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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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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3일 12시 18분 등록

이 세상에 내 것이 있었던가

 

(장면1) 

노랗고 두꺼운 비닐 천 쪼가리가 촌스럽게 테이블에 깔린 식당이었다. 전날 까오삐악(라오스 쌀국수, 현지어)을 먹고는 값을 치르지 않은 사실을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번뜩 알게 됐다. 그 많던 종업원들은 국수를 먹은 뒤 그냥 그것도 느긋하게 걸으며 뻔뻔하게 눈까지 마주치며 나가는 나를 어이없이 바라 봤을 것 아닌가. 부끄러움 저 밑에서 올라온다. 퇴근을 서둘러 슬라이딩하듯 국수 집을 다시 찾았다. 어제 내가 돈을 내지 않았다며 주인인지 종업원지 모를 그녀에게 2LAK(우리돈 3천원, 국수 값은 2천원)을 건냈다. 그녀는 알고 있다며 무덤덤하게 잔돈을 건 낸다. 무슨 일인가? 알면서 돈 달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돈을 내지 않고 나가는 걸 알고 있었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돈을 지불하라 말하지 않았나?"  결정적인 답을 들으려는 순간 누군가 불러 그녀는 돌아섰고 나는 여전히 대화하듯 서 있게 됐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도야 어찌됐건 무전취식, 경범죄에 해당한다 

 

(장면2) 

내 살고 있는 곳엔 일주일에 두 번 매반(Maeban, 현지어. 우리말로는 가사도우미쯤 되겠다청소 위주의 가사일을 도맡아 한다. 오해해선 안 되는 게 돈이 남아돌아 받는 서비스가 아니라 주택의 렌트 계약에 포함된 사항이라 싫어도 어쩔 수가 없다) 아주머니가 오신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일하다 보니 견물생심이라 가끔 도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세제, 샴푸 등 생활용품은 일상 다반사여서 같이 쓴다 여긴다. 공유사회를 지향한다. 일찌감치 매반 아주머니 몫을 감안해 사 놓는다. 어느 날, 아내가 사준 선 크림이 사라졌다. 아내 얼굴이 떠올라 이건 꼭 받아야겠다 생각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내겐 소중한 물건이니 선 블록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라오스어로 적어 책상 위에 올려 놨다. 며칠이 지나도 갖다 놓지 않길래 내가 생사람을 잡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던 중에 어느 순간 집 나간 선 크림이 돌아와 있었다. 반갑기도,  일인가 싶기도, 순진하고 귀엽기도 한 건 왜인가. 가득 담겼던 선크림은 반 이상을 쓰고 난 뒤였다 

 

(그리고) 

아끼던 헬멧과 산지 1주일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야구시합(이만수 전 감독이 이끄는 '라오브라더스'와 매주 시합을 했다. 내 포지션은 포수, 이만수 감독의 특훈을 받기도) 이 끝난 토요일 오후, 타 들어가는 갈증에 Joma(조마, 환상적인 커피 맛을 자랑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유명한 라오스 대표 카페다. 친구 사이였던 캐나다인 4명이 여행 중 라오스에 반해 처음 세웠다. 그들 이름의 이니셜을 조합하여 JOMA라 지었다) 에서 파는 망고 쉐이크를 벌컥이는 중에 누군가 소리쳤다. "누가 네 자전거를 가져갓어!" 빛의 속도로 나와 보니 자전거는 온데 간데 없다. 아차, 헬멧. 나와 오랫동안 함께 등반하며 나를 지켜준 헬멧. 헬멧이 자전거에 걸려 있었다. 도둑놈은 나와 함께한 헬멧의 시간을 알까? , ㅆㅂ. 부디 좋은 주인 만나길 바란다. 

 

히말라야 설벽에서 나를 구해줬던 사랑하는 헬멧을 잃고 23일 속이 쓰렸다. 지난 장면들을 느린 태엽으로 돌려본다. 치르지 않았던 국수 값, 초연했던 주인, 돌려받은 선크림, 잃어버린 새 자전거, 헬멧. 가져가도 그만 돌려주면 그만. 돈을 받지 않아도 그러려니,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가져가 쓰고 돌려달라 하니 선심 쓰듯 돌려주는 귀여운 도둑. 그래 잃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내 것 지키려 미친 개처럼 눈에 불을 켜고 살아도 어디 내 것이 이 세상엔 있었던가. 속상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알게 되지 않았느냐, 썩어질 물건 따위를 사랑하다니. 아끼는 물건은 애초에 만들지 말 일이다. 잃고 나니 쓸데 없는 되새김질에 마음이 상하지 않더냐. 결국 이리 되지 않았느냐, 아끼면 똥이 된다. 차라리 내 사람들을 아낄 일이다쫀쫀했던 쫌생이가 낯선 땅에서 드디어 대인배가 되어 가는가. 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 나는 이날 제일 비싼 저녁을 나에게 선물했다. 욕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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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03:26:27 *.54.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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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08:26:20 *.111.14.95

위에 라오스 이야기인줄 알고 클릭 안할려다가 해보니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네요.

페북에서도 다시 보고 공유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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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4 08:25:23 *.111.14.95

내 몸뚱아리 조차도 우주의 수많은 물질로부터 빌려온 것..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라오스에서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입니다. 

마음껏 숨쉬면서 오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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