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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0일 21시 26분 등록
명절 연휴 어떻게 보내셨나요? 이번 편지는 상담 요청 메일에 대한 답장을 준비했습니다.


제사 노동 미투에 동참하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들 셋을 둔 워킹맘이고요. 남편이 장남이어서 아버님 돌아가시고 제사를 맡았고 10년이 지났습니다. 어머님이 살아계셔서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 5가지 이상, 과일 5가지 이상, 고기도 육해 종류별로 다 올립니다. 상차림이 어마어마합니다.

지난 3년간 둘째 동서 내외가 해외에서 지내는 바람에, 고등학생 큰아이와 중학생 아들 둘을 키우고 직장 다니며 제사와 어머님 병 수발을 제가 다 했어요. 큰아이가 고3이었던 해 수능 성적 나오는 날이 제사였는데, 제가 정말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했어요. 그 날부터 저는 칼을 갈았고 작년 설 명절에 가출해 버렸어요. O씨 끼리 명절지내라고요.

작년에 시댁에 남편을 통해 선언했어요. 둘째 동서에게 3년 동안 제사 지내라고, 3년 뒤에 다 간소화시켜 가져오라고요. 남편이 추석명절은 각자 집에서 쉬고 설날은 세배해야하니 만나고 제사 3번 중에 1번은 안 해도 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시어머니를 설득하는 문제가 쉽지 않네요.

그런데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작년에는 제사 때 동서 네에 안 갔는데, 올해 설에 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 명절 연휴 어떻게 보내셨나요? 동서 네에 가셨나요? 아니면 가지 않으셨나요? 


일단은, 푹 쉬세요.


초등학교 교사로,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들 셋을 키우며, 10년 간 맏며느리로 제사를 지내고 시어머니 병 수발을 하셨다니, 그동안 얼마나 고단하셨을까요.


가까이서 지켜보는 남편과 세 아들도, 멀리 지내느라 제사 노동에 동참하지 못한 동서 내외도 맘이 편치는 않았을 거예요.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했고, 칼을 갈았고, 작년 설 명절에 가출을 감행하면서’ 확보한 3년의 휴가이니만큼, 일단은 푹 쉬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무리하느라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건강검진도 받고, 운동도 해보세요. 교사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맏며느리로서, 의무만 하기에도 너무나 벅차 가장 소중한 자기 내면을 외면하진 않았는지요? 책도 읽고 여행도 하면서, 그동안 O씨 가족 챙기느라 돌보지 못한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시길 바랍니다. 존재자체로 힘이 되는 친구를 만나 시댁 문화에 대해 맘껏 비판하고 조언을 얻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어머님 말씀대로 ’예전 방식을 고수해 전 5가지 이상, 과일 5가지 이상, 고기도 육해 종류별로 다 올려, 상차림 어마어마하게’ 했을 때 어땠나요? 남편 말대로 ‘추석명절은 각자 집에서 쉬고 설날은 세배해야하니 만나고 제사 3번 중에 1번은 안 해도 되는’ 지금은 어떤가요? 어머님과 남편 말고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저는 11대 종손부입니다. 결혼할 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맞벌이를 하면서 아들 딸 두루 많이 낳고 제사를 물려받으면 내 손으로 대가족 문화를 바꾸겠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전쟁을 겪은 부모님 세대는 ‘제사 지내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이라고’, ‘나도 제사 지냈으니 너도 지내라, 그게 도리다’, ‘나도 아들 낳았으니 너도 아들 낳고, 대대손손 제사 문화 전수하라’ 하십니다. 아니면, ‘나 죽을 때까지만, 나 죽고 나면 니들 마음대로 하라’ 하십니다. 며느리가 직업병에 걸리든 아들이 생업을 잃든, 전쟁을 겪지 않은 우리 세대의 시련은 무화되게 마련이기에, 웬만해서 시부모님을 설득할 순 없고 그렇다고 불효를 저지를 수 없으니, 내가 부모 세대가 되기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바꾸자고 목표를 세웠더랬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십 년이나 제사를 지냈다면, 때는 지금입니다. (아니, 많이 늦었어요!) 칼자루는 당신이 쥐고 있습니다. (시어머님, 남편, 동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대대로 이어온 문화가 싫어도 그대로 이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그만 둘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제사 노동 ‘미투’, 자신부터 설득하세요.


제가 제사 노동 미투에 동참한 이유는 남존여비와 남아선호를 근간에 둔 가부장제 일꾼으로 부역하는 일이 제 삶을 분열시켰고, 사춘기 딸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여기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 했어!’라고 할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제사 노동 미투에 동참하기로 작정한 이유가 있나요? 어마어마한 상차림이 힘든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요. 한번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먼저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과 시어머니, 동서도 설득할 수 있습니다. 


‘동서에게 3년 동안 제사 지내고 3년 뒤에 다 간소화시켜 가져오라고’ 하지마시고, 지금 바로 행동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동서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어떤 변화를 맞이하실지 저도 응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IP *.202.11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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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08:39:12 *.102.1.153

이번 이야기도 그에따른 처방전도 잘 보았습니다.

처가 제사도 1/2로 줄이기로 하였다고(부모님 합치는걸로,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명절에 장인어른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래도 많다고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ㅠ ㅠ 

너무 멀어서 저희는 참석을 잘 못해서 더이 상 말씀드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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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3 01:41:32 *.62.21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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