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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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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30일 09시 39분 등록

마당에 열린 망고


혼자 사는 건 저승체험이라 믿던 터였다. 모든 게 달라졌으므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므로, 나조차 누군가를 알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곳에 살기 위해선 과거의 나를 죽이는 정신적 살해의 과정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터였다. 날마다 생명하는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의미의 명사가 동사가 되고자 하염없는 자맥질과 삽질을 거듭하던 때, 나는 과연 살아있는 걸까를 책문하던 그때, 가족이 왔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늘 반전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게다. 나에겐 가족이 있었다. 가족들은 나를 살렸으니 나는 그대들을 보우하리. 내일이 없다 하고 그들과 놀자 싶었다. 큰 마당이 있는 집을 구했다. 마당엔, 철없이 열매가 열렸다. 무르익은 열매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 다시 열렸다. 어느 날 마당에 떨어진 푸른 과일을 베어 물었더니 엽록소의 싱싱함이 미뢰에 가득 번진다. 구아바였다. 마트에서나 보던 망고가 집 앞 큰 나무에서 익어 떨어졌다. 마당구석 바나나 나무에서는 바나나가 열리고 또 열렸다. 뿌리부터 휘어진 야자나무 그 흔들거리는 꼭대기에 올라가 내 머리통보다 큰 코코넛을 땄다. 부엌칼로 몇 번을 내리쳐 딱딱한 껍질 속 청량한 과즙을 온 가족이 낄낄거리며 야수같이 들이켰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한 낮에 맑은 하늘이 쏟아지는 비로 바뀌면 누군가 팬티바람으로 마당에 나가 비를 맞았다. 누가 뭐랄 새도 없이 모두 팬티만 걸치고 굵은 비를 얼굴로 맞고 뛰어다닌다. 뛰다 지치면 그 자리에 주저 앉았고 주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누웠다. 누워서, 비를 맞으며 서로의 손을 찾았고 손을 잡고는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이내 비가 그치면 실루엣이 분명한, 표백한 듯 하얀 구름이 온 하늘에 뭉글거렸다. 다시 쏟아지는 장대비, 조용해진 마당에 혼자 서서 팔을 뻗었다. 물컹 물컹 보드라운 땅, 땅을 발음해 본다. 이응처럼 둥글고 쌍디귿처럼 믿음직하다. 밟을 때마다 발자국이 생겼다 사라지는 지구의 속살.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비가 미사일 궤적처럼 내 얼굴에 꽂힌다. 이토록 풍요로운 미사일이 있을까. 손을 허리춤에 걸치고 비가 그칠 때까지 마당 잔디를 맨발로 거닐었다. 0.06톤의 중력을 내뿜는 지구를 느끼며 혼자 중얼거렸다. 태어나길 잘했다. 때마침 아내가 저녁 먹으라 부른다. 꿈인가 싶은 것이다.


그 밤) 3개월 만에 만난 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그니스이바구"를 해 달라기에 하데스에 잡혀 저승으로 시집 간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아무 말 않길래 자는 줄 알았던 딸이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시집가면 시집에 아빠가 데려다 줄 거야?"

"..."


나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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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12:21:24 *.144.5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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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08:41:13 *.111.14.198

글을 읽고 있으니, 다시 만난 가족들과 함께 마당에서 내리는 빗물 맞으면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제 눈에 그려집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에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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