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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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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8일 22시 37분 등록

이번 가족토론으로 선정한 책은 <열하일기> 입니다. 큰 딸은 채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인문고전 학습만화 <열하일기> (박교영 글, 박수로 그림)로 읽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우정을 주제로 한 김경윤 작가의 수업을 대화도서관에서 들었습니다. 김경윤 작가는 청소년 인문도서 전문작가로서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가다>라는 책을 쓴 분입니다. 아내와 저는 고미숙 선생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박지원 저, 고미숙·길진숙·김풍기 역, 북드라망)를 읽었습니다. 


<책소개>


고미숙 선생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책제목이 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열하일기를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적었습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씨는 서문에서 조선왕조 500년 통틀어, 아니 동서고금 여행기를 통틀어 ‘단 하나의 텍스트’라고 칭찬합니다. 반박할 근거가 궁색하기에 일단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열하일기를 뜯어보면 볼수록 최고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습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조선 정조 때 청나라에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입니다. 연암은 청나라 건륭제 70세 생일 축하 사신단이 되어 청나라 수도 연경에 갑니다. 때마침 열하에서 휴가 중이던 건륭제가 조선 사신단을 열하로 불러들이면서 공교롭게도 조선 최초로 열하를 다녀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열하일기에는 연암이 당대 지식인들에게 전하는 놀라운 메시지로 가득합니다. 연경을 다녀온 기록은 있지만 열하를 다녀온 기록은 처음입니다. 기한에 맞추려고 연속되는 강행군 중에서도 연암은 끊임없이 기록하고 사유합니다. 온갖 이질적이고 특이한 존재들 사이를 종행무진 누비고 다니면서 청나라의 문명을 가감 없이 기록하면서 주옥같은 명문장을 남깁니다. 중국 선비들과 밤을 새워 필담을 주고받으며 당대 사유의 경계를 드러냅니다. 아득히 펼쳐진 요동벌판에 들어서 ‘아! 좋은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구나!’라고 감탄합니다. 하찮은 것들을 재생하여 지혜롭게 사용하는 청나라의 문명을 보며 ‘청나라의 장관은 기와 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무엇보다 유머와 비판이 뒤섞이며 빛을 발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웹툰이나 시트콤의 유머코드가 끊임없이 읽힙니다. 낄낄대며 웃다 보면 어느새 가공할 사회 비판을 만납니다. 수레가 다닐 도로 하나 변변히 닦지 못하고, 두세 명의 종을 부려야 겨우 말을 타는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북벌을 논하기 이전에 청나라의 문명부터 배우라는 북학을 제시합니다. 호랑이를 앞세워 양반의 허위를 까발린 ‘호질’도, 어느 아나키스트의 통쾌한 사회전복 이야기 ‘허생전’도 모두 열하일기 내용입니다.

<독서 토론>

아빠) 고미숙 선생님은 연암 박지원의 글이 ‘5천년 최고의 문장’라고 칭찬하면서도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연암에 대한 글을 읽다가 관련 근거를 찾았습니다. 경희대 전호근 교수님이 쓴 <한국철학사>에 이렇게 나옵니다.

‘박지원의 문장을 최고라고 평가한 데 대해 누가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구한말 문장가 주에 창강 김택영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여한구가문초>라고 해서 고려와 조선의 뛰어난 문장가 아홉 명의 문장을 뽑아서 구가문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연암의 문장을 가장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 북한의 연암 연구자인 김하명도 연암을 우리 고전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박지원의 문장을 5천 년 최고의 문장이라고 한 것은 제 독단이 아니라 선배 학자들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한국철학사> 558~559쪽)

박지원의 문장과 관련한 유명한 사건도 있습니다.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사건이 있습니다. 명말청초 조선 문인들 사이에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글로 적는 흐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연암의 열하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정조 임금은 이런 흐름이 못마땅했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을 더럽힌다고 본 겁니다. 새로운 문체를 패관소품(稗官小品)이라고 부르는데, 정조는 패관소품을 버리고 고문체로 글을 쓸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선비들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명령했습니다. 연암의 열하일기도 금서로 지정됐습니다. 정조 임금은 연암에게 모범적인 문체로 반성문을 써 오면 홍문관 대제학이라는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고개를 숙일 연암이 아닙니다. 연암은 ‘죄가 너무 커서 반성문을 쓸 수 없다’면서 끝까지 따르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더라도 자신의 문체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겁니다. 연암은 노론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평생 높은 벼슬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목에서 아빠는 연암의 자유로운 영혼에 진심으로 반했습니다. 

수민) 연암 박지원의 친구사귐을 보면서 우정에 대해 배웠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나부터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화도서관에서 김경윤 선생님 강연을 듣고 연암 박지원이 친구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었습니다. 천체관측기구를 만들고 칠현금을 연주하던 홍대용, 무예도보통지를 저술한 무인 백동수, 발해고를 쓴 유득공, 북학의를 쓴 박제가, 손재주가 좋아 벼루를 깎고 해시계와 세계지도를 만들었던 정철조 등이 모두 박지원의 절친이었습니다.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는 당시 천대받았던 서자 출신이지만 연암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서울 종로 백탑 근처에서 주로 만났다고 해서 백탑파라고 불리다가 훗날 북학파로 불렸답니다.

박지원은 친구를 사귈 때, 뜻은 같은데 재주가 다른 사람을 사귀었습니다. 컴퓨터 네트워킹 시스템 같은 우정과 지혜의 공동체를 이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었습니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박지원이었지만 친구들을 통해 천체의 움직임부터 옛날 역사까지도 두루 배우고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저도 요즘 친구 사귀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친구를 사귈 것인지, 아니면 나와 다른 친구를 사귈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박지원의 우정에 대해 듣고 뜻은 같되 재주는 다른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열하일기 독서토론이 이어집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IP *.202.11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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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08:32:28 *.111.14.176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내용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말로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된 글입니다.

수민의 글을 읽어보니 더욱 더 독서의 힘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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