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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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Vientiane 의 교통 상황은 대체로 원활하다. 도로사정은 좋다고 말할 수 없으나 보급된 차량의 수가 복잡함을 유발할 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극심한 체증은 없다. 최근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내가 거주하는 동안 정체되는 구간을 지나던 출근 시간도 늘 15분을 넘긴 적은 없었다. 어느 날, 평소보다 오래 걸리는 신호 대기가 심상치 않았다. 길어봤자 신호를 2순배 돌면 빠져 나가던 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아장아장 씹어 걷듯 길을 좁혀가던 중에 정체의 원인을 알게 됐다. 개 한 쌍이 도로 한 중간에서 흘레 붙고 있었는데 주변의 다른 개들이 그들의 애정행각을 둘러싸며 서로 짖어대고 있었다. 우리로 치면 종로 사거리 교차로에서 ‘개판’이 벌어진 것인데 짜증이 나려던 참에 웃고 말았다.
오래 전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흘레 붙는 개들을 어렵지 않게 봤었다. 개들이 흘레 붙으면 처음엔 동네 꼬마들이 구경하며 엉덩이를 맞붙이고 돌아 앉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본다. 이후엔 조금 큰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시시덕거리고, 같지않은 동물 교배의 상식들에 관해 토론이 벌어진다. 무리 중에 용기 있는 놈이 사랑의 순간을 건드려 보지만 당최 떨어지지 않는 그들을 보며 야만적으로 웃어대곤 했다. 보다 못한 오락실 주인아저씨가 자줏빛 세수대야에 뜨거운 물을 찰랑거리며 가져와 순식간에 부어 버리곤 개들의 사랑도 끝을 내고 모여든 무리들도 해산시킨다. 오가다 늘 봐오던 낯설지 않은 개들이 그렇게 스파크가 튀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봤었다. 그러고 나면 동네 개들의 개체가 늘어나 어느 새 우리와 친해지고 같이 놀곤 했다. 그렇게 ‘개’들과 같이 자랐다. 그때의 개들은 목줄이 없었다.
교차로로 돌아온다. 출근해야 한다. 마음이 바빠지는 가운데 둘러보니 경적을 울리는 차 하나 없다. 차들이 꽉 막혀 웃지 못할 상황에도 교차로를 지나는 모든 운전자들이 만면에 미소를 띤다. 그것은 개들이기 때문이다. 개들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고, 개들이기 때문에 무마될 수 있다. 가끔 한국엘 들려 조용한 공원에 산책을 하고 있으면 알록달록, 뽀송뽀송한 개들이 목줄을 하고 더러는 입 가리개를 한 채 주인과 함께 ‘걷는다’. 패션쇼 모델처럼 걷는다. 공원에서 뛰는 개를 본 적이 오래다. 흘레 붙는 개들을 보는 건 무성영화 같은 옛 이야기가 됐다. 개들은 많아졌는데 어디서 흘레 붙는지 알 수 없다. 라오의 개와 한국의 개 사이엔 개가 '개'로 살지 못하게 된 인간의 개입이 존재한다. 같은 개지만 다른 개다. 소설가 김훈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개는 개가 아닌 것이 됨으로써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개들은 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렇지, 사람도 다르지 않다. 생명에, 삶에 질량이 있다면 개로 사는 것은 인간으로 사는 딱 그만큼의 질량을 가질 테다. 내 삶의 질량은 개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 개보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일차원적 시선을 접고, 사는 동안의 생명에 충실한 삶의 밀도를 놓고 보면 크다 작다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주 저 끝으로 날아가 버드 뷰로 지구를 본다면 개나 사람이나 살아있는 개체로써 등가적 질량을 가지지 않겠는가. 그 질량을 매길 수 있다면 말이다. 거리 한 가운데 흘레 붙는 개들을 축생의 보 잘 것 없는 본능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다시 생각한다. 나는 그들처럼 삶 자체에 충실한가. 부끄러움 없는 삶을 전개하며 제 생긴 대로 사는, 어쩌면 삶의 가장 고차원적인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저 개들보다 내 삶은 우월하다 말할 수 있나. 그들만큼 내 삶에 떳떳한가, 당당한가. 많은 부분을 양보해서 나는 개들보다 우월하고 떳떳하다 하더라도 저들처럼 목줄 없이 다니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17세기 프랑스 시인 ‘장 드 라 퐁텐’ Jean de la Fontaine 의 호통 같은 질문을 나에게 고쳐 묻는다. ‘개가 나에게 말했다. 넌 그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달려 갈 수가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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