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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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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0일 09시 46분 등록

참파 단상


독참파는 라오스 국화國花다. 라오스어 독 (dok)은 꽃이다. 그러니 독참파 (dok champa)는 참파 꽃이라는 뜻이다. 지구에 300여종이 서식한다고 전해지는 이 꽃의 백미는 새하얀 꽃잎 다섯 조각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란 빛 스펙트럼이다. 자신의 온 몸을 붉게 물들이고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꽃이 되기를 원했던 장미는 꽃 중의 꽃이라 불린다. 그러나 붉은 색 외엔 어떤 색도 허용하지 않는 무관용의 장미와 참파는 다르다. 참파 역시 매혹적인 노란색으로 덮여지길 왜 원하지 않았겠는가. 채울 수 있지만 조금 비워두는 미덕을 아는 꽃이다. 아름다움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막판까지 가서 끝장을 보겠다는 듯 온 몸을 채신머리 없이 물들이지 않았다. 마치 <서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더함을 받고, 교만은 덜어냄을 부른다.' 謙受益, 滿招損 와 같은 군자적 꽃이다.


라오스에 살며 인생 참 꼬인다 싶을 때가 있다. 지나가는 개조차 저리 가라 짖어댈 때, 자전거 잃어버리고 아이처럼 도로에 쭈그리고 앉았을 때, 라오스인이 내게 길을 물어올 때, 농담삼아 과일 값을 깎아달라 했는데 꺼지라는 손동작이 되돌아 왔을 때. 그럴 땐 하늘을 보고 마음 속으로 욕지거리를 쏟아 내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며 걷게 된다. 그때마다 나를 살며시 안아 주던 이가 참파였다. 라오스 거리 어디를 가나 떨어진 참파와 만난다. 참파는 길 가에 떨어져 사위어가는 중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 한 겨울에 피어나 천리를 보내는 매화 향기의 한여름 버전이다. 쓰레기 더미에 참파가 떨어져 있다. 모든 게 꼬여 마침내 떨어져 버린 내 인생을 참파에 투사 投射하여 주우면 자연스레 코를 들이 댄다. 한번 갖다 댄 코는 반드시 한번 더 갖다 대게 되어 있다. 두 번 갖다 대면 세 번째는 향기를 먹으리라 덤벼 들게 되는 꽃이다. 그 향기에 꼬인 인생이 풀려 버린다면 믿을 텐가. 샤넬 No.5는 이 아름다운 꽃을 상업적 모진 형태로 짓이겨 농밀한 향기만 뺏어버렸다. 인간이란.


참파 꽃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몽환적인 노란색이 은은하게 미소 짓는다. 그것은 붉은 입술에 허벅지까지 찢어진 치마를 입은 여인의 활짝 웃는 장미의 미소가 아니다 . 그것은 해질녘 멀리 항구로 돌아오는 지아비의 배船를 보고 어부의 아내가 짓는 미소다. 새하얀 다섯 개의 꽃잎과 세상에 없는 노란색이 만들어 내는 사려 깊은 미소를 상상하라. 그래서 마음이 우울할 때 참파를 보라. 아이 엉덩이 같이 둥근 이파리의 발랄함은 '신성한 긍정'으로 다시 시작하라 이르고 은근하게 미소 짓는 노란색 중심은 '그대 걱정하지 말아요' 하며 토닥인다.


앞서 장미를 폄하했지만 나는 장미를 좋아한다. 그 짙고 매혹적 향기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시인 오규원의 시 중에 '꿈을 보고 끝이 날카로워진 풀잎'이라 말하던 시구詩句가 있다. 재기 넘치는 이 심상에 빗대면, 장미는 어찌나 날 선 꿈을 꾸었던지 온 몸에 휘감은 바늘이 오로지 제 스스로의 꿈만 찾고자 헛발질하는 나와 같아 보여 안쓰러울 뿐이다. 그러고 보니 참파는 제 꿈을 볼 수 없었던지 다섯 조각 새하얀 이파리는 모난 데 하나 없이 둥글다. 마치 거대한 배의 선미 프로펠러 같다. 바다에서 둥글지 않은 것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참파는 그렇게 멀리 멀리 자신만의 거대한 엔진을 돌려 남방의 열대지방을 누빈다. 참파 꽃을 거리에서 마주치는 날만큼 내 삶은 풍요로워진다.


참파 나무를 마당에 심던 날, 나는 비로소 라오스에 살게 됐다. 늘 잘된 결정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지만 산다는 건 그냥 시간을 밀치면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참파꽃.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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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07:41:27 *.202.23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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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08:29:32 *.111.28.72

dok champa 참파꽃 ,, 언젠가 라오스에 가면 저도 이 꽃을 만날 수 있겠죠? 그때 작가님의 이글이 기억이 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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