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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4일 11시 22분 등록
연구원 선발 과정을 거치면서 생활이 많이 단순해졌다. 평소 좋아하던 영화나 TV 보는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다. 한 달 가까이 영화를 보지 못했더니, 슬슬 좀이 쑤셔 왔다. 오랜만에 케이블 TV의 영화 채널을 켰더니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한다. 이전에 잠깐 보다가 재미가 없어 채널을 돌렸던 기억이 나는 영화다. 그런데 지난 몇 주간 신화에 관련된 책을 보고 신화를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이 영화가 달라 보인다.

이거 신화이야기 아닌가? 바짝 흥미가 당긴다. 그 얘기를 한번 따라 가보자.

(1) 1999년을 살아가고 있는 토마스 앤더슨(주인공)은 평범한 회사원이다. 낮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네오(사이버 아이디 Neo)라는 이름의 해커로 활동한다. 어느 날 그에게 트리니티(trinity)라는 여인이 접근한다. 그녀는 불가의 선문답 같은, 알듯 모를 듯 아리송한 말을 하며, 네오가 원한다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날 정부요원인 스미스가 네오를 체포하여 테러범인 모피어스를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협박을 한다. 네오가 거부하자 네오의 배꼽 속으로 손가락만한 로봇 벌레를 집어넣는다. 네오는 꿈을 꾼 듯 깨어나는데, 자신이 겪은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잘 모른다.

(2) 네오는 결국 모피어스를 만나게 된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모피어스가 보여준 매트릭스는 거대한 인공지능시스템(AI : Artificial Intelligence)에 의해 움직여지는 가상현실의 세계이다. 그리고 네오가 이제껏 살아온 세계가 바로 매트릭스 안(의 가상현실 세계)이라고 얘기 한다. 더구나 지금은 1999년이 아니라 2199년이다. 모피어스가 현재의 실세계(real world) 라며 보여주는 것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황폐한 세상이었다. 이에 대한 모피어스의 설명은 이렇다. ==> 21세기 초, 인류는 AI를 만들고 그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지만, 결국 AI와 전쟁을 벌이게 되고, 그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그 후 인공지능시스템은 인간을 재배(나무에서 과일을 재배하듯이)하면서, 인간으로부터 시스템 가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를 위해 인간의 의식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매트릭스 안에서 살도록 하였다. 매트릭스 안에서 사는 인간은 자신들이 가상현실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데 매트릭스를 최초 만들 당시 태어난 자(이름 미상의 “그”)가 모피어스 등 일부 인간을 매트릭스로부터 구해내고, 매트릭스의 진실을 가르쳐 준다. 그가 사망한 후 예언자인 오라클은 “그”가 환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바로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인류를 구할 “그(The One)"라고 말한다.

(3) 네오는 혼란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는 매트릭스를 떠나서 실세계(real world)에서 살기로 이미 선택하였다. 이제 그 선택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날부터 네오는 모피어스에게 무술과 하늘을 날을 수 있는 신통력 등을 배운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매트릭스를 관리하는 요원들인데, 이들은 콘크리트 벽을 맨손으로 부수고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변신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네오의 무술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얼마 안가 사부인 모피어스를 이길 정도의 고수가 된다. 모피어스와 동료들은 실세계의 열악한 환경(맛없는 음식과 불편함)을 참아가면서,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인류를 구원하게 될 날을 준비해 간다.

(4) 모피어스와 네오는 예언자인 오라클을 만나러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다. (매트릭스와 실세계 간의 연결 통로는 전화기이다. 즉, 전화선을 통해 가상현실 세계와 실세계를 넘나들 수 있다) 네오는 자신이 인류를 구원 할 “그”인지를 스스로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네오가 만난 오라클은 ‘당신은 “그(The One)”가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피어스는 네오가 “그”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5) 한편 모피어스의 동료 중 한사람인 사이퍼는 실세계(real world)에서의 고생스런 생활을 지겨워하며 매트릭스 안의 가상현실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리고 가상현실 세계에서의 부와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하게 된다. 요원에게 모피어스의 위치 정보를 누설하여 모피어스 일행은 요원들에게 쫓기게 되고, 간신히 실세계로 도망쳐 나오지만, 모피어스는 요원(스미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모피어스는 네오를 “그”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네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6) 네오는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네오는 “그”가 아니다. 만약 네오가 “그”라면 가능할 수도 있겟지만, 무시무시한 요원들이 철통 같이 지키고 있는 모피어스를 구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 그래도 네오는 죽기를 결심하고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엄청난 능력을 보유한 요원들과 싸워가면서 모피어스를 구해 낸다. 그 과정 중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자신이 “그”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7) 하지만 네오는 요원들과의 결투에서 결국 총을 맞고 죽게 된다. 하지만 트리니티가 사랑의 힘으로 네오를 다시 살려 낸다. 그런데 부활한 네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네오는 날아오는 총알을 멈추게 하고, 이전까지는 비슷한 수준이었던 요원들과의 무술 실력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향상된 상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결국 네오는 완전한 “그”(영웅으로 신격화)가 된 것이다. 결국 어렵지 않게 요원들을 물리치고, 실세계로 돌아와서 트리니티를 만난다.


