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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4일 22시 16분 등록
지난주에 이어 <열하일기> 가족 독서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큰 딸은 채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인문고전 학습만화 <열하일기> (박교영 글, 박수로 그림)로 읽었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우정을 주제로 한 김경윤 작가의 수업을 대화도서관에서 들었습니다. 김경윤 작가는 청소년 인문도서 전문작가로서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가다>라는 책을 쓴 분입니다. 아내와 저는 고미숙 선생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박지원 저, 고미숙·길진숙·김풍기 역, 북드라망)를 읽었습니다.

아빠) 열하일기를 읽고 이 책 저 책 찾아보면서 가족들과 꼭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것을 정리해 봤습니다. 열하일기를 읽다가 ‘호곡장’에 나타난 ‘울음’입니다. 본문을 한번 읽어볼게요.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上> 138쪽)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네. 여기부터 산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시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上> 140-141쪽)

10리가 4km이니 1,200리면 480km에 달합니다. 서울과 부산 직선거리가 320km이니 요동벌판이 참으로 넓기는 넓나 봅니다. 조선 땅을 난생 처음 벗어나 광활한 요동벌판에 들어선 연암은 자기 자신이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아이 같다고 느꼈습니다. 갓난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한순간 밖으로 나와 비로소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쳐서’ 울어볼 만한 것처럼, 자신도 이제 요동 벌판에 섰으니 ‘한바탕 울어볼 만한 것 같다’는 당시의 마음이 글에서 절절히 배어납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이라는 그림책 한 대목이 생각났습니다. 강아지 똥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한 행동도 ‘으앙!’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강아지 똥의 첫 울음이 서러움의 울음이었다면, 연암의 울음은 감동과 환희의 울음입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였는지 느끼는 순간, 긍정이든 부정이든, 가장 솔찍한 자기 표현은 ‘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음은 가장 진실한 자기 존재의 표현입니다. 연암의 호곡장! 두고 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허생전과 홍길동전도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홍길동은 율도국의 왕이 됩니다. 허생전의 허생은 빈손으로 돌아와 글만 읽습니다. 홍길동을 쓴 허균은 내심 왕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허생전을 쓴 박지원은 조용히 글을 읽을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도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고미숙 선생의 표현을 빌려보면, 다산이 20세기형 코드라면 연암은 21세기형 코드입니다. 다산은 백과사전 형태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아서 궁극적으로는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에 대비한 정답을 준비합니다. 연암은 대화와 쌍방향 소통을 중시하고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늘 새로운 곳을 향해 뛰쳐나갑니다.

엄마)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청나라에서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기록해 놓습니다. 기와, 벽돌 쌓기, 수레, 길 등 새로운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온전히 집중하여 흡수하듯 기억했다가 돌아와 기록합니다. 박지원은 호기심 덩어리였습니다.

요즘 여행은 꼭 쇼핑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카트에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골라 담는 것처럼 어디로 갈지 정해지면 숙박과 식사, 둘러 볼 곳을 골라 담는 행위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동안 여행에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서 식사를 하는 등 쇼핑과 다름없는 여행을 했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삶에서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보고 접하는 시간이며, 궁극적으로 여행하기 전과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쇼핑 같은 여행에서는 이런 체험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연암 박지원처럼 호기심 가득한 영혼이 되어 여행을 해 보겠습니다.

저는 호불호가 강한 사람입니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낯선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박지원은 여행을 하면서 익숙하거나 낯선 관점이 아니라 모든 사물을 동일한 관점에서 평등하게 보았습니다. <열하일기>를 읽으며 제 자신에게 숨어있는 선입견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수민)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한비야 작가님이 생각났습니다. 한비야 작가님은 어릴 적부터 어학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자신이 가보고 싶은 나라를 여행하기 위하여 어학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평생 세계여행을 했지만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여행경로를 짜면서 그 나라 오지에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NGO단체에서 국제구호팀장이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자신이 가보고 싶은 곳을 다니다보니 자신의 길을 찾은 겁니다. 저도 한비야 선생님처럼 직접 길을 걸으면서 겪고 부딪쳐보고 싶습니다.

엄마) 연암 박지원은 모든 것에 열려 있었습니다. 양반이지만 하인들과 허물없이 지냈고, 친구를 사귈 때도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박지원의 무경계 평등안을 배우고 싶습니다.

<열하일기> 독서토론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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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6 12:34:59 *.144.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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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8 08:47:35 *.102.1.32

저희집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서 열하일기 를 읽어야겠습니다. 책 소개와 자녀들과의 독서토론 이야기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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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3:42:30 *.246.68.141
가족토론...부러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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