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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1일 13시 14분 등록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몸을 흔드세요”

눈을 감았다. 서서히 시야에서 빛이 사라져 갔다. 어둠 속이다. 나는 늘 그래왔듯이 춤을 추는 것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바닥에 누워 도대체 무엇을 어쩌란 말이지. 어디선가 음악이 귀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4박자의 고막의 울림이 눈꺼풀로 전해져 왔다. 흔들리는 눈꺼풀의 박자에 따라 심장의 박동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굳어져있던 얼굴이 어깨를, 엉덩이를 그리고 온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마루에 정신없이 엉덩이를 비비고 온몸을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몸을 움직이는 가, 몸이 나를 움직이는 가, 경계가 사라진다.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움직일 뿐이다. 춤 속에 온전히 나를 맡겼다. 숨을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몸을 움직였다. 끊임없이 흐르는 땀과 몸이 하나가 된다. 생각, 느낌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다. 오롯이 침묵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0)의 세계. 이렇게 영혼은 없는 듯 있다.

영혼과의 첫 만남. 나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태초에 춤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이 경험은 나의 길은 춤의 길이라는, 나의 신성은 나의 몸이라는, 나를 이끄는 힘은 나의 리듬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의 열쇠가 되었다. 몸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영혼이 밀려온다고. 몸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가 진리라는 것을 말이다. 손과 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굳어진 얼굴과 근육을 풀어주지 못하는 진리는 내 인생의 반쪽의 삶이었다.

그녀들과 세션을 진행 할 때마다 나는 영혼과의 첫 만남을 살며시 꺼내든다. 그리고 그녀들의 몸속에 있는 영혼을 바라본다. 얼굴과 몸속에 우리 안의 창조적인 빛이 켜진다. 하지만 어느새 빛은 스스로의 벽에 부딪혀, 있는 그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늘 그녀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당신들을 춤추지 못하게 합니까?”
“나는 춤을 싫어해요. 타고난 몸치라서요. 창피하잖아요. 누가 볼까 봐요. 저는 몸매가 안 이뻐요...”

내가 잊고 살아왔던 것처럼 그녀들은 춤을 잃어 버렸구나. 몸이 굳은 것은 생각이 굳은 것이다. 얼굴이 뻗뻗 해진 것은 감정이 메마른 것이다. 수치심과 두려움, 어색함에 마음이 묶이고, 그 마음은 몸을 묶고 얼굴을 굳게 한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너무 많은 수치와 공포를 지니고 있다. 공포와 수치는 가부장제사회를 통해 경험되고 구체화된다. 그 경험을 통해 자의식을 갖게 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느낌인지 안다. 나의 몸에 대해 자의식을 갖는다는 것, 몸을 부끄러워한다는 것, 몸을 겁내는 것, 심지어 몸을 증오하게까지 되는 것은 생의 가혹한 형벌이다.

그녀들의 생각 저변에 자리 잡은 깊은 그림자는 두려움이었다. 사람들은 몸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춤을 두려워하거나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춤을 추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화가 나를 삼켜 버릴까봐, 눈물을 흘리면 슬픔 속에 나를 가두어 버릴 것 같아 두려워한다. 그래서 모든 몸짓을 통제하고 고통에 자신을 내던져버리거나, 아예 그것들을 끊어버리고 몸과 거리를 두는 사람이 있다. 춤 속에, 몸속에 어떤 신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진정한 자기로부터 멀어져 머리만 이용하는 사람이 되 버렸다. 그 두려움들로 인해 몸의 움직임과 변화에 무관심한 채 자기 몸인데도 그 존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아간다.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알고 있다는 생각이, 있는 그대로의 리듬을 춤으로 표현해 내는 영혼의 빛을 가로막게 된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온전히 자신의 리듬으로 자신의 움직임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외부의 리듬에 맞추어 만들어진 춤은 내가 말하는 춤이 아니다. 춤은 내 안에 있는 리듬과 가락을 찾아 몸을 통해 흐르게 하는 것이다. 내 안에 나이고 싶은 생각과 느낌을 몸으로 말하는 언어다. 자신의 리듬을 느끼며, 온전히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때 몸과 마음은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된다. 보여주기 위해 추는 춤이 아닌 추어지는 춤이다.

태초에 춤이 있었다. 누구나 춤을 출 수 있고, 춤을 추며 살아가고 있다. 몸은 리듬의 에너지이며 언제나 표현하고자 하며 순간순간의 움직임으로 드러난다. 눈을 뜨는 것도 춤이요. 눈을 감는 것도 춤이다. 하품을 하는 것도 춤이요. 세수를 하는 것도 춤이다. 용변을 보는 것도 춤이요. 걷는 것도 춤이다. 심장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으며 피 또한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각자의 독특한 춤을 추며 살아가고 있다. 삶은 춤이다.

우리가 클럽에서 머리끝가지 휘날리며 밤을 보내든, 옷이 땀에 젖을 때까지 달리기를 하든, 밤새 스텝을 밟으며 스윙에 몸을 맡기든, 공통된 점은 움직임이다. 일단 우리의 몸을 움직임에 맡기면 몸은 영혼의 춤을 기억해 낸다. 침묵 속에 영혼의 리듬이 있는 곳, 그곳은 바로 우리 안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영혼이 어떤 빛깔인지, 어떤 모양인지, 어떤 향기가 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자. 그 에너지에 솔직하게 반응한다면, 에너지가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무엇이든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에게 똑같은 무게의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몸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속이기보다는 자신이 피하려고 하거나 즐길 수 없는 춤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자. 나를 던져 변화를 충분히 경험하고, 영혼을 만날 때까지 춤을 추자. 잘하거나, 못하거나, 더 좋거나, 더 나쁜 춤은 없다. 오 직 춤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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