이 story에는 영웅이 겪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궤도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가 있다.

우선, 우리의 영웅인 네오는 ‘모험에 대한 소명’을 느낀다. 그리고 그를 도와주는 모피어스와 동료(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모험의 관문에 들어선다. 여기서 모험의 관문은 매트릭스(가상현실 세계)와 실세계(real world)를 넘나드는 전화선이다. 이를 통해 모험의 세계로 진입한다.

네오는 모피어스의 도움으로 무술의 고수가 된다. 또 예언자 오라클은 네오에게 필요한 예언적 제시를 해준다.(조력자) 그리고 매트릭스 요원(용)과의 싸움이 있고, 그는 결국 죽음을 당한다.(고난) 하지만 트리니티의 사랑의 힘(초자연적인 도움)으로 그는 다시 살아난다. 부활한 네오는 자신이 완전한 “그”(신격화된 영웅)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무사히 귀환하게 되며 이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만하면 현대적 의미의 신화라고 얘기하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 인간이 지배당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신화적 영웅이 나타나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인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 인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트릭스는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1부만 보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영웅 신화로 정리하는 데는 좀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다. 2부, 3부를 모두 통합한 관점에서 다시 한번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다음번 2탄을 기대하시라...[ To Be Continued... ]

p.s. : 매트릭스 안 보신분들은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꽤 괜챦은 영화란 생각이 드는 군요
IP *.97.3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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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4.14 11:53:10 *.41.62.236

저도 늦게 올렸지만 왜 마음을 졸이게 하시나 했더니 매트릭스때문?
영화가 끝날때 까지 검은 긴 코트를 입은 키아누리브스가 멋진 폼을 잡은 SF영화를 보시느라? ㅎㅎㅎ

어떤 책을 읽다 보면 그책에 대입해서 사고를 하게 되나봐요.
캠벨의 책을 세권이나 읽었으니 영웅도 아닌데 영웅인체하게 될까봐
걱정됩니다. 익산의 봄 꽃은 아직 여의한가요.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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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4.14 13:49:21 *.117.68.202
큰형님..^^
2탄 기대하겠습니다.
잘 계시죠. 4기가 함 익산에서 모여야 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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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14 13:50:12 *.97.37.242
어제 매트릭스 신나게 봤습니다. 내용 요약하느라고... 사실 별로 즐길 시간도 없었어요
지난주에 약간의 여유를 부렸더니, 막판에 이렇게 애를 먹게 되는군요. 좋은 경험 했습니다.

지희님도 중간고사 기간이라 힘드실 텐데, 기운 내세요. 그리고 시험 잘 보길 바랍니다. 샬롬. ^!~ (좋은 인사 하나 배웠네요. ㅎㅎㅎ)

홍스, 지난번 오리엔테이션 갔다 오던 길에 버스 안에서 했던 말 잊지 않고 있어요. 봄도 좋고 가을도 좋습니다. 한번 모임 갖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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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8.04.14 14:57:20 *.100.112.52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이슈와 논쟁을 만들어 낸 시리즈죠.. 영화팬들의 해석이 얼마나 다양했던지 영화 그 자체보다 풍성한 해석들에 한동안 푹 빠져들기도 했었죠. 종교와 철학적 관점에서부터 저같이 자기계발의 관점에서도 음미해볼 수 있는 정말 색깔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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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14 15:25:23 *.244.220.254
대단한 열정이시네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저는 다른 영화광들의 논평을 무단 도용했답니다.
진실성에서 형님의 글이 돋보이네요. 매트릭스의 백미는 역시 1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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