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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18시 24분 등록
내가 변.경.연의 연구원 수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음이 신기하다. 왜냐하면 처음에 나는 이 과정을 두 판치고 지원한 까닭이다. 내심 떨어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성적 덤벙대는 성격으로 인해 첨벙 뛰어들기는 했는데 슬쩍 눈치를 보아하니, 여태 이것이다 하고 밀어붙인 삶을 어느 정도 되돌려 버리거나 아주 폐기 처분廢棄 處分해야 할 것이 두렵기도 하고, 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갈팡질팡 허우적대며 징징거릴 것이 빤한 심사였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게다가 나는 이 과정을 잘 따라할지도 자못 의심스러워서 더욱 그러하였음을 말해 무엇 하랴.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수료를 얼마 남기지 않도록 나름 재미있어도 하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책읽기와 글의 질이야 어떻더라도 온통 정신이 책읽기와 글쓰기에 팔려 마치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돼’ 하고는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고래심줄 같은 비장한 여인네의 심사로 물고 늘어지는 폼이 가히 가관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고 기생 애랑이 배비장의 이빨을 뽑아낼 정도로 요사스러울 만큼 감칠맛 나게 흥미로운 글로써 변.경.연의 군침을 넘어가게 하거나 사족을 녹이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하니 더욱 기가 막히고 코가 찰 노릇이 아니겠나.

마흔 중반의 홀로된 여편네가 뒤늦게 뭐 말라비틀어진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이 과정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듯 한구석을 차지하고 덤벼들면서 체면體面과 염치廉恥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부대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두고 감히 빼도 박도 못하는 글쓰기에 대한 서툰 열망의 팔자라고나 해야 할지 원... .

그랬다. 어느 날 삶은 내게 고단한 일상을 한가득 짊어지고 와서는 머뭇머뭇 한숨을 쉬며 걸터앉아, 오랜 갇힘 속에서 깨지고 달아빠져 남루하게 들러붙어 아사 직전의 어설픈 욕망의 뿌연 푸념과 자책, 그리고 아쉬움의 넋두리를 한껏 움켜쥐고 있다가 내 앞에 패대기를 쳐대며 널브러져 울고 있었다. 나는 막막했고 더 나아갈 곳이 만만해 보이지 않아 허둥대기에 이르렀다. 길은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그 가운데 어느 길이 내 길인지 어느 길로 들어서야 제대로 나다운 삶을 향해 가는 것인지를 몰라 해질녘 석양만 우두커니 바라보며 저문 날의 이방의 객의 심사로 황량한 벌판에 우두커니 서성이고 있었다.

당시 변.경.연 이라는 스무 명 남짓 하는 연구원과 80명도 안 되는 꿈 벗과 약 8,000명의 팬레터를 주고받는 이 커뮤니티와, 전국 방방곡곡과 인테넷이 연결되는 세계 어느 곳에라도 퍼지는 이곳에 내 이름 하나를 올려놓기도 사실은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채팅 한 번도 메신저 한 번도 안 해본 내가 단지 느닷없이 <꿈 찾기 프로그램>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5천만의 꿈 >프로에 내 꿈도 올려야 한다나. 과제라서 허겁지겁 우선 생각나는 대로 대강 하고는 검사할 것도 아니니 치워버리려고 했고, 싸이트에 올릴 줄도 몰라서 그냥 연구소에 메일로 보내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산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이란 무엇보다 생업에 열을 올려야만 하는 것이었기에 잠시 동안의 쉼도 허락지 않고, 내게 든든한 빵이 될 무언가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리며 세상의 허름하고 만만한 곳을 뒤적거리며 상념 속에 아스라함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의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몸살 같은 현기증과 추위에 떨었으며, 속앓이와 막막함이 가슴을 짓눌러 발짝 같은 두통과 심장의 벌떡거림을 일으키면서 마치 시소를 타듯 예사로이 출렁대고 있었다. 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버거워 하면서... .

믿지 않았다. 믿을 수도 없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냥 한번 해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이 내게 믿음을 심어 준 적이 있었던가. 아스라이 멀어져간 그것이 언제던가. 내가 견디면 하는 것이고 못하면 그뿐, 한탄할 무엇이 있어 애태울 것이던가. 나는 어느 정도 세파에 찌들려 있었고 더는 상하거나 다칠 기력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고, 삶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관건이었으며, 빵이 아니라 그와 같은 배부름의 양식이 필요했다. 아닌 말로 죽을 수도 있고 그런 것 따위가 두려울 바도 아니지만, 살아가는 한해서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일 것인지 나는 정말 애타게 찾고 묻고 싶었다.

