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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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가 어느 날, 대학 때 동창 하나를 만났다. 그녀는 대학 때 요주의 인물 중 하나로
통했다. 그녀가 요주의 인물로 통했던 이유는 그녀의 신기(神氣) 때문이었다. 조금만 민감한
사람이면 그녀 곁에 가면 그 축축하고 암울한 기운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곁에 있
는 사람들을 저절로 축축하고 암울하게 만들곤 했었는데. 게다가 그녀는 가끔 알 수 없는
예언들을 내 놓아서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곤 했다.
그 즈음, 나는 희망이 안 보이던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3달 여 동안의 장기 회피용 배
낭 여행을 다니다가 돌아 왔을 때였다. 우연히 그녀와 연락이 되었고 오랜 만에 대학 동창
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 날, 그 옛날의 지니고 다녔던 신기(神氣) 대신에 서양의 별
자리 소프트 웨어가 장착된 노트북을 가지고 나타났다.
본디 운명은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fate_maker(운명을 만드는 자)라는 이메일 아
이디를 쓰는 나로서는 그런 운명 따위를 가르쳐 준다는 그 소프트 웨어에 관심을 가져서는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책 없는 사직과 장기 여행으로 인해서 심히 마음이 약해
졌던 지라 ‘그냥 재미삼아’라는 핑계를 내어 놓고 그녀에게 내 운명을 물어 보게 되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직업에 대한 것이 가장 궁금했던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질
문을 했다. 대학 졸업 이후 유난히도 풀리지 않는 나의 직업운에 어떤 운명이 숨겨져 있을
까 궁금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그렇게 예정되어 있단다. 파란만장한 직업운을 가졌지만 나중에는 창대 해지는 그런 운명을
가졌단다. 그럼, 이렇게 헤매고 있는데 나중에 창대 해지는 내 소명은 뭐냐구? 그건 ‘아름
다운 것을 파는 일’이라 했다. 뭔가 정확해 지고 싶었는데 점점 오리 무중에 빠지는 것 같
아서 더 암울해 졌다.
그러다, 건강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난 불사조 같은 사람이란다. 비행기 사고가
나서 모두 죽었을 때 저기서 한 명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일 거란다. 그런데
갑자기 내 친구 얼굴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래 살 수도 있지만 비명횡사 할 수도
있어.”
“비명횡사? 오래 살 수 있는 것과 비명횡사는 모순되는 개념 아냐? 그게 어떻게 한 운명
안에 있을 수 있지?”
“원래 별자리라는 것이 모순되는 운명이 한꺼번에 들어 있어. 굉장한 성공과 굉장한 실패가
같은 괘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이렇게 장수와 비명횡사가 함께 들어 있기도 해. 그런데 걱
정하지마. 별자리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란 그 때 그 때 너의 선택에 많이 달려 있
으니까. 잘 헤쳐 나가면 될 거야.”
내 친구는 이런 식으로 알 수 없는 해석을 나한테 주었다. 집에 와서 다른 친구와 전화통화
를 하다가 그 날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자식,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무리 그런 운명이 있더라도 친구한테 숨길 수 있었어야지.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다니. 그 아이다워. 너 그 이야기 듣고 가만 있었어?”
“난 그냥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그것 때문에, 인생이 드라마틱 하쟎아.”
“너도 참 이상하긴 하다. 그렇게 비명횡사 하고 싶어? 화도 안 났다구?”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을 해 봤는데도 나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비명횡사 할거
면 오늘 부터는 단단히 준비해서 재미있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 비명횡
사 해도 후회나 미련 같은 것을 이 땅에 남기지 않을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더
재미있어 졌다.
하고 싶은 일을 다음으로 미루려다가도,
“아, 나 비명횡사 할지도 모르는데 오늘 빨리 해버려야지” 할거고,
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다가도
“비명횡사 할 지도 모르는데 미워해서 어디다 쓸 거지?” 할거고,
친구나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미루려다가도
“비명횡사 할 지도 모르는 데 그 때 그 때 고맙다고 해야지.” 할거니까.
