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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6일 21시 27분 등록
궁상 떠는 글은 쓰지 않겠다고 늘 마음 먹고 있지만 오늘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지난 1월의 사고에 이어 퇴사 결정등이 연구원 기간의 마지막 과제와 더불어 마음이 보통 무거운 게 아니다.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하다 보니 죄송하지만 연구원과제를 자꾸 뒤로 미루고 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마음이 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읽지 못하면 쓰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근황이라도 정리하면서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 다행이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정리되는 것이 본인은 한결 기분이 나아지지만 두서 없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께는 한량없는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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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마지막 대리점 방문과 송별회, 그리고 이임 인사와 더불어 오가는 술잔은 입안에 상처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내가 미련이 많은 건지, 정이 많은 건지 오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눈물샘이 주책을 떨고 있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꼭 깨물고 냉정한 마음으로 앉아 밝은 모습을 보여주겠노라 마음을 먹지만 가슴은 왜 그리 뭉클해 지는지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며칠이다.

회사의 간판을 등에 업고 16년을 살았으니 길다면 긴 세월일 것이다. 같이 시작했던 사람 중에는 이미 그 회사에서 책임자가 되었거나 아니면 대부분 중견 간부로 사업을 좌우하는 위치가 되어있다. 이번 나의 퇴사를 계기로 다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듯하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는 사업이니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다만 술이 한 잔 오고 가며 지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울컥해지곤 한다.

퇴사 인사 메일을 보냈더니 여러 곳에서 구구 절절한 답장들이 오고 있다. 대부분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의외로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은 무엇 때문일까… 미련이 많아서일까? 정이 많아서일까? 아님 언어보다 문자에 약해서일까? 여러 가지로 유추해 보았는데 아마 그건 그래도 내가 이 일에 열정을 많이 쏟았었구나 하는 결론이다.

늦게 유학을 가서 졸업을 하고 그 나라에 동화되기를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젊은 나이에 좌절을 경험하고 다시 새롭게 정착할 곳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뿌리박을 결심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럴 듯하게 정말로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이곳에서 굴러다니는 자갈에 불과했다면 그곳에서는 졸지에 스타로 부상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샐러리맨이었지만 오너였고, 명령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명령하는 자리에서 살게 되었다. 거칠게 설명하자면 신규사업 개척을 하여 성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 같은 위치로 아주 특별한 케이스에 해당되는 경우이다. 물론 같이 부삽을 들었던 이들이 이미 일찌감치 떠나고 없는 상황으로 어쩌다가 내가 그것을 고스란히 받는 행운도 따라주었다.

나는 남자 복만 빼고는 다른 복은 많은 사람인 듯하다. 그 중에서도 인복이 많이 따라주었다. 부하의 장점과 잠재력을 파악하고 그 업무에만 충실하게 해 주었던 상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십여 년이 지나도 안부를 물어주고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상사들 덕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나에 대한 걱정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참으로 고마운 이들이다.

88년도에 일본으로 갔으니 20년이 되었다. 어쩌다 내가 살아 온 인생의 반을 그곳과 연결되어 보냈다. 그곳에서 대학을 다시 다녔고 직장에 들어가 서바이벌을 했고 다시 한국으로 금의 환향하여 멋진 인생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 회사의 한국 고객들은 처음엔 나를 경원했었다고 본다. 교포인가? 일본인인가? 처음엔 그 질문에 답하기에 바빴었다. 지금은 형편없어진 일본어 실력이지만 당시엔 살아있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총명한 아가씨였던 것이다. (아 그렇게 쫌 젊게 보이기만 했다는…….머리 긁고 있음)

그런데 이번에 마지막으로 대리점을 다니면서 그 때 그 사람들과 다시 만나 대화하니 내가 그렇게 털털할 수가 없더라며 이야기를 해 준다. “나 실은 에로(?)사항 무지 많았어요, 호호호.” 그러자 그들은 “아 그러셨어요? 몰랐어요~” 하는 식이다. 이런 된장, 나 혼자 속 끓였네..
첨에는 무지 까칠하신 듯 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 털털하더라구요, 참 편하게 대해 주셨어요..”어딜 가나 이런 식의 답변이었다. 까칠녀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듯하다. 허기사 어딜 봐서 내가 까칠한가? 그러냐 그런가 하고 인생을 바라보기 시작한지 나 꽤 되었다. 흐흠( 헛기침)

조금은 쓸쓸하게 저 혼자 하는 세레모니에 의외로 많은 분들 답을 주면서 업무와는 별도로 좋은 지인으로 남았으면, 또는 친구로 있었으면 하는 메일을 받고 있다. 아니면 그간 정말 고생하셨다는 한 마디를 보내오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이었는지라 너무나 감동스럽다. 일본인들도 그렇고 한국사람들도 그렇고 그런 메일을 받을 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린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이들을 보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컴퓨터 앞에서는 눈물을 닦지만 난 이들 앞에서는 또 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나를 파악했듯이 내가 그들과의 이별을 아파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참 좋은 사람들과 만났었다.
나는 정말….


추신: 오늘 복분자를 마셨습니다.. 이러면 시가 나와야 되는데 어쩌다 산문이 나왔습니다. 넓은 양해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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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근
2008.03.16 23:36:34 *.115.248.187
샬롬!
너무 속상하고 아팠었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분하고 억울했답니다.
사랑하는 직원들을 제대로 예우하고 지켜 줄 방법을 찾았었지요.
하지만 나에게도 명분이 필요했답니다.
"변화와 도약"
이걸 명분으로 짧은 직장생활을 정리했었지요.
그런데 왠걸, 일주일도 안되어서 더 크고 좋은 곳에서 콜이 들어온 거예요.
잘 모르지만 삶이 그런것 아닐까요?
향인님을 더 지극히 필요하고, 더 크게 활약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곳이 있기에 그 기회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큰 님께서 주시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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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2008.03.18 09:45:05 *.177.93.244


왠지 님의 글을읽고나니 내가 울컥합니다그려.

젊은 시절 20년하고 철없던 시절 하면 인생 전반부 마친거네요.

열심히 잘 사셨네요.

지금처럼 흐트러짐 없이 그리고 건강 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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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8.03.18 13:01:29 *.48.38.103
복문자 향기를 솔솔 풍긴 거시기한 글이었는데....이런 답글들을..

희근님, 고맙습니다. 큰 님께서 베푸신 그간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소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봄날 되시길..

쿨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그대에게 감사하오. 한 마디 말에도 오늘은 유달리 소통이 즐겁구랴. 베가스의 꿈은 언젠가 이루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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