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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6일 02시 41분 등록
눈길 산행을 다녀온 후 졸음과 딸리는 체력을 속이기 위해 한사발의 커피를 들이마신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벗으로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를 묻는 문자가 날라든다.
아마도 지금 퇴근을 하는 모양이다. 마지막 셔터를 내릴 때까지 나의 연락을 기다렸을까?

그 바람에 정신없던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게 되었다. 살포시 잠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부여안고 앙탈을 부리며 놔주지 않는 잠의 전령들을 깨우기 위해 일부러 길게 문자를 보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것처럼 자세하게. 다행이 한 번의 문자가 더 날라들었고 나도 신이 나서 한 통 더 보냈다. 다시 마지막 문자가 날아들었고 나는 어느새 녹작지근한 취기에 흠뻑 젖어든 몽롱한 잠에서 깨고 싶어 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이불은 투정하며 계속해서 눈을 흘기고 있다. 내가 몸을 일으켜 뒤엉켜있는 그들로부터 빠져나오려할 때, 나를 휘감고 있던 허리의 전기 벨트는 나를 더욱 세게 자신의 부드러운 품속으로 끌어당기며 입술을 더듬어 거친 숨소리로 파고들었다.


저녁 6시 기준 일반인들의 퇴근 시간이 지나기 전에 외출을 할 요량으로 해가 중천을 넘어설 무렵 목간통엘 갔지만, 나는 따뜻한 목욕물에게 매료당하여 그만 그곳에서 오후를 뒹굴고 말았다.

탕으로 향하기 전, 옷장 옆의 한구석에 들인 한 평 남짓한 황토방은 언제나 제법 따뜻하기 그지없다.

나는 사실 목간보다 황토방에 맨살로 벌러덩 드러누워 채 마음이 가다듬어 지기도 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나른한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다시 내 귓전을 간질이는 촉촉한 낭만에 빠져드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황토방을 향해 행진하듯 들어서는 나의 비장함은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뭉개져 버리고 만다. 잠시 전 나의 반듯한 의지와 자세를 어떻게 해서라도 무너뜨리려고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구들짱에게는 번번이 지고 말 뿐이다. 이리 뒤척 저리 뒹굴 바닥의 뜨거운 열기가 서둘러 살갗을 부벼댈 때, 졸음 겨운 눈을 뜨지 못하고 널부러지는 끈적한 여름밤의 땀방울처럼 맨살의 내 몸과 흙바닥의 자유로운 정사에 지그시 눈을 감아 주었다. 그들의 사랑은 오래 부등껴 안은 채 서로를 놓아 줄줄 몰랐고, 어느새 목간통을 빠져나왔을 때 나는 그날의 맨 마지막 손님이 되어 있었다.

촉촉한 머리카락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저녁 겨울바람은 밤기운의 쌀쌀함을 예고했다. 마침내 외출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타협하기에 이르렀다. 연락을 하겠노라 했지만 그렇다고 전화를 걸기에 그리 막역하지도 않고 또 미안하기도 했다. 나의 성의 없는 태도가 무심한 겨울바람과 함께 비닐봉지처럼 나부꼈다. (만약 읽게 되면 용서해 주시려나... ㅋ)


겨울밤은 일찍 창문에 짙게 걸터앉아 나를 노려보며 내 행동의 추이를 살피려 단단히 지켜서고 있는 듯했다.

저녁은 맛있었고 목욕물은 따뜻했으며 녹작지근한 뼈마디에는 졸음의 유혹이 피할 수 없는 더운 불길로 휘몰아치듯 거침없이 찾아 들었다.

유혹... . 나를 원하는 매혹적인 자태의 그들의 눈길을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애써 할 일을 무시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고 말았다. 그들은 나를 열렬히 환영했다. 가스를 아끼는 방안 공기는 숫처녀의 냉냉함으로 차가웠기에 나를 더욱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한쪽 벽에 붙어 다소곳이 기다리는 여인처럼 반드시 누워있는 요, 그 위에 길게 깔려 쭉 뻗은 매끈함으로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기가 무섭게 한달음에 달려와 내 어깨며 등, 종아리까지 포근히 안아주는 나의 허리 벨트. 그 위에 첫사랑처럼 화사하게 들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불의 수줍음은 나의 선택을 주저할 겨를 없이 행복하게 미끄러뜨렸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우정을 치하하기도 전, 그들은 내 온몸에 사이좋게 들러붙어 제각각 나의 몸을 책임지며 평화롭게 이끌었다. 어찌나 편안 하던지 나는 그들 중에 누가 어떻게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내 머릿결을 쓰다듬었으며, 내 종아리를 주물렀는지 기억하기도 전에 스르르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다만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서로가 사이좋게 나를 정성껏 섬겼으며 그래서 나의 안위는 평안했다는 기억뿐이다.


나직이 내려와 다시금 불 켜진 내 방의 창문을 기웃거려 무얼 하고 있나 흘깃흘깃 들여다보며 제각각 기대와 추측을 남발하는 달님과 별님들의 수군거림.

