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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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 동네에서 삶의 기반을 잡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셨다. 그곳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전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거의 강박에 가까운 억척이었을 정도로 몰입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디에서 그러한 대단한 힘이 솟구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을 사고 난 엄마의 행동은 장군의 포효와도 같이 일사천리로 쭉쭉 뻗으며 대단했다. 대지가 커다란 집을 산 엄마는 마당 한 켠의 너른 밭을 뭉개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때에는 수도가 있기는 해도 서울지역에 허구한 날 단수가 잘 되기도 하는 등 마음대로 수돗물을 받아먹을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 언덕의 경사가 진 우리 동네에도 곧잘 단수가 되고는 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비가 와서 범람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물이 나오지 않아서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단수로 인한 물난리를 격고는 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난다. 물을 구하기 위해 커다란 드럼통을 몇 개씩이나 준비해 놓고 물을 받아가며 집을 지으셨던 일. 먹을 물이 부족해서 새빨간 소방차가 와서 식수를 공급하던 일, 그러면 겨우 한 두 바케스 정도나 타서 쓸 정도였으니 그 물 가지고 보통의 대여섯 식구들이 어떻게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세수도 못하고 물수건으로 닦고는 등교하고 출근하고는 하였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러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 시절에 집을 지어야 했으니 엄마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공사를 마냥 중단시킬 수만은 없으니 물을 구하기에 바빴고 공연히 동네사람들은 집을 짓는다고 불평을 하기 일 수인데다가 예로부터 타 지역에 가서 쉽게 살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지역은 특수성이 있어서 몇 몇 사람들이 거의 뗑깡에 가까운 억지를 쓰면은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기도 해서 물을 구하느라 거의 혼비백산이 되고는 하셨다. 그래도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몇 몇이 있기도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은근히 심술을 부리면서 약만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그러니 날짜만 넘기며 여인의 몸으로서 인부들 부리기는 또 얼마나 애가 타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인가.
참, 엄마가 집을 지으면서 늘 해주시던 말씀이 있고는 했는데 우리가 집을 지을 때에 뒷모도로 따라다니는 아저씨 중에 서울대학교 출신이 있었단다. 엄마는 그 아저씨 예를 들으며 사람이 배웠다고 다 잘사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해도 써먹지 못하는 공부가 있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 말씀인 즉은 공부가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도 같았다. 너무 고지식하게 공부만 잘해 가지고는 세상을 헤쳐나가기 힘들다고 말씀해 주시고는 했다.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마는 현실생활을 좀 더 여유롭게 잘 살아보기 위해 억척으로 일을 하셔서 더욱 그러하시기도 하겠지만 대단한 실용주의였다고 생각된다.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누누이 하시곤 하시며 손수 그 역할들을 실행에 옮기시고는 하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젊은 날 엄마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삶에 대한 구상을 하시고는 하셨다. 그야말로 빠듯한 살림에 아랫돌 빼서 윗돌 막고 윗돌 빼서 아랫돌 막아가며 생활을 일구어 가신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조금만 더 확실하게 배움이 있으셨더라면 대단한 여장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엄마도 여러 가지 생각과 궁리가 많으셨겠지만 자신의 생각들을 확고히 할 수 없는 불안감들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검증 받거나 조언을 받아 더 나은 발전을 태생적으로 꿈꾸시는 분이라고 생각된다. 생월달이 같아서 그런지 나는 이런 엄마의 심정이 누구보다도 이해가 간다. 이것이 타고난 천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그러한 경험을 중년에 들어서서부터는 너무나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내가 생각했던 모색들이 거의 빗나가지 않고 맞아 떨어졌지만 당시에 스스로를 믿는 확신이 부족하여 노력과 많은 기회를 소진해 버리고 만 경험이 몇 가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엄마가 애타게 벽돌을 쌓아가며 집을 지었던 때의 심정과도 같이 나 역시도 생활의 기반을 위하여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우선에 이렇게 읽고 쓰기에 더 먼저 서두는 것은 이러한 아쉬움이 일 때에 밀어붙여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생활의 안정이야 훨씬 보탬이 되겠지만 그것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의 후회가 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당시에 너무나도 열심히 여자의 몸으로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인부 아저씨들은 많이들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엄마는 왜정시대에 거의 짧게 배운 서툰 국문실력을 인부들 앞에서 들통이 나게 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외워버리고는 하였던 것이다. 