변.경.연에 지원서를 내기 전, 오랜 만에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도원에 피정을 가서 2박 3일 동안 기도도 해보았다. 목이 터져라 울부짖어서 몇 주간 동안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원하는 답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후련하지도 않았고 신념 따위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깜깜한 절벽 같은 아뜩함과 서러움 그것뿐이었다. (나중에 연구원 과정 중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나름 그 기도의 응답을 홀로 찾고 해석하기에 이르기는 했지만), 당시에 내가 찾고 갈망하던 길은 아무데도 없는 듯했다. 단지 수월하고 남들 보기에 나쁘지 않은 정도라면 모를까, 그래서 그렇게 짜 맞추어지고 길들여진 채 나를 저당 잡혀 사는 것이 마치 우리가 그토록 교육받고 지향해온 삶인 것처럼 이해되고, 한편으로 그렇게 석화石化되어가는 듯한 삶의 여정에서 나는 마음이 내려앉는 듯 아프기만 했다. 아니 그것이 인생이거니, 그렇지도 못한 것이 현실의 내 모습이거니 하며 애태워 울었고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고, 그렇게 내 글도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채 <개인사>라고 쓰다말고 지워지고 엉켜붙어서 손도 댈 수 없이 나자빠져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야 억지로 그냥 대강 보내어졌다. 떨어질 줄 알았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에 작년 이맘 때.

1차 20명의 인원 가운데 내 이름 석 자도 끼어 있었고, 요란뻑적지근하게 난리를 치고서 2차 13명 가운데도 내가 들어 있었다. 왜 나를 붙여주었을까를 의아해 하며 그것을 생각하는 데만 거의 한 해가 다 걸린 것 같다. 나는 최근에 와서야 어렴풋이 이해를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동안 가만히 있질 못하고 또 일을 병행하여 한답시고 과제를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으며, 구석구석 요리조리 오만 참견을 다하고 게다가 뻔질나게 여기저기 부르는 대로 다 합류하여 질펀하게 판을 벌려가며 실컷 잘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그러니 이 과정이 좋을 수 밖에.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그렇더라도 기죽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기 위한 준비를 한편으로 해가며 개인사를 써 본 것과 약 한 달간에 걸쳐 연구원 도전의 레이스에 충실히 임한 것에 나름 경험적 만족을 하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다행이 발표에는 칭찬은 따로 없었지만 어떻게 붙었건 내 이름 석 자가 기재되어 있었고, 그것은 아주 오랜만에 공정한 게임을 통해 인생에서 무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는 암시를 내게 얼핏 던져주며 흘러갔다. 한편으로 시작이었고 한편으로 고심되었지만 발표가 나자마자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수료식을 향한 글을 써서 올렸다. 그것은 변.경.연 연구원 과정을 지원한 책임과 앞으로 일 년 동안의 시간에 대한 내 다짐이었고, 내가 나를 고삐 죄어 틀어가는 방식으로 유효하게 길잡이를 하였다.

<꿈 찾기 프로그램>에 가서 잠깐 동안 배운 미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해 미리 다 이루어진 것처럼 거꾸로 회상하는 글쓰기로 나는 연구원과정을 수료하는 글을 오천만의 꿈에 올리는 글 외에는 처음 써 보았다. 준비하지 않았고 그래서 서툰 구석이 있었지만 그날의 그 상황과 벅참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가슴 깊이 새기는 한편, 날짜를 변경하지 않기 위해 그 글만큼은 일부러 틀린 구석도 고치지 않았다.(그때는 변경하면 날짜와 시간이 바뀌었음.)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계획하여 접근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알듯 말듯 다시 내 삶의 시간 속을 항해하기 시작하였고, 지금 현재 이곳 변.경.연에 이렇게 여러 벗들과 더불어 함께 내 삶의 항해를 지속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게 하고 있다. 처음 이곳 변.경.연에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 마구 글을 쏟아내던 나를 지켜본 지인들은 내게 말한다. 작년 이맘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정말 그런가? 나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동안 나의 허술함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겨우.

