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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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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6일 10시 34분 등록

너의 것

 


나는 육체를 사랑하여 그것이 죽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랐고

영혼을 사랑하여 그것이 썩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내 영혼의 자서전중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난데 없이 배를 잡고 굴렀다. 비명을 지르다 바닥에 쓰러졌다. 일 하다 말고 누운 채로 나 죽는다 소리쳤다. 현지 직원에게 119 구조대, 구급차를 불러달라 했더니 세차게 손 사래 친다. 급한 마음에 들쳐 업고 차에 실어 가까운 병원으로 달렸다. 붉은 십자가가 크게 붙어 있지 않았다면 병원인가 싶은 곳이다. 외국인들이 자주 간다는 병원이라고 간 곳이 그랬다. 의료진은 그렇게 느긋할 수 없다. 여차하여 밝혀진 동료의 증상은 맹장염. 떼어 내기로, 한다. 수술해야 한다고 했을 때 겁먹은 동료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안에는, 수술실을 찬찬히 둘러보곤 비로소 낙담하여 수술하다 잘못되면 어쩌나가 들어 앉았다. 난 모진 놈이다. 끝내 그 불안을 들추어서 놀려 먹었으니, ‘엄한 장기 떼어 내고 맹장이라 우겨도 우리가 어찌 알리오하며 농을 쳤다. 더 커지는 눈. 큰 병 아니라는 진단에 마음을 놓은 터였다. 해프닝이라 생각한 일은 그렇게 잊히는 듯 했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수술 후 회복을 끝내고 출근하던 날, 동료는 동전 지갑만한 투명한 지퍼 비닐을 손바닥에 펴 보였다. 자신의 맹장이라 했다. 엄지 손가락보다 조금 작은, 핏발이 채 가시지 않은 선명한 충수돌기. 맹장 제거 수술이 끝나고 간호사가 이건 네 거야하며 주더란다. ‘네 몸에서 떼낸 너의 것이므로 주인에게 돌려 준다고 했다. 몇 번의 어이없는 감탄사를 뱉어내고 이런 일도 있다며 웃었고 안부를 묻고는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앉았는데 이내 동공이 풀렸다. 너의 것, 하루 종일 초점을 잃은 멍청한 눈을 하고 다녔다. 한번도 맞닥뜨려 본 적 없는 일, ‘이건 네 거야가 환청처럼 들리고 피를 머금고 축 늘어진 충수돌기가 어딜 가든 따라와 시야를 가린다. 세포분열을 거듭하던 나의 한 부분이 사체가 되어 다시 내게로 건네질 때, 그것은 나인가, 내가 아닌가. 살아서 다른 장기들과 함께 교감하며 기어코 살리라는 희망으로 움직이던 것은 지금 죽어있다. 충수돌기가 하던 생각은 치이익하고 우주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인가. 무엇이 진짜인가. 외로움이 어쩌고 고독이 저쩌고 궁상을 떨다가 내가 필멸의 인간이었음을 잊었던 게다. 언젠가 나도 죽으면 썩기 시작할 텐데 말이다. 그때는 내가 있기도, 없기도 해서 나는 지금 내가 있다고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있다도 틀렸고 없다고 해도 또 틀리다. 나는 실재하지만 그 존재는 이리도 불분명하기로 이로써 분명해 지는 건 단 하나다. ‘나의 것은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 대중이 생각하는 소유개념은 독특하다.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다. 죽으면 모두 소용 없는 것들이니 모든 것들은 살아 있을 때 잠시 빌려 쓰는 거라 여긴다. 국가의 사법,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지켜야 할 나의 것’, 우리가 도둑이라 부르는 절도범죄는 이 나라에선 일상의 도덕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으로 치부된다. (오해하진 마시라. 그렇다고 남의 것을 함부로 넘보지 않는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라고 쿨하게 넘어가야 하지만 단 한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상식이 뒤집히는 순간, 나 여기서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캬,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는가 했던 것이다. 너의 것이라며 건네던 충수돌기는 소유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트는 역설이었다. 말이 나왔으니 도둑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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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04:52:58 *.72.1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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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08:48:58 *.102.129.110

읽을때 자연스럽게 집중을 하게되는 글입니다.

라오스에서의 이야기 계속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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