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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0일 10시 11분 등록
지난 1월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이 발표되었다. 내가근무하고 있는 부처도 폐지된다는 소식에 직원들의 동요가 시작되었다. 계속 이 상태로 유지할지도 모른다는 일망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에 나 자신조차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하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그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에 앞으로 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도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는 시점에 홍역처럼 쓸고 지나가는 조직개편도 그렇고, 공무원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그렇다. 공무원으로서의 신조나 사명감이 늦은 가을 차가운 북풍에 휘날려 자취를 감춘 낙엽처럼 가슴속이 황량하기만 하다.

찰스 굿센의 『공무원을 위한 변명』에서 미국 공무원들의 정치권력으로부터 견제는 받지만 구속은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업무의 성격이나 수행하는 업무가 크게 다르지 않으면 해당 장관이 그대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정치적인 참여가 금지되어 있는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장관들이 전면 교체된다는 것은 결국 정치권력에 100% 구속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연 견제라는 것이 통할까? 이번 조직개편안이 발표되고 난 후, 자기 부처의 존재이유에 대한 활동이 혁신 방해세력이나, 부처이기주의에 집착한 공무원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조직을 개편하고 곧 있을 기관장들의 선출을 가정해보면 과연 그러한 견제가 통할지 의문이다. 공무원의 의견이나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은 그렇다 치고 국민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국민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거기에 받는 하나의 서비스로 볼 수 있다. 개개인이 계속 받아온 특정한 기관의 공공서비스가 새로운 정권의 조직개편으로 없어졌을 때,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그러한 전권을 다 위임한 것일까?

각 부처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때,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진작부터 폐지가 예상된 국정홍보처의 업무보고에서 담당 직원의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다.’ 라는 말이다. 이 말속에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의 현실과 한계를 느낄 수가 있었다. 국정홍보처는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홍보활동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막상 영혼이 없다는 것은 시키는 대로 한다. 위에서 지시한 것을 그대로 판단 없이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상급자의 지시가 부당하지는 않지만 뻔히 잘못된 결과가 예상될 때는 어떠할까? 근거를 보여주고, 예전에 비슷한 일이 실패했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는데도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때 과연 계속 반대를 할 수 있을까? 대부분 결과는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난다. 라는 말로 상사가 가진 인사권으로 사람을 바꾸고 다시 밀어붙였다. 관료제가 가진 잘못된 의사결정의 구조적인 모순의 하나라고 본다. 그렇다면 영혼이 없는 홍보처의 공무원들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일선 기관들은 과연 영혼이 존재할까 의심스럽다.

'영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싶게 쓰여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영혼을 이렇게 말하였다.

영혼이 없는 기업은 그 회사 사람들에게 단지 개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영혼이 있는 기업에서는 전 사원들의 스스로 주체의식을 가지고 기업의 영혼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해서 공동의 발전을 이뤄나간다. 그런 가운데 기업은 영속하는 우량기업으로 자라날 수 있다. (83p)

아니타 로딕은 영적인 비즈니스에서 대하여 이렇게 말을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제약과 삶의 전반적인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즈니스의 한계를 넓히고, 비즈니스의 언어를 바꾸며 비즈니스를 긍정적인 변화의 힘이 되도록 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것이다. 내가 남다른 비즈니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다. (아니타 로딕의 영적인 비즈니스 11p)

기업이 스스로의 주체의식을 가지고 전 직원이 하나의 공통된 사명을 가지고 독특한 행동양식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바로 영혼이 있는 승부였고, 기업이었다. 창업자나 기관장이 만들어 주는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의 힘으로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본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영혼을 운운한다는 것은 일종의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조직개편안으로부터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다시 냉정함이 돌아왔다. 결국 조직개편안은 정부부처의 축소와 7,000여명의 공무원을 감축한다는 결정을 하였고, 국회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을 결정하는 문제만 남았다. 감원이라는 말은 민간부문에서나 공공부문에서나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다. 떠나가는 사람도 어렵고 남아있는 사람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조직개편안이 확정되면 이제 거대한 자리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수많은 공무원들이 자기 살길을 찾아서 처절한 싸움을 할 것이다.

이번 정부가 기초를 세운 정부조직개편안으로 좀 더 효율적인 정부, 일을 제대로 하는 정부로 다시 태어났으면 한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계속 이 틀을 유지해나갔으면 한다. 영혼이 있는 공무원, 영혼이 있는 정부조직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IP *.118.10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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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8.01.22 21:55:56 *.72.153.12
8년간 공무원의 신분으로 일하면서
빈번하게 조직이 개편되는 것을 보았고,
일관성없이 행정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2~3년마다 쉬이 바뀌어버리는 기관장은
그 부서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큰 그림의 일부를 완성하기 보다는 눈에 띄는 뭔가 하나를 만들어 자신의 성과를 하나를 내세울 것에 더 집착하면서,
영혼이나 전문성을 운운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코미디 프로에서든지, 혹은 아무나 욕해도 모두 고개 끄덕이는 그런 기관에서 근무했지만 거기에도 자신의 신명을 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 영혼, 눈물까지 다 담은 영혼이 있는 그 무엇을 기대합니다.
공무원이 공무원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한다는 사부님 말씀 기억납니다.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 치열하게 써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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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8.01.23 11:26:34 *.99.242.60
막상 저 자신의 일도 장담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런 시련이 공무원 사회를
더 냉철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라고 봅니다.

요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데
격려의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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