다만 이런 생각이 든다. 성급한 의욕보다 천천히 지속적으로 꾸준한 글쓰기를 이제부터라도 해나가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내 삶의 방향이 그렇게 방향을 틀고 정해져 나가길 바래본다. 어느덧 글쓰기는 내게 친구가 되었다. 조금 전 어머니께서 내 방문을 열어보시며 물으신다. “너는 그곳에서 틀어박혀 하루 종일 뭐하니?” 인용문을 베끼느라 오래 자판을 두들기고 나면 팔이랑 어깨, 등짝이 아프다. 그래서 나는 요즘 들어 우리 동네 싸우나에 자주 간다. 그곳에 가면 다른 시설은 별로지만 조그만 황토방이 있는데, 공기 순환이 잘되고 밑자리는 따끈해서 벌러덩 드러누워 등짝을 지글지글 지져대기에 그만이라서.

혹 가다 가끔, 아니 문득문득 내가 뭐하는 거지?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또 다른 도피처는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콩닥콩닥 걸음걸이가 벌떡 멈춰서기도 한다. 무슨 일에 빠지면 다른 것은 다 싫고 그것에만 나른하게 빠져버리는 습관 탓인지 모르겠다. 팔자에도 없는 설운 글쓰기를 써대게 한 망할 그 사람은 언제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물 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맹목적인 데가 있어서 위험해, 그래서 걱정이야.” 하여간 병 주고 약 주는 데 소질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읽은 파커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는 나를 살리는 여러 구절 가운데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언젠가 사부님께서도 해 주시던 말씀인데 잘 납득하지 못했었지만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마도 이 말씀이셨지 싶다.

『“두려워 말라.”
이 말이 가진 의미는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그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p136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내일 걱정을 하느라 오늘의 내 삶의 기쁨과 열정을 뒤로하고 느리게 다가서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내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 내 삶이 중요해 졌기 때문이다.

내게 삶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에서 나를 반기며 유혹의 손길을 나부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악한 일하지 않았고 해보기도 전에, 인생 한 번 펴보기도 전에 사그러들게 한 신도 원망스러웠고, 내가 선택하였으나 내게 매몰찬 고통을 안겨 준 사랑한 사람도 미웠다. 깽판을 쳐버리듯 외면하고만 내 삶의 테두리를 박차고 나와서 울분과 편벽된 마음으로 한 가지 일에만 목숨처럼 매달려 살아보기도 했다. 그 결과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루하고 해갈 안 나는 논바닥의 갈라짐과 습하고 지리한 장마 같았던 내 삶에 비하면 적잖은 성취를 안겨준 보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던가? 욕심은 끝이 없었고 목표는 더 나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치달으라는 요구만을 원하지 않던가? 내가 바라고 원하던 삶이 그것 이었던가? 단연코 아니다. 성취에 한계를 느껴서 물러남도 아직은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던가?

나는 나를 들여다봐야 했다. 나는 사랑받기 원했고 이해받기를 갈구했다. 그것은 좀 더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여태 나를 빼두고 상대에게 나를 맡겨둔 채 그에게 사랑받고 이해받기만을 갈구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큰 문제였다.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혼자서 해결해 볼 수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었다면 과감하게 돌아설 줄 알았어야 했다. 나는 나를 몰랐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에 대해 이해하기 더욱 어려웠으리라. 그리고 바로 그런 모습들로 인해 여전히 치우쳐서 불안정한 내 삶에 바르고 안정된 균형감을 찾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부르짖는 삶의 안정은 따라서 굳이 경제성만을 강조하여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지만 그것 자체로만 내 삶의 안정과 기쁨을 대변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결손을 다른 이성으로 대치하여 원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1년간 나는 어리둥절한 채 연구원의 모든 과정을 허벌나게 정신없이 쫓아 따라하느라 진땀을 뺐다. 달력이 해를 넘기자 사부님께서는 “이제 너희들 나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을 위한 책을 써보라”고 우리들을 다시 들판에 내놓으셨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고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마치 생경한 느닷없는 발언처럼 느껴졌다. 과정도 안 끝났는데 몰아붙이는 것 같은 심사에 젖어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또 마음이 졸아든다. 이게 애초의 과정인 것을 말이다. 그 만큼 뜬금없고 생각과 겨를 없이 내달았던 것이다. 말안장에 올라타기는 했으나 낯설음과 무서움에 떨며 엉거주춤 말고삐만 꼭 걸머쥔 채 말에서 떨어질 것을 염려하느라 주위의 풍광과 말 타기의 쾌감은 고사하고 리듬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 같은 예의 그 어설픔이다.

