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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6일 05시 32분 등록


안녕하세요.

지난 번 그리스에 이어 오늘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치즈를, 역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학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것들인지라 중세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열명의 남녀, 열흘간 100가지 이야기

중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둠과 절망입니다. 5세기 말 서로마제국이 붕괴된 이후에 유럽은 바이킹, 게르만, 몽고, 이슬람 등 이민족의 끊임없는 침입과 페스트(흑사병) 등의 전염병으로 암흑기를 맞이합니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삶을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특히 몇 달 이상 숙성해야 하는 치즈는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운 사치였겠죠. 안타깝게도 이 시기에 수천년을 이어온 치즈 제조기술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로마의 전통을 보존하려 노력했던 수도원에서 계속해서 치즈를 만들었고, 덕분에 전통적인 제조기술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중세의 암흑이 걷힐 무렵 쓰여진 <데카메론>에는 중세인들에게 치즈가 어떤 의미였는지 잘 보여주는 글이 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벤고디라고 부르는 지방에 있는데, 그곳에서는 소시지로 포도나무를 묶고 1데나로만 있어도 거위 한 마리를 살 수 있으며 거기에 병아리를 덤으로 준다면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파르마산 치즈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산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일은 할 것도 없이 마카로니와 라비올리를 만들어 닭을 삶은 수프에 넣어 요리하면 되고, 그걸 아래로 던지면 먹고 싶은 사람이 얼마든지 먹는다고도 했지요. 또 근처에는 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진짜 백포도주 강이 흐르고 있어서 아무나 실컷 마실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어요.

 

<데카메론(Decameron)>1351년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인문학자인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가 발표한 단편 소설집입니다.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의 별장에 모인 젊은 남녀 열명이 하루에 한 사람당 한 가지 씩 열흘 동안 나눈 이야기, 100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의 데카Deca’는 그리스어로 10을 의미합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쉬었다고 하니 정확히는 ‘14일간이겠네요. 100가지라고 해도 매일 주제를 정해서 이야기를 나눴기에 다양성과 함께 통일성도 갖추고 있습니다.

데카메론 3.jpg

A Tale from The Decameron by John William Waterhouse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ummary_of_Decameron_tales

 

<데카메론>은 수많은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이탈리아 최고의 산문문학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발표된 직후에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데카메론>이 이탈리아어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라틴어로 쓰여진 글만 문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다 평가되었지요. 이탈리아어는 그저 속어 취급을 받았을 뿐입니다. 조선시대에 한글로 쓰여진 문학이 낮게 평가받던 것과 비슷합니다.

또다른 이유는 <데카메론>이 현실세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과 부도덕한 성직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작품성이 낮은 쓰레기 같은 글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는 15세기가 되자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집니다. 이 때 <데카메론>도 삶의 의미를 이탈리아어로 쉽고 명확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단테의 <신곡(神曲)>과 비교해 <인곡(人曲)>이라는 극찬을 받게 됩니다. 이후 오랫동안 이 책에 사용된 이탈리아어는 산문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의 소재와 구성은 다른 나라의 많은 작가에게까지 영감을 주었습니다.

 

파르미자노 레지아노가 산처럼 쌓여 있고, 화이트 와인이 강이 되어 흐르는 곳

위에 예시한 글은 <데카메론> 중 여덟째날의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환상적인가요? ‘그곳은 암흑기를 살아가는 중세인들뿐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저도 당장에 달려가고 싶을 만큼 멋진 곳처럼 보입니다. 힘든 노동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던 중세인들에게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낙원을 꿈꿨습니다. 코케인(Cockaigne)이라고 불리는 낙원에서 사람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자거나 놀아도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났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음식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파르마산 치즈가 산처럼 쌓여 있고이네요. 여기서 파르마산 치즈는 파르미자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를 말합니다. 중세뿐 아니라 현대에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먹는 고급 치즈 중의 하나이지요. ‘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진짜 백포도주 강도 눈에 띕니다. 낙원에 치즈 산과 와인 강이 흘렀다는 표현은 그만큼 그 두가지가 중세를 사는 일반인들은 먹기 어려운 귀한음식이었다는 방증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의 평생 소원이 쌀밥에 고깃국 맘껏 먹는 것이었던 것과 일맥상통하지요.

