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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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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7일 12시 05분 등록

라오스의 월급쟁이들


어느 날 직장동료 스왕, Svang (라오스에서 'V'는 'W'처럼 발음한다. 그래서 라오스의 수도 Vientiane은 '위양짠'이다) 이 사라졌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통보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다른 동료들을 동원해 수소문 해봐도 허사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점심을 먹었었다. 일도 곧잘 했고 여유 넘쳤던 친구여서 농담을 섞어가며 잘 지냈던 동료였다. 얘기가 잘 통해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개인적인 꿈도 스스럼없이 말하던 친구같은 동료였다. 실종 3일째 되던 날, 스왕은 고향 집에서 소를 몰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스왕은 라오스 최고 대학의 최고 학부를 나온 엘리트다. 월급도 동년배 평균보다 많이 받는 스물 아홉 청년이다. 처음엔 스왕의 무단 결근과 사전통보 없는 퇴사가 당황스러웠다. 지나고 보니 이런 일은 이 나라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 하니 미안해서 그랬단다. 그래 미안함, 자유로운 생활에 행복을 만끽할 그는 매일을 압박 속에 일해야 하는 나를 보며 미안했을 테다. 그에게 돈은 중요한 무엇이 아니었다. 회사가 주는 이름값과 각종 혜택은 인생에서 목적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이 행복하고 싶다 여기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를 돌보고 형제(그는 13남매 중 셋째다)들과 함께 하는 행복의 길을 택한다. 미상불 푸른 초원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는 만면에 행복함이 묻어나 유난히 밝았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함께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 아름다운 미소의 비밀이 이거다 싶은 것이다. 그 어느 것도 행복과 여유와 맞바꾸지 않는 삶의 간명함에 서린 미소. 


말이 나왔으니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일반화 시켜 말해보면, 라오스 직장인들은 늘 아프다. 힘에 부치거나 어려운 일이 있거나 정신적인 압박을 받는다 싶으면 어김 없이 출근하지 않는다. 오늘은 몸이 아프니 출근할 수 없다고 한다. 아파 볼까 하면 아프게 되는 그들의 신체적 메커니즘을 나는 좋아한다. 또한 그들은 수명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야근을 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볼 때는 얄밉겠지마는 현명하고 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에서 야근은 1급 발암물질이라 하지 않던가. 야근과 생리적 위해의 연관성 또한 과학적으로 밝혀진 마당이다. 또 이런 경우도 새롭지 않다. 긴 연휴 끝에 직장으로 돌아오지 않거나 월급날 돈을 받고 다음 날부터 행방불명이 되는 일은 귀엽게 봐 주어야 한다. 아무 말 없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가 3개월 뒤에 다시 찾아와 일을 하고자 할 때는 고용주가 다시 받아 주어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배운다. 모름지기 노동자라면 이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를 존중하는 국가라면 이와 같이 노동 대중을 보호하는 제도를 명문화시키고 실효화 해야 한다. 그럼에도 라오스의 기업들은 늘 구직난이 아닌 구인난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턱없이 모자라고 적은 인구에서 오는 인력풀의 부족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자본의 논리이자 현대인의 관점에서 오는 편견일 수 있다. 라오스는 단지 회사인간이 필요로 하는 현대적 교육을 하지 않을 뿐이다. 상품으로서의 사람을 키워내는 교육시스템이 부재할 따름이지 제 나라, 제 풍속에 맞는 소양 교육으로 헌걸찬 사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학에 목을 매고 들어갔지만 청년 실업과 구직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상황을 비견하면 못내 씁쓸하다. 


세계에서 가장 낙후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노동 환경이 구현되고 있는 곳이 라오스다. 부럽기까지 한 이유는 친 월급쟁이 노동관습법이 엄연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도적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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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3:40:51 *.246.68.141
야근 = 1급 발암물질...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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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9 15:06:22 *.144.5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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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 08:27:43 *.102.1.10

불필요한 야근을 아직도 권장하는(?) 우리나라 근로환경이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요즘 라오스 이야기와,또 다른곳에서 미얀마 이야기를 읽고 보고 있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주시는 이야기에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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