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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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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00시 29분 등록
볕이 좋은 주말이었습니다. 할 일이 많았지만 제 발걸음은 어느 새 사간동 미술관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미술 전시 철로 치면 지금(봄)이 축제 기간인지라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지요. 대신 잠을 좀 줄여서 할 일을 하겠노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사간동에 들어섰습니다. 기대했던 데로 새로운 전시들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새, 애초에 1~2시간 만 돌아다니겠다고 한 결심을 폐기 처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한 곳만 더, 한 곳만 더 하면서 미술관들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한 전시장에 들어 섰는데, 석고와 아교와 못을 이용한 오브제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도슨트에게 문의를 했더니 독일 작가인데 유태인이라서 자신의 뿌리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못’을 이용한 작품을 많이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못’을 석고와 아교와 짓이겨 바른 그 작품 앞에서 저에게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그 못이 주었을 파괴적인 상처와 석고와 아교의 하얀색이 주는 새로운 재생의 이미지가 그것들이었습니다.

무언가 어렴풋한 이미지를 안고 다른 전시관으로 향하려는데 이번엔 작가 노트에 적혀 있던 한 마디가 저를 붙들고 말았습니다.

‘내 작업은 일관된 조화에서 오는 고전적인 아우라를 지닐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나를 파괴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혹 내 작업이 미적 징후, 즉 현대의 통념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미지가 나타나면 나는 이를 거부하며 한층 더 예술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리하여 작품은 새로이 뭔가를 주장하는 것이다.’ (Gunther Uecker 의 작가 노트 중에서)

번역이 썩 매끄럽다고 할 순 없었지만, 이 작가가 겪었을 매일 매일의 창조의 과정이 그려
지는 듯 했습니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매일매일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문득 자신의 작
품들을 들여다 볼 기회를 갖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자신이 만든 작품들이 모두 같은
작품들처럼 보입니다. –작가 노트의 표현으로는 일관된 조화이지요-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한계나 패턴이라고 인식 되기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작가는 자
신의 ‘파괴’를 선포합니다. 작가는 한계를 부수기 시작합니다. 가령, 기존에 작품을 만드는
방식, 혹은 그 재료 등을 새로운 것들로 교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창조 –즉 새로운 작품-을 내어 놓게 됩니다.

작가의 작가 노트를 통해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어렴풋이 들여다 보다가 ‘창
조적인 행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새로운 창조를 하기 위해서 창조자는
새로운 창조 이전에 ‘자신의 파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철
저히 지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자리에 새로운 창조물이 들어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
치 신화에서 영웅이 변용의 신비mystery of transfiguration를 거쳐 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인들보다 감각이 예민한 작가는 창조의 과정을 그렇게 느꼈던 것입니다.
IP *.72.2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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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08:55:35 *.244.220.254
"창조자는 새로운창조 이전에 자신의 파괴과정을 반드시 거쳐야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철저하게 지우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과 철저하게 결별해야하는 데, 말과는 다르게 그 과정을 감내하는 것이 무척 힘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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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
2008.04.14 12:08:41 *.41.62.236

'매일매일 창조의 과정' 읽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안스러워 집니다.
우리 4기의 유일한 미혼, 현정씨. 그대의 봄은 어떤 빛깔?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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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13:31:24 *.117.68.202
4기의 유일한 미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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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정
2008.04.14 13:43:37 *.84.240.105
미혼을 위하여~를 하실려면 그냥 맨입으로는 안 되죠..뭐 쌈빡한 이벤트를 한 번 마련해 주심이.. ㅋㅋㅋ

지희님, 저는 이 찬란한 봄에 책이랑 연애 중입니다. 그 책이란 놈이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 놓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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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4.14 13:49:07 *.128.30.50
하하 현정씨 캠벨할배랑 연애중이구나.
할배가 수다쟁이야. 재미는 글쎄~~
학문에 대한 열정을 깊이 배워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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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4.14 15:38:37 *.122.143.151
캠벨할배라니~!! 캠벨형아로 모시기로 했는데.. ㅋㅋ

찬란한 봄, 올해 봄은 무척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결코 어느 해와도 같지 않을 빨간 피 같은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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