한사발의 커피는 그새 존재의 흔적을 감추어 미련 없이 떠나버리고, 나는 다시 졸음에 겨운 채 겨울밤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아까는 소중한 할 일과 만나기 위해 내 방에 기거하는 아름다운 신들을 화나게 하고 휑하니 뛰쳐나와 버렸지만, 다시금 살며시 기어들어가 미안하다고 뽀뽀하며 파고들면 이불도 요도 허리 벨트도 못이긴 척 받아주겠지? ‘사랑해. 알잖아, 이 밤 너 밖에 없는 거... . 자자.’ 쿨쿨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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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순성
2008.01.17 14:54:50 *.75.252.142
써니 누님. 현장의 필름이 돌아가듯 일상의 모습들이 활자를 빌려
호젓하게 걸어나왔네요!
허리의 '전기벨트'가 제 마음을 한 번 휘감고 돌아 나갑니다.
좋은 글들, 밝은 글들을 보며 희망의 나날을 보낼 수 있어 좋은 오늘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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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순성
2008.01.17 22:00:06 *.75.252.142
저는 말이 강한 편에 속합니다.
달변이 아니라 툭툭 던지는 말에 씨가 있다고들 합니다.
웃고 다니는 얼굴과는 달리
마음속에는 남모를 그림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웃고 지냅니다. 그 그림자를 감추기 위한 나만의 전략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의 정의가 좋고 선비정신도 좋아합니다.
아니 닮으려고 합니다.
세상과의 이질감에 자꾸만 단절하고 싶어하는 나를 추스리기도 좋아합니다.
아내도 직장에서의 상사분도 저를 많이 염려합니다.
편협한 제 시각을, 어리석음을 많이 걱정해 줍니다.
그러나 그 툭툭 던져넣는 말속에 이제는 하나의 알맹이를 섞을줄
알게 되었습니다.
변경연을 통해, 책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말주변이 없는 나는 글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동경합니다.
사실 나를 넘어서는 글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써니 누님! 저도 제 아내도 써니 누님을 좋아해요.
누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내가 한 편으론 질투하면서
감정에 솔직합니다.
그리고 많은 응원을 합니다.
저를 통해 변경연을 알게 되었지만, 글 재주가 없다며 눈팅만 해대지만
식구들 새 책이 나오면 꼭 먼저 구입합니다.

제가 하루중 가장 즐거운 때는 책 읽는 시간입니다.
짜투리 시간을 빼내어 글을 읽습니다.
제 옆에 앉은 상사들이 머리 굵어졌다며 경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의미있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오늘 독서 목록을 간단히 생각나는데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년동안 서른 두권을 읽었습니다.
나름 더 많이 읽었으리라 생각했었지만 좀 부족하더군요.
사두고 옆에 놓아둔 책도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가벼운 흥분과 기대감에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추운 겨울밤 입니다. 모두들 평안한 밤 되셨으면 합니다.
나름 오늘을 열심히 보낸 것 같습니다.
숙소에 가서 깨끗이 씻고 가벼운 긴장감으로 새책의 첫 장을
펼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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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1.18 01:39:30 *.70.72.121
대단하군요. 부부가 떨어져 있는 걸로 아는 데 그렇게 까지 자신을 추수릴 수 있는 사람 흔치 않아요. 훌륭해요. 혼자서 32권의 책을 읽으셨다면 솔직히 저희들보다 나아요.

책 읽기가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으시다면 꼭 연구원에 지원하셔요. 난 두 명의 살인미소를 이곳 변.경.연에서 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차순성님이고 또 한 사람은 꿈벗 송경남님이에요. 서로 언제 인사 한 번 나누시면 서로의 웃는 모습에 반할 거에요.

그리고 성격 말인데요. 저도 그래요. 저가 사랑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사랑이 부족하고 마음이 넓은 것 같으면서도 편협한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어려서는 착한 일만 동경하며 어른 스레 살았는데 세파에 찌들리면서 또한 기질적으로 부당한 것을 못 참고 고지식하며 완고한 편이지요. 그러면서도 날이 서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를 보며 사람들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고들 해요. ㅎㅎ

이런 저를 이해해 주신다니 고맙울 따름이네요. 응원까지 하여 주신다니 감사하고요. 이것도 인연인가 봐요. 저도 순성님 첫인상에 딱 알아봤죠. 변.경.연 사람임을.

변.경.연 사랑하는 것 알아요. 글 자주 올리시면서 표현 하세요.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다르고 연구원 과정과 또 혼자서 쓰는 책이 다르다고 사부님께서 누누이 이르셨어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이곳을 좋아하니 좀 더 가까이 사부님을 모시게 되면 큰 가르침을 얻게 되고 또 벗들로부터 서로 친구이자 스승의 관계를 만들면서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실 거에요.

저도 두 분 가정 화목하고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환한 그 웃음이 함께 하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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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순성
2008.01.18 06:17:47 *.75.252.142
궁색한 변명은 사람을 가볍게 하지만,
아직까지 밥벌이의 정체성이 제 발목을 부여잡고 있네요.
꿈으로 연결시킬 그 무엇인가가 나타나면,
써니 누님 말씀 따를께요.
그리고 정말 아직 많이 부족하답니다.
열정의 불씨가 당겨지기를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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