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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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항상 포트폴리오 노동자였어요. 이런 현상이 새로울 게 없다고요. 남자들이 마침내 그런 생활방식에 눈을 떴다는 사실만 달라졌지요. 당신은 이런 삶의 방식을 ‘포트폴리오 인생’이라고 부르지만 난 그걸 ‘생활 꾸려나가기’라고 부르겠어요.”
찰스 핸디가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대비한 새로운 노동의 형태로 ‘포트폴리오 노동자’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냈을 때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핸디가 한 말입니다. ‘포트폴리오 인생’을 내게 주어진 대안적인 노동의 형태라고만 이해하고 있던 제게 그녀의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녀에 의하면 여성들에게 ‘포트폴리오 인생’이란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찰스 핸디가 그의 책에서 정의했듯 돈을 받고 하는 일, 무료로 사회에 봉사하며 기여하는 일과 가족을 위한 집안일 등 다양한 일로 일상을 채우는 삶의 형태를 포트폴리오 인생이라고 한다면, 스승이나 찰스 핸디처럼 읽고 쓰며 강의하는 사람으로 살든 계속 직장생활을 하든 엄마이자 주부인 저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이미 포트폴리오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렵다고, 싫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 같아 슬슬 뒷걸음질치고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 <포트폴리오 인생>과 <코끼리와 벼룩>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텍스트로 제게 다가 왔습니다. 두 책은 엘리자베스라는 여신의 사제 찰스가 집대성한 여인을 위한 삶의 경전에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담은 제자 플라톤의 저작을 읽는 듯한 느낌이기도 했구요. 그래도 그건 좀 오버아니냐구요? 아닐걸요. 제 판단은 어디까지나 찰스 핸디의 간증에 근거한 것이니까요.
찰스 핸디는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 능력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믿음은 결코 변하는 법이 없다. 믿음이 어찌나 강한지 때로는 겁이 나고 부담스러울 정도였다...누군가 자신의 잠재력을 그렇게 믿어준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다. 믿음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황금씨앗’이라고 표현하며, 황금씨앗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스승이 제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아직도 갸우뚱하신다고요? 그럼 더 확실한 증거, <포트폴리오 인생>에서 그는 ‘교육의 목적이란 결국 사람들에게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확언합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두 책을 읽다보면 아내 엘리자베스야말로 찰스핸디가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미래, 아니 현대의 대표적인 삶의 유형인 ‘포트폴리오 생활자’의 롤모델로 거듭나며 가장 그다운 삶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만든 결정적인 공헌자였음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게 됩니다. 책속에 드러난 그녀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뛰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스스로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핸디가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할 반드시 선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삶의 목적과 우선순위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핸디보다 먼저 찾은 진정한 선각자였습니다. 그녀와 그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이러한 확고한 철학이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고 맺은 열매였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나자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또는 언제 그것을 할 것인가를. 더불어 제가 왜 여전히 이리저리 휘둘리며 취약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스스로 선택한 현장에서 제 철학을 만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일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쯤이면 제가 어찌 평일 오전 여러분께 마음편지를 보내는 일상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었을까요?
그래도 이해가 안 가신다구요? 이해는 가지만 자기 철학을 다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가 궁금하시다구요? 어떻게 아셨어요? 바로 그 얘기가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였거든요. 하지만 오늘도 편지는 이미 한 페이지가 넘어갔으니 아쉽지만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쳐야 할 듯요. 아쉽다구요? 저두요. ^^*
궁금한 걸 세상에서 젤 못견뎌하는 저와 같은 유전자를 가지신 분들은
일주일만 그간 제 일상의 기록이 담긴 <엄마의 시간통장>(https://blog.naver.com/myogi75)이나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15849) <포트폴리오 인생>편으로 궁금증을 달래 보심 어떨까요? 물론 목요일(4.25) <살롱 울프>(https://blog.naver.com/myogi75/221503297305)로 저를 보러 와주시면 더 좋겠지만요. 철학마저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 기성화된 세상, 더디더라도 자신의 현장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와 내면의 에너지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기쁨을 나누는, 꼭 당신과 같은 DNA를 가진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