사부님께서는 어느새 우리 곁을 조금씩 떨어지시며 “나는 3월이 되면 4기들과 어울려 놀 것이다. 너희가 지금 나를 제대로 써먹지 않으면 너희에게 할애될 시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를 경고장처럼 사형선고처럼 남발하시지만 그저 귀만 멍할 뿐이다. 돌이켜보니 많은 풍경들을 지나쳐왔고 그때마다 충분한 안내와 가이드를 받아왔지만 어쩐지 스르르 다 놓쳐버린 느낌이 드는 것은 미흡함이 주는 현실일 게다.

어찌되었건 이제부터 말고삐를 쥐고 스스로가 알아서 나름대로 들판을 누벼봐야 한다. 때론 웅덩이에 처박히고 남의 집 담장을 들이받는 불상사에 처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코피가 터지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나서야 정신을 바싹 차리고 말을 잘 몰아 타게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또 일러주셨다. 고삐를 잘 쥐고 있다가 위험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위급한 상황이 오면 말 등에 살짝 업드려서 말을 침착하게 달래야 한다고.

더 늑장을 부려봐야 소용없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거침없는 4기가 밀고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다시 내게 힘주어 이렇게 말을 건넨다. “두려워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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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2.10 22:39:33 *.125.205.62
1년여 넘게 써니님 글을 읽으며 애독자가 된 사람입니다.
글만 동냥하다 3기 연구원을 졸업하시기 전 꼭 감사의 글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때론 굿을 하는 무녀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땐 오랜만에 만난 친 누이처럼 그렇게 포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현란하지 않지만 현란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그려내시는 써니님의 글솜씨는 질투를 느낄정도였습니다.

"이건 글에 옷을 입힌 그림이다."
정말 글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써니님의 글은 그렇게 그림처럼 다가왔습니다.
보지않고도 그 상황을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생생하게 전해왔습니다.

아마도 3기를 졸업하신 후 많은 이들이 써니님이 걸어간 그 자리를
또 다른 발자욱을 남기며 뛰어놀겠죠.
어디를 가든 님께서 남겨놓은 자취를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찌 선각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하루도 빠지지않고 이곳에 들를수 있었던 것은
써니누님(저도 이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의 글을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꼭 인연을 만들어 뵙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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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08.02.11 00:01:17 *.77.6.151
자신을 사랑하게 된 써니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써니는 두려움이 없다.
써니 화이팅...

그런데 써니님 "당신은 누구세요?"
자서전에 나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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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11 10:34:45 *.70.72.121
으흑.. 부끄..

홍스님, 언젠가 누군가의 덧글에서 언뜻 뵌 기억이 있습니다만... 사용하시는 언어의 분위기가 내가 아는 어느 후배와 매우 흡사한 느낌이 드네요. 여자인 것 같다가 남자라고 하고 어쩐지 절대 나와 같은 사람에게 누나라고 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자유분방한 어떤 이의 모습이 연결져 떠오르다가 또 멈춰서게 하는 좀 특이한 분위기의 ...

이렇게 저를 구구절절 1 년여 동안이나 지켜봐 주셨다니 어쩐지 쑥스러움에 난감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른 얼굴을 후다닥 가리게 되더이다.

빈말이 되겠지만 정말 감사하네요. 덜컥 겁이날 정도로 말이죠. 농담 그만 하고 저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릴게요. 앞으로도 읽어주실 건가요?


양수님, 설은 잘 쇠셨나요? 언제고 문득문득 나타나 격려의 덧글을 달아주고는 시침을 뚝떼시는 재미나고 즐거운 사람 양수님, 참 고마워요.
측은지심에 손잡아주듯 플러스전사의 덧글 참 많은 힘 돋우었지요.
지난 번 소백산 눈길 등반도 좋았지만 별로 이야기는 못 나누었던 것 같아 아쉬움 남았네요. 또 뵈요.

모두 감사드려요. 새해에도 가내 두루 평안들 하시고 복 많이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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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8.02.12 01:48:50 *.70.72.121
홍스 아우님, 누나하며 짠~하고 나타나기를 벼르고 있을께요.

열심히 또 열심히 그리고 열심히 변.경.연의 연을 만들어 나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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