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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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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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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일 08시 44분 등록

마음 같아선 모든 것들 다 버리고 훌훌 떠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한비야처럼 지구 한 바퀴 반을 돌고 나면 온 몸을 휘젓는 광풍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홀몸이었던 한비야와는 달리 저는 아이가 둘이나 딸린 엄마였습니다.


이런 제게 책은 느리고 한심한 초딩 진구의 든든한 수호천사,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편한 시간에 언제든 책장을 열면 그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고 나면 조금은 숨이 쉬어지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도 못 견디겠으면 노트를 열었습니다. 거기에 좋은 ‘엄마’,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할 수 없었던 마음 속 말들을 다 쏟아내고 나면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그러다보면 책에서도 얻지 못하던 질문의 답을 얻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본능적 책임감이 저를 살아있게 한 이유였다면 읽기와 쓰기는 살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생명수였던 것 같습니다.

어디로든문.jpg


이유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멀쩡하던 내가 어쩌자고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회복의 가능성은 있는 건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속 시원히 만족스러운 답을 알려주는 책을 만나기는 어려웠습니다. 마치 강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듯  동서고금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답답함을 달래야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가까워져서야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래없는 초고속 성장을 하느라 다양한 가치가 혼재되어있는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엄마를 위한 통과의례 가이드가 없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엄마의 몸에 자기를 통해 세상에 온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책임감이라는 모성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본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서든 먹음직한 성과를 내어놓으라는 것은 폭력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되는 준비를 여성을 위한 교육의 모든 것으로 여기던 과거로 돌아 가야하는 걸까요? 제가 찾은 답은 ‘No’ but ‘Yes’입니다. 우리 어머니 세대까지도 뿌리깊게 이어져 내려온 왜곡된 가부장적 질서로 회귀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리가 없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부장적 질서 역시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과는 거리가 먼 제도니까요. 회귀하려면 훨씬 더 멋 옛날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여성이 존재 자체로 생명을 떠받치는 힘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받아들이던 오랜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를 현대적으로 복원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 저서 <자기를 위한 인간>에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면 누구도 내적인 조화와 융합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이외에 세상과 하나가 되는 동시에 자신과 하나가 되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의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어머니’라는 역할을 가진 여성만이 예외일 리 있을까요?

다시 말해 여성이 삶의 주인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머니로의 삶에 매몰되거나 남성의 삶의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활용해 어머니와 인간으로서의 삶을 동시에 완성해 가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문화적인 억압으로 방치되어 있으나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너무나 엄청나 보인다구요? 이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다른 길도 있다고 믿는다면 우선 당신의 마음 속 그 길을 끝까지 가보기를 권합니다. 당신에게는 그 길이 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진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 안의 생명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치유와 성장을 위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임을 받아들이셨다면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준비된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리게 마련이니까요. 


P.S. 자기회복의 길을 찾고 있는 당신을 위한 희소식( https://blog.naver.com/myogi75/221503297305 )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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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09:00:55 *.36.157.95

오늘도 아난다 선배님의 경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아빠인 저도 아빠 역할을 하면서 제 깊은곳에 있는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늘 도움이 많이 되는 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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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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