 

구운 돼지들이 등에 나이프와 포크를 꽂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구운 거위가 날아다니고 물에는 튀긴 생선들이 펄떡이고 있는데 모두 명령만 하면 입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강에는 맘껏 마실 수 있는 와인이 흐르고 있고 나무에는 팬케이크가 자라고 있습니다. 날씨는 언제나 온화하지만 때로 하늘에서 치즈가 내릴 때도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젊음을 약속 받았습니다. 전쟁이 없는 데다가, 누구나 50세가 되면 다시 열살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뱅이의 천국.jpg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le Vieux)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wikimedia.org/

 

독일 동화 <게으름뱅이의 천국>에 묘사된 낙원의 모습입니다. 독일어로는 이런 낙원을 슐라라펜란트(Schlaraffenland) 부르는데, <데카메론>의 코케인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쯤 되니 중세를 살며 코케인이나 슐라라펜란트를 꿈꿨던 사람들이 너무 안쓰러워집니다. 그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면서 치즈와 와인을 맘껏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꾸었겠지요. 힘겨운 노동과 전쟁이 없는 나라, 젊음을 즐길 수 있는 나라. 오늘도 내일도 죽어라 일하지만, 정말 죽어서야 갈 수 있는 신이 사는 천국이 아니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인간의 낙원을 꿈꿨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귀족들이나 최상위 성직자들만 맛있게 먹고 배부른 세상. 그런 세상을 살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꿈꿨던 곳이 이 말도 안 되는 낙원 '코케인'은 아니었을까요.

발음과 철자가 비슷해서 헷갈리기 쉽지만 코케인(Cockaigne)과 마약의 한 종류인 코카인(Cocaine)은 다른 말입니다. 코카인은 원료인 코카(coca) 잎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코케인을 꿈꾸며 몽환경(夢幻境)에 빠지는 것과 코카인을 통해 느끼는 도취(陶醉)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둘 다 현실을 잊게 하지만 깨어나면 허망하고,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는 건 단지 우연일 뿐입니다.

 

어렸을 때 <게으름뱅이의 천국>을 읽으며 환상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야 치즈 맛도 와인 맛도 몰랐지만 돼지고기가 말만 하면 입 속으로 들어오고, 팬케이크가 나무에 주렁주렁 열리는 곳이 있다니... 하루 종일 잠만자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슐라라펜란트에 꼭 가고 말거야라고 다짐했습니다만, 그 다짐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책이 이렇게 끝났기 때문이지요.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꼭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그곳은 두껍고 커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죽으로  성벽을 허물어질 때까지 핥아먹어야 합니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야기를 하다 보니 많이 길어졌네요. 본격적인 파르미자노 레지아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 참고문헌

<치즈의 지구사앤드류 댈비, 강경이 옮김, 휴머니스트, 2011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박상진 옮김, 민음사, 2012

<데카메론: 중세의 그늘에서 싹튼 새로운 시대정신> 박상진, 살림출판사, 2006

<낙원> 마노 다카야, 임희선 옮김, 도서출판 들녘, 2000

<올어바웃 치즈> 무라세 미유키, 구혜영 옮김, 예문사, 2014

<내 미각을 사로잡은 104 가지 치즈수첩> 정호정, 우듬지, 2011

<잘 먹고 잘사는 법 046, 치즈> 이영미, 김영사, 2004

<500 치즈> 로베르타 뮤어, 구소영 옮김, 도서출판 세경,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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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08:50:37 *.111.14.122

다음주에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지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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