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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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6주기에 부쳐
내 스승은 봄을 좋아했다. 봄 꽃을 아이같이 좋아했다. 스승은 새로운 제자와 사람들을 늘 봄에 만나곤 했다. 돌아가신 스승을 함부로 입밖에 내진 않지만 봄이 오면 하루가 멀다 하고 스승을 소환한다. 그는 나의 봄도, 내 꽃도 언젠가 필 거라 말했다. 스승이 용기 내라며 말한 지나가는 덕담에 죽자고 덤벼들어 돌아가신 스승을 먼 타국 길바닥에 드러누워 ‘내 꽃은 있기나 한가요?’ 버릇없이 되묻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나도, 혀를 차며 지나는 사람들도 민망할 지경이다. 놀랍게도, 유치하게도 마흔 줄이다. 그분께 한때 배웠다 말할 수 없다. 향수병이 심해진 탓이다.
스승에게는 훌륭한 제자들이 많아 나는 스승의 제자라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 그것은 스승을 깎아 먹는 일이어서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뒤에도 말하기 무안한 것이다. 다만 나에겐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불러 앉혀 자신의 피로 포르말린에 담겨진 그들의 심장을 살려낸 분을 알고 있다 말한다. 스스로 부지깽이라 자처하며 말이다. 그저 나에겐 행운이었다.
스승은 깊다. 매우 깊어서 그의 사유체계를 규정하려는 노력은 어림없다. 그건 스승을 잘 아는 다른 제자들의 몫이다. 내가 그리운 건 단지 그의 깊고 굵었던 목욕탕 목소리, 손짓을 따라가며 봤던 누런 반지, 깊은 말을 꺼내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잠시 더듬던 말투, 얼굴이 무너지도록 웃던 미소, 봄에 먼 산을 보며 지긋이 감던 눈, 그 눈 위에 그리도 진했던 눈썹,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맑았던 눈망울이다. 그는 이제 나에게 이렇게 온다. 내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할 때는 이스탄불 뒷골목에서 나눠 마시던 진한 에스프레소가 되고, 묵직한 고민이 있을 땐 시칠리아 먼 바다를 보며 허리를 곧추 세워 무쇠로 빚은 산악같이 내 옆에 앉아 있다. 그리고 삶의 구비마다 내 옆에 앉혀 두고 나의 길을 그에게 묻는다.
스승이 피를 쏟아가며 했던 인생의 시詩작업이 나였음을 훗날, 바보같이 스승의 사후에 알게 됐다. 인생의 복선과 행간의 도약을 사랑했던 그는 자신의 피로 쏟아 부어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시詩가 되기를 바랐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올바르게 주는 것은 올바르게 받는 것보다 어렵다. 제대로 나누어 주는 것은 최후의 대가大家적 예술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스승은 꼭 그렇게 나누셨다.
구본형, ‘시’와 ‘봄’과 ‘오늘’을 사랑했던 사람, 제자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모여 스승의 추념식을 연다. 그 고마운 사람들은 스승을 기억한다. 그렇게 내 스승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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