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장재용
  • 조회 수 1241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9년 1월 23일 12시 18분 등록

이 세상에 내 것이 있었던가

 

(장면1) 

노랗고 두꺼운 비닐 천 쪼가리가 촌스럽게 테이블에 깔린 식당이었다. 전날 까오삐악(라오스 쌀국수, 현지어)을 먹고는 값을 치르지 않은 사실을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번뜩 알게 됐다. 그 많던 종업원들은 국수를 먹은 뒤 그냥 그것도 느긋하게 걸으며 뻔뻔하게 눈까지 마주치며 나가는 나를 어이없이 바라 봤을 것 아닌가. 부끄러움 저 밑에서 올라온다. 퇴근을 서둘러 슬라이딩하듯 국수 집을 다시 찾았다. 어제 내가 돈을 내지 않았다며 주인인지 종업원지 모를 그녀에게 2LAK(우리돈 3천원, 국수 값은 2천원)을 건냈다. 그녀는 알고 있다며 무덤덤하게 잔돈을 건 낸다. 무슨 일인가? 알면서 돈 달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돈을 내지 않고 나가는 걸 알고 있었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돈을 지불하라 말하지 않았나?"  결정적인 답을 들으려는 순간 누군가 불러 그녀는 돌아섰고 나는 여전히 대화하듯 서 있게 됐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도야 어찌됐건 무전취식, 경범죄에 해당한다 

 

(장면2) 

내 살고 있는 곳엔 일주일에 두 번 매반(Maeban, 현지어. 우리말로는 가사도우미쯤 되겠다청소 위주의 가사일을 도맡아 한다. 오해해선 안 되는 게 돈이 남아돌아 받는 서비스가 아니라 주택의 렌트 계약에 포함된 사항이라 싫어도 어쩔 수가 없다) 아주머니가 오신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일하다 보니 견물생심이라 가끔 도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세제, 샴푸 등 생활용품은 일상 다반사여서 같이 쓴다 여긴다. 공유사회를 지향한다. 일찌감치 매반 아주머니 몫을 감안해 사 놓는다. 어느 날, 아내가 사준 선 크림이 사라졌다. 아내 얼굴이 떠올라 이건 꼭 받아야겠다 생각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내겐 소중한 물건이니 선 블록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라오스어로 적어 책상 위에 올려 놨다. 며칠이 지나도 갖다 놓지 않길래 내가 생사람을 잡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던 중에 어느 순간 집 나간 선 크림이 돌아와 있었다. 반갑기도,  일인가 싶기도, 순진하고 귀엽기도 한 건 왜인가. 가득 담겼던 선크림은 반 이상을 쓰고 난 뒤였다 

 

(그리고) 

아끼던 헬멧과 산지 1주일된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야구시합(이만수 전 감독이 이끄는 '라오브라더스'와 매주 시합을 했다. 내 포지션은 포수, 이만수 감독의 특훈을 받기도) 이 끝난 토요일 오후, 타 들어가는 갈증에 Joma(조마, 환상적인 커피 맛을 자랑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유명한 라오스 대표 카페다. 친구 사이였던 캐나다인 4명이 여행 중 라오스에 반해 처음 세웠다. 그들 이름의 이니셜을 조합하여 JOMA라 지었다) 에서 파는 망고 쉐이크를 벌컥이는 중에 누군가 소리쳤다. "누가 네 자전거를 가져갓어!" 빛의 속도로 나와 보니 자전거는 온데 간데 없다. 아차, 헬멧. 나와 오랫동안 함께 등반하며 나를 지켜준 헬멧. 헬멧이 자전거에 걸려 있었다. 도둑놈은 나와 함께한 헬멧의 시간을 알까? , ㅆㅂ. 부디 좋은 주인 만나길 바란다. 

 

히말라야 설벽에서 나를 구해줬던 사랑하는 헬멧을 잃고 23일 속이 쓰렸다. 지난 장면들을 느린 태엽으로 돌려본다. 치르지 않았던 국수 값, 초연했던 주인, 돌려받은 선크림, 잃어버린 새 자전거, 헬멧. 가져가도 그만 돌려주면 그만. 돈을 받지 않아도 그러려니, 네 것 내 것 구분 없이 가져가 쓰고 돌려달라 하니 선심 쓰듯 돌려주는 귀여운 도둑. 그래 잃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내 것 지키려 미친 개처럼 눈에 불을 켜고 살아도 어디 내 것이 이 세상엔 있었던가. 속상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또 알게 되지 않았느냐, 썩어질 물건 따위를 사랑하다니. 아끼는 물건은 애초에 만들지 말 일이다. 잃고 나니 쓸데 없는 되새김질에 마음이 상하지 않더냐. 결국 이리 되지 않았느냐, 아끼면 똥이 된다. 차라리 내 사람들을 아낄 일이다쫀쫀했던 쫌생이가 낯선 땅에서 드디어 대인배가 되어 가는가. 주머니 돈을 탈탈 털어 나는 이날 제일 비싼 저녁을 나에게 선물했다. 욕 본다.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19.01.24 03:26:27 *.54.43.100
프로필 이미지
2019.01.24 08:26:20 *.111.14.95

위에 라오스 이야기인줄 알고 클릭 안할려다가 해보니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네요.

페북에서도 다시 보고 공유할께요~

프로필 이미지
2019.01.24 08:25:23 *.111.14.95

내 몸뚱아리 조차도 우주의 수많은 물질로부터 빌려온 것..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라오스에서의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맑은 하늘, 깨끗한 공기입니다. 

마음껏 숨쉬면서 오늘 하루를~~~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56 아프리카로 떠나고픈 날 김용규 2016.12.01 1123
3155 마흔아홉, 세상 가장 아름다운 부부 書元 2016.10.01 1124
3154 창업 결정 전 5가지 셀프 질문 (첫번째) 이철민 2017.08.10 1125
3153 [화요편지]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file [2] 아난다 2020.09.15 1125
3152 [화요편지] '엄마를 위한 자기돌봄 요가' 이야기를 시작하며 file 아난다 2020.11.10 1125
3151 삶의 전략이되는 다정함 [3] 어니언 2022.11.24 1125
3150 [일상에 스민 문학] - 나의 소확행 (小確幸)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4] 정재엽 2018.02.07 1126
3149 [월요편지 13] 어쩌면 난 너의 불행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라 [2] 습관의 완성 2020.06.21 1127
3148 “요즘은 TV 뉴스가 더 소설 같지 않니?” file [4] 정재엽 2017.03.15 1128
3147 백스물한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용기 1그램 [2] 재키제동 2017.10.20 1128
3146 [알로하의 두번째 편지] 이스탄불의 댄스 맛집 file 알로하 2020.07.05 1129
3145 인생의 책을 만나는 법 연지원 2016.12.26 1130
3144 마음을 열면 알게 될 거야 [2] 어니언 2021.05.20 1130
3143 청국장집에서 나눈 사장님과의 유익한 대화 차칸양(양재우) 2017.05.09 1131
3142 백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100번째 마음편지 [6] 재키제동 2017.04.28 1132
3141 <영어로 쓰는 나의 이야기> 이번 주 쉽니다 [1] 알로하 2021.04.18 1132
3140 [화요편지] 돈이 우리 곁에 머무는 이유 file 아난다 2020.07.06 1134
3139 침묵으로 오르는 자 [1] 장재용 2021.02.02 1135
3138 [용기충전소] 극심한 스트레스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법 [1] 김글리 2021.06.11 1135
3137 마흔아홉, 출발의 설렘 [1] 書元 2016.08.15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