IP *.84.240.105
통했다. 그녀가 요주의 인물로 통했던 이유는 그녀의 신기(神氣) 때문이었다. 조금만 민감한
사람이면 그녀 곁에 가면 그 축축하고 암울한 기운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곁에 있
는 사람들을 저절로 축축하고 암울하게 만들곤 했었는데. 게다가 그녀는 가끔 알 수 없는
예언들을 내 놓아서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곤 했다.
그 즈음, 나는 희망이 안 보이던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3달 여 동안의 장기 회피용 배
낭 여행을 다니다가 돌아 왔을 때였다. 우연히 그녀와 연락이 되었고 오랜 만에 대학 동창
도 만나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 날, 그 옛날의 지니고 다녔던 신기(神氣) 대신에 서양의 별
자리 소프트 웨어가 장착된 노트북을 가지고 나타났다.
본디 운명은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fate_maker(운명을 만드는 자)라는 이메일 아
이디를 쓰는 나로서는 그런 운명 따위를 가르쳐 준다는 그 소프트 웨어에 관심을 가져서는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책 없는 사직과 장기 여행으로 인해서 심히 마음이 약해
졌던 지라 ‘그냥 재미삼아’라는 핑계를 내어 놓고 그녀에게 내 운명을 물어 보게 되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직업에 대한 것이 가장 궁금했던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질
문을 했다. 대학 졸업 이후 유난히도 풀리지 않는 나의 직업운에 어떤 운명이 숨겨져 있을
까 궁금하기도 하였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그렇게 예정되어 있단다. 파란만장한 직업운을 가졌지만 나중에는 창대 해지는 그런 운명을
가졌단다. 그럼, 이렇게 헤매고 있는데 나중에 창대 해지는 내 소명은 뭐냐구? 그건 ‘아름
다운 것을 파는 일’이라 했다. 뭔가 정확해 지고 싶었는데 점점 오리 무중에 빠지는 것 같
아서 더 암울해 졌다.
그러다, 건강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난 불사조 같은 사람이란다. 비행기 사고가
나서 모두 죽었을 때 저기서 한 명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일 거란다. 그런데
갑자기 내 친구 얼굴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래 살 수도 있지만 비명횡사 할 수도
있어.”
“비명횡사? 오래 살 수 있는 것과 비명횡사는 모순되는 개념 아냐? 그게 어떻게 한 운명
안에 있을 수 있지?”
“원래 별자리라는 것이 모순되는 운명이 한꺼번에 들어 있어. 굉장한 성공과 굉장한 실패가
같은 괘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이렇게 장수와 비명횡사가 함께 들어 있기도 해. 그런데 걱
정하지마. 별자리가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란 그 때 그 때 너의 선택에 많이 달려 있
으니까. 잘 헤쳐 나가면 될 거야.”
내 친구는 이런 식으로 알 수 없는 해석을 나한테 주었다. 집에 와서 다른 친구와 전화통화
를 하다가 그 날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자식,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무리 그런 운명이 있더라도 친구한테 숨길 수 있었어야지.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다니. 그 아이다워. 너 그 이야기 듣고 가만 있었어?”
“난 그냥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그것 때문에, 인생이 드라마틱 하쟎아.”
“너도 참 이상하긴 하다. 그렇게 비명횡사 하고 싶어? 화도 안 났다구?”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을 해 봤는데도 나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비명횡사 할거
면 오늘 부터는 단단히 준비해서 재미있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지 비명횡
사 해도 후회나 미련 같은 것을 이 땅에 남기지 않을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더
재미있어 졌다.
하고 싶은 일을 다음으로 미루려다가도,
“아, 나 비명횡사 할지도 모르는데 오늘 빨리 해버려야지” 할거고,
한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다가도
“비명횡사 할 지도 모르는데 미워해서 어디다 쓸 거지?” 할거고,
친구나 가족에게 고맙다는 말을 미루려다가도
“비명횡사 할 지도 모르는 데 그 때 그 때 고맙다고 해야지.” 할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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