정도지요. 가끔 저에게 끌끌하는 모습에 저도 뜨끔끄끔하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92 [칼럼033] 한 해의 끝에서 주위를 돌아보다. [8] 香山 신종윤 2008.01.03 2527
4691 Shall We Dance? [4] 소현 2008.01.03 2271
4690 (37) 은빛 파도의 기억 [2] 時田 김도윤 2008.01.03 2131
4689 [39] 새해 첫날 산행 [2] 교정 한정화 2008.01.03 2056
4688 [40] 그녀는 한 해 동안 어떻게 글쓰기를 하였나? [6] 써니 2008.01.04 2539
4687 [칼럼39]혁신에 대한 작은 변명 [1] 소전최영훈 2008.01.05 2359
4686 (39) 할 일을 다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 [11] 박승오 2008.01.07 2996
4685 [40] 기원을 담은 그림 [3] 교정 한정화 2008.01.10 3084
4684 [41] 눈오는 날, 스승을 경매에 부치다 [7] 써니 2008.01.12 3183
4683 [칼럼40]어두운 기억의 저편 素田 최영훈 2008.01.14 2623
4682 정면으로 대담하게 걸어 들어가다 [2] 호정 2008.01.14 2225
4681 내 인생의 사인 소현 2008.01.14 2593
4680 (37) 날라리의 고민 [2] 香仁 이은남 2008.01.14 2270
» (38) 고양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2] 香仁 이은남 2008.01.14 2400
4678 [42] 후유증, 문자, 한사발의 커피 [4] 써니 2008.01.16 2892
4677 [칼럼035] 어느 출근길 香山 신종윤 2008.01.17 2243
4676 [칼럼41]영혼이 있는 공무원 [2] 素田최영훈 2008.01.20 2367
4675 춤추는 영혼의 노래 素賢소현 2008.01.21 2443
4674 [42] 눈이 많이 온 날 [3] 교정 한정화 2008.01.21 2498
4673 (39) 부활을 꿈꾸는 여전사 [10] 香仁 이은남 2008.01.22 2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