일본말이야 배웠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의 건축용어란 것이 그리고 지금도 많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본 말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잘하시니 누구도 엄마가 국문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깡그리 외워서 일처리를 하는데다가 기억력도 남달리 뛰어나기 때문에 도저히 엄마를 속이거나 눈가림 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가 계셨지만 아버지는 도통 그러한 문제들이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는 분이셨다. 시간도 없거니와 그냥 한 귀로 듣고 곧바로 한 귀로 흘려버리는 통에 도무지 상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문제가 있어 해결을 청하려다가도 도리어 엉뚱한 곳에서 해결이 나지 않은 채 뱅뱅 돌고만 있곤 하니 하는 수 없이 엄마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는 했다. 차라리 큰오빠의 경우 손재주가 있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형이어서 묵묵히 엄마를 도와주는 것으로 훨씬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팔순의 두 노부부는 집에 계시면 토닥토닥 잘 다투신다. 아버지는 예전의 권위를 잃지 않으시려하고 어머니는 도와주시겠다고 얼쩡거리는 모습도 지켜보기 답답해하시곤 하는 것이다. 두 분을 보면서 사람의 사고체계가 정말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어머니는 힘이 달리시고 기억력이 감퇴해 그렇지 연세가 드셨다고 해서 상황파악이나 처신이 퇴화하는 것 같지 않은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내가 병원에서 지켜봐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여겨졌다. 남자들은 나이가 먹으면 행동반경이 현저히 떨어지고 급격하게 줄어드는 반면에 여자들은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활동을 다 지속시켜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무턱대고 편히만 모시는 노후에 대해 별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간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다가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가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오는 사례를 종종 보고는 하는 데 극진히 모신 아버지일수록 더 멍해지는 경우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전의 어른들 말씀처럼 깡마르고 꼬장꼬장하게 생긴 어르신들이 더 활동력과 생기가 있으며 특유의 괴팍함이 스스로의 삶을 더 잘 지켜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우연히 퀴즈 프로를 봤는데 그곳에 손자를 응원하러 90노인이 나오셨다. 할머니셨는데 혼자서 사신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놀랐다. 할머니가 총기가 너무나 있으시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책임지고 살려고 노력을 단단히 하시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그러하고 그리 몸과 마음이 일치하여 따라주지 못함이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그 할머니의 경우 오래 전부터 자신의 노년을 슬기롭게 준비해 오셨다는 느낌이 감동 깊게 파고들었다. 참으로 맑은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그 할머니를 보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동경이일만큼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부모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얼마나 복 짖는 일이겠는가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삶에 대해 노력하여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오래도록 경찰직에 계시다가 소방본부가 커지면서는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가셨다. 어쩌면 있던 곳에서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더 고생스러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직급인 소방 정의 진급을 달고서 정년퇴임까지 무사히 임하시고 아름답게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셨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아버지가 출동하는 빨간 불자동차보다 어머니가 줄을 서가며 식수를 받아오던 빨간 불자동차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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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러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 시절에 집을 지어야 했으니 엄마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공사를 마냥 중단시킬 수만은 없으니 물을 구하기에 바빴고 공연히 동네사람들은 집을 짓는다고 불평을 하기 일 수인데다가 예로부터 타 지역에 가서 쉽게 살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지역은 특수성이 있어서 몇 몇 사람들이 거의 뗑깡에 가까운 억지를 쓰면은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기도 해서 물을 구하느라 거의 혼비백산이 되고는 하셨다. 그래도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몇 몇이 있기도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은근히 심술을 부리면서 약만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그러니 날짜만 넘기며 여인의 몸으로서 인부들 부리기는 또 얼마나 애가 타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인가.
