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159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껍질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르라」
헤쳐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시집『늦게 온 소포』,민음사, 200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4 | [시인은 말한다] 그대에게 물 한잔 / 박철 | 정야 | 2020.11.16 | 2116 |
223 | [리멤버 구사부] 이해관계 없는 호기심 | 정야 | 2021.10.18 | 2109 |
222 | [시인은 말한다] 친밀감의 이해 / 허준 | 정야 | 2020.11.02 | 2099 |
221 | [시인은 말한다] 픔 / 김은지 | 정야 | 2020.12.28 | 2076 |
220 | [리멤버 구사부] 마흔이 저물 때쯤의 추석이면 | 정야 | 2020.09.28 | 2056 |
219 | [시인은 말한다] 영원 / 백은선 | 정야 | 2021.07.12 | 2045 |
218 | [시인은 말한다] 길 / 신경림 | 정야 | 2022.01.17 | 2040 |
217 | [시인은 말한다] 벽 / 정호승 | 정야 | 2019.02.11 | 2033 |
216 | [리멤버 구사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 정야 | 2022.01.10 | 2031 |
215 | [리멤버 구사부] 내 삶의 아름다운 10대 풍광 | 정야 | 2022.01.24 | 2025 |
214 | [시인은 말한다] 봄밤 / 김수영 | 정야 | 2019.05.20 | 2022 |
213 | [시인은 말한다] 함께 있다는 것 / 법정 | 정야 | 2021.08.09 | 2019 |
212 | [시인은 말한다] 세상 쪽으로 한 뼘 더 / 이은규 | 정야 | 2022.02.03 | 2017 |
211 | [리멤버 구사부] 나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 정야 | 2021.12.13 | 1957 |
210 | [시인은 말한다] 직소폭포 / 김진경 | 정야 | 2021.08.23 | 1953 |
209 | [리멤버 구사부] 도토리의 꿈 | 정야 | 2021.08.30 | 1948 |
208 | [리멤버 구사부] 매일 같은 시각 한가지에 집중하라 [1] | 정야 | 2017.07.21 | 1879 |
207 | [리멤버 구사부]오늘, 눈부신 하루를 맞은 당신에게 [2] | 정야 | 2017.01.09 | 1874 |
206 | [리멤버 구사부]삶은 죽음을 먹는 것 | 정야 | 2017.10.28 | 1838 |
205 | [시인은 말한다] 1년 / 오은 | 정야 | 2020.01.13 | 17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