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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0일 12시 40분 등록
"남자는 지칠 때 결혼하지만 여자는 호기심이 있을 때 결혼하지. 결국 모두 실망한다네"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中  극중 인물인 헨리워튼이 도리언 그레이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신만의 것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이성간의 사랑을 보자면, 사랑에는 분명히 시대적인 요소가 개입된다. 중세유럽에서는 귀부인들에 대한 기사들의 충성스러운 사랑이 귀감이 되었고, 유교가 지배한 조선의 양반가에서는 여인의 충절과 지조만큼 고귀한 사랑의 표현방식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본질적인 사랑의 근원은 시대를 초월한 전우주적인 것이다. 그래서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우주를 단 하나의 사람으로 줄이고 그 사람을 신에 이르기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전 처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젊음이 꽃으로 피어나와 결실을 맺는 순간은 언제나 아름답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지만, 신부는 언제나 아름답고 신랑은 언제나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그 아름다움은 새로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숙지성을 의미한다. 알음알음 알고 있는 것이 아름답고 예쁘다. 요즘은 모르는 것일수록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스개 소리로 남자의 최고의 이상형이 '처음 본 여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스개 소리는 우스개 소리일 뿐이다. 새롭다는 유혹이 진정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된장 묵히듯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어떤 남자가 처음 본 여자와 덥석 결혼을 하겠는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아름다움을 숙성시킨다. 서로를 알아가며 가까워지면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남녀간의 사랑과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이 바로 결혼식이 아닐까? 그 순간 신랑과 신부는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진부함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짐은 서로에게 더 이상 알아볼 것이 없다는 편견을 만들어 낸다. 사람이 변하듯 사랑도 변하고,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모든 상황들이 변한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식는다. 알아감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어도 다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알고자 하는만큼 더 아름다워지는 그것의 이름은 사랑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남녀간에 시들지 않는 사랑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생물학적인 혈연으로 이루어지 않은 사랑은 생물학적인 흥분작용이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마련이다. 누가 말했던가 - 사랑은 새것이 아니라고 - 그것은 슬픔과 고통으로 수없이 헤지고 헤져도 변하지 않는 천과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변하지 않는 천'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도 변한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하는 진리다. 다만 변화의 방향은 다를 수 있다. 변화는 여러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천'이 아니라 '변하는 천'이며,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천이 가지고 있는 따듯함이라는 본질이다. 목도리를 아무리 빨고 빨아서 다 헤진다한들, 주인의 몸을 따듯하게 감싸주던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사랑의 요소다. 단, 그것은 주인이 다 헤진 목도리를 걸레로 취급하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결국 본질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타자에 의해 변할 뿐이다. 우리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의 그대로 거기 있고 다만 우리가 변한 것이다. 시인의 얘기처럼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놀라움을 잊은 것 뿐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난 너의 속눈썹이 예뻐서 널 좋아한거야"라든지 "난 니 긴 생머리가 좋아서 널 사랑하게 된거야" 따위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 한다는 얘기다. "~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때문에" 하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아름다운 그녀의 머리결에 반해 사랑을 시작했어도, 그녀가 대머리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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