참, 엄마가 집을 지으면서 늘 해주시던 말씀이 있고는 했는데 우리가 집을 지을 때에 뒷모도로 따라다니는 아저씨 중에 서울대학교 출신이 있었단다. 엄마는 그 아저씨 예를 들으며 사람이 배웠다고 다 잘사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해도 써먹지 못하는 공부가 있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 말씀인 즉은 공부가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도 같았다. 너무 고지식하게 공부만 잘해 가지고는 세상을 헤쳐나가기 힘들다고 말씀해 주시고는 했다.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마는 현실생활을 좀 더 여유롭게 잘 살아보기 위해 억척으로 일을 하셔서 더욱 그러하시기도 하겠지만 대단한 실용주의였다고 생각된다. 많이 아는 것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에 대한 강조를 누누이 하시곤 하시며 손수 그 역할들을 실행에 옮기시고는 하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젊은 날 엄마는 밤을 꼬박 새워가며 삶에 대한 구상을 하시고는 하셨다. 그야말로 빠듯한 살림에 아랫돌 빼서 윗돌 막고 윗돌 빼서 아랫돌 막아가며 생활을 일구어 가신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조금만 더 확실하게 배움이 있으셨더라면 대단한 여장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엄마도 여러 가지 생각과 궁리가 많으셨겠지만 자신의 생각들을 확고히 할 수 없는 불안감들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검증 받거나 조언을 받아 더 나은 발전을 태생적으로 꿈꾸시는 분이라고 생각된다. 생월달이 같아서 그런지 나는 이런 엄마의 심정이 누구보다도 이해가 간다. 이것이 타고난 천성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그러한 경험을 중년에 들어서서부터는 너무나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내가 생각했던 모색들이 거의 빗나가지 않고 맞아 떨어졌지만 당시에 스스로를 믿는 확신이 부족하여 노력과 많은 기회를 소진해 버리고 만 경험이 몇 가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엄마가 애타게 벽돌을 쌓아가며 집을 지었던 때의 심정과도 같이 나 역시도 생활의 기반을 위하여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우선에 이렇게 읽고 쓰기에 더 먼저 서두는 것은 이러한 아쉬움이 일 때에 밀어붙여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생활의 안정이야 훨씬 보탬이 되겠지만 그것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의 후회가 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당시에 너무나도 열심히 여자의 몸으로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인부 아저씨들은 많이들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엄마는 왜정시대에 거의 짧게 배운 서툰 국문실력을 인부들 앞에서 들통이 나게 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외워버리고는 하였던 것이다. 일본말이야 배웠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의 건축용어란 것이 그리고 지금도 많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본 말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잘하시니 누구도 엄마가 국문을 잘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깡그리 외워서 일처리를 하는데다가 기억력도 남달리 뛰어나기 때문에 도저히 엄마를 속이거나 눈가림 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가 계셨지만 아버지는 도통 그러한 문제들이 머리에 입력이 되지 않는 분이셨다. 시간도 없거니와 그냥 한 귀로 듣고 곧바로 한 귀로 흘려버리는 통에 도무지 상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문제가 있어 해결을 청하려다가도 도리어 엉뚱한 곳에서 해결이 나지 않은 채 뱅뱅 돌고만 있곤 하니 하는 수 없이 엄마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는 했다. 차라리 큰오빠의 경우 손재주가 있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형이어서 묵묵히 엄마를 도와주는 것으로 훨씬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팔순의 두 노부부는 집에 계시면 토닥토닥 잘 다투신다. 아버지는 예전의 권위를 잃지 않으시려하고 어머니는 도와주시겠다고 얼쩡거리는 모습도 지켜보기 답답해하시곤 하는 것이다. 두 분을 보면서 사람의 사고체계가 정말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어머니는 힘이 달리시고 기억력이 감퇴해 그렇지 연세가 드셨다고 해서 상황파악이나 처신이 퇴화하는 것 같지 않은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내가 병원에서 지켜봐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여겨졌다. 남자들은 나이가 먹으면 행동반경이 현저히 떨어지고 급격하게 줄어드는 반면에 여자들은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자신들의 활동을 다 지속시켜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무턱대고 편히만 모시는 노후에 대해 별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간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다가 죽음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가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오는 사례를 종종 보고는 하는 데 극진히 모신 아버지일수록 더 멍해지는 경우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전의 어른들 말씀처럼 깡마르고 꼬장꼬장하게 생긴 어르신들이 더 활동력과 생기가 있으며 특유의 괴팍함이 스스로의 삶을 더 잘 지켜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우연히 퀴즈 프로를 봤는데 그곳에 손자를 응원하러 90노인이 나오셨다. 할머니셨는데 혼자서 사신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놀랐다. 할머니가 총기가 너무나 있으시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책임지고 살려고 노력을 단단히 하시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그러하고 그리 몸과 마음이 일치하여 따라주지 못함이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그 할머니의 경우 오래 전부터 자신의 노년을 슬기롭게 준비해 오셨다는 느낌이 감동 깊게 파고들었다. 참으로 맑은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그 할머니를 보면서 노년의 삶에 대한 동경이일만큼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부모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얼마나 복 짖는 일이겠는가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삶에 대해 노력하여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오래도록 경찰직에 계시다가 소방본부가 커지면서는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가셨다. 어쩌면 있던 곳에서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더 고생스러운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직급인 소방 정의 진급을 달고서 정년퇴임까지 무사히 임하시고 아름답게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셨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아버지가 출동하는 빨간 불자동차보다 어머니가 줄을 서가며 식수를 받아오던 빨간 불자동차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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