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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9일 02시 33분 등록
그때 이후 그도 울고 있을지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옛 생각에 잠기는지 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니 만약 보게 된다면 두려울 것 같다. 얼마나 좋아졌을지 보다 얼마나 늙어버렸을까 봐 걱정이 앞서는 마음이다. 좋아졌다면 퍽이나 다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처럼 그도 자유롭지 못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나와는 다른 사람이기는 하다. 많이.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다. 같기도 했지만 우리는 서로 많이 달랐다. 그러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는 내게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8살 차이이지만 너와 나의 나이 차이는 실제보다 훨씬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고. “너의 사고방식은 앞 세대를 향해 추종해 가고 나는 뒷 세대를 쫓아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갭이 족히 30년 차는 벌어지는 것 같다”고 한탄 하며 그 스스로도 우리의 사고 체계 전반에 대한 의식을 점검해 보려 노력을 해보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일컬어 이조 오백년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으로 나를 가두려고 하니 말도 안 된다고 늘 우울해 하고 갑갑해 했다. 내 가까운 주변에 그가 주장하는 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고 사실로도 없었다. 그의 주변에도 없었다.

그는 결혼할 당시에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해서 먼저 내게 안심을 시키려고 선수를 치기도 했지만 이내 자기들 방식의 가풍으로 합세하여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마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들을 하는 모양이다. 그랬다. 확실히 우리의 경우도 바로 그런 케이스에나 해당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필요를 느끼고 그렇게 행하여야 함을 알지만, 그 고비를 슬기롭게 넘기어 익숙한 것들과 전투하듯 냉정하게 결별하지 못하면 여간해서 쉽게 바뀌어 지지 않는 것이 생활태도요 습관이요 일처리 방식인 것처럼 우리도 머리로는 의식하면서 가슴으로까지 느껴가며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며 살았던 것이다.

사람 나름이고 성격 나름이며 생활방식 나름이긴 하겠지만 386세대인 나와 475세대인 그는 그렇게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극명하게 갈라져있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부양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이전 세대들의 순종적 가족관을 그대로 보수적으로 지켜나가려고 했고, 나는 가능하면 나누어 함께 지거나 스스로가 각자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 늘 첨예하게 부딪혔다. 부모형제를 위해 재산을 다 주어버렸으니 이제는 정말 그래야 했고 충분히 경제력을 해결해 주었지만 마음처럼 걱정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원망만 듣기에 일쑤였다. 그들 스스로가 소외의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는 집착에 가까운 생활태도 때문이었다.

물질을 떼어주어 따로 가졌으면 정신적으로도 확실히 독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받을 때와는 달리 금세 그 이치가 따로 노는 것이었다. 당연히 우리도 더 이상 신경 쓰기를 잊어버리고 집중해서 살아야 할 것이 아니었겠나. 날은 저물고 해야 할 일은 많다고 그는 늘 걱정하며 중얼거렸다. 머리카락은 하루가 멀게 허옇게 흰서리가 내리고 애들은 겨우 운동장을 걸음마할 정도 이니 사고가 온전한 사람이라면 어찌하여 마음이 바쁘지 않을 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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