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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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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 수 0
2019년 5월 22일 11시 49분 등록

이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누군가 라오스를 두고 3의 나라로 소개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없고 싸우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고 초상집에 우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고백 하건대 조용한 도로에 질투 섞인 내 경적 소리로 놀란 사람도 꽤 될 테다. 한국,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부산 도로사정에 익숙했던 인간이 이곳의 신사적 교통 매너에 적응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경적을 울린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사과 드린다. 싸우거나 화내는 사람, 본 적 없다. 길거리에서 싸우거나 화내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그들은 중국어 또는 한국어를 쓴다. 어느 날, 내 살던 동네에 이웃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섬뜩할 정도로 담담하고 차분한 장례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눈물 조차 흘리지 않았다. 며칠 뒤 그 집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 애도의 뜻을 전하며 울지 않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를 조용하게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덧붙이길 찾아온 친지, 조문객들을 위한 배려라고 말했다.

 

이 곳에 없는 것들을 가만히 새겨보면 여기에만 있는 것들로 환원된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천천히만 있다. 경적이 필요 없는 이유다. 질책은 없다. 괜찮다만 있다. ‘보뺀양은 라오스어로 괜찮다는 말인데 이 말은 중의적으로 쓰인다. No problem, It’s ok, 문제 없어, 괜찮다는 뜻과 함께 나 아직 다하지 못했어’, ‘나 실수했어’, ‘미안해등의 의미가 모두 보뺀양에 담겨있다. 라오스에서 보뺀양만 알면 언어의 반을 배웠다 하지 않는가. 모든 게 괜찮으니 싸울 일도 없고 화낼 일도 없다. 놀라운 건, 면박과 수모를 주거나 이유 없이 사람을 놀라게 했을 때, 어떤 형태로든 협박을 했을 때, 관습법을 들어 여전히 징벌한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이다. 라오의 남자는 20살 이전에 승려가 된다. 강제적인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남자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년까지 절에서 수행을 마치고 나온다. 일종의 성인식과도 같다. 한국으로 치자면 군대 대신 승려가 되는 것이니 나라 전체가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울지 않는 장례식도 불교적 제행무상 諸行無常의 생활 속 실천이 아닐까 한다.

 

라오에 없는 건 3만이 아니다. 없는 것이 풍부하다. 바다가 없다. 바다가 없으니 휴양지나 해변도 없다. 그렇다고 문화유산이 풍부하지도 않다. 시내 유적지는 30분이면 족히 둘러본다. 세계 최빈국을 다툰다. 흔한 지하자원도 없는 나라다. 그럼에도 관광객은 매년 늘어 450만명에 육박한다. 라오스 전체 인구의 65% 수준이다. 도대체 이곳에 뭐가 있길래 사람들은 줄을 서서 오는가. 볼 수 있는 것은 없고 볼 수 없는 것은 있다. 헛물켜는 욕망이 없다. 배려만 있다. 분노가 없어 자살도 없다. 남 탓이 없어 관용만 산다.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고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전히 이곳은 부자로 사는 삶이 비정상적인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돈이 없어 시간은 강물처럼 넘친다. 오죽하면 이런 농담이 생기겠는가. “베트남 사람들은 벼를 심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것을 보며, 라오스 사람들은 벼 익는 소리를 듣는다.” 이 기막힌 한가함이 사실임을 나는 안다. 가끔 이곳을 여행하는 패키지 여행자들이 빽빽한 프로그램 쪽지를 들고 다음은 다음은을 외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면 안타깝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긴 아무것도 없다고 투덜대는 여행자들에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곳이다. 시간에 쫓기고 일분 일초에 압박을 받는 사람에게 거대한 멈춤과 같은 라오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없다. 친절한 가이드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기다리라는 말 뿐이겠다. 그러나,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겐 세상에 이런 곳이 없다.

 

지인이 찾아와 비엔티안 여행자 거리에서 라오스 갓 볶은 커피를 음미하며 한가하게 앉았다. 라오스에 없는 세 가지를 비틀어 나만의 3를 정해봤다. 그 세 가지가 뭔지 아냐며 우스개 소리의 시동을 걸었다. 거지, 경적, 개 짖는 소리라 하더군. 개조차 착한 나라야. 더하자면 빛이 강해서 남향집도 없어. 지인은 의심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뒤 까페 앞으로 차 한대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커진 눈으로 나를 보는 지인. 짐짓 모른 척 까페를 나서 잠시 거닌다. 개들이 짖었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 앞을 부랑자 한 분이 다가왔다. 그 분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잡아 드리진 못했다. 지인은 이때다 싶었는지 방위를 가늠한다. 강변의 까페들이 모두 남향이었다. 오늘 안 되는 날이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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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4:00:29 *.144.57.226

자전 소설 쓰셔도 금방 원고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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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11:29:54 *.102.102.58

흥미롭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대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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