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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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에리히 프롬은 카렌 호나이와 함께 신프로이트 학파로 분류되며 프로이트 심리학 계보를 이었습니다. 다만 프로이트가 정신과 의사 출신으로 정통 심리학에 몰두하였다면 프롬은 심리학을 사회와 연결하여 살펴보는 대중 심리학자로 그 이름을 떨칩니다.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독일의 한 연구소가 1930년 나치 정권에 의해 폐쇄당하자 1933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심리학적 관점으로 개인과 사회 문제를 연구하는 일에 깊이를 더합니다. 1941년 출간된 <자유로부터의 도피> 역시 이러한 연구 끝에 탄생한 책으로 한 개인에게 사회적 자유가 주어졌을 때 막상 그 개인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前 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 감정적, 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완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프롬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막스 베버나 나쓰메 소세키처럼 20세기에 활동하면서 새로이 형성되는 자본주의 체제에 사람들이 어찌 변해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41년 출간된 그의 책에서는 ‘근대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근대인을 ‘현대인’이라고 바꿔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인들이 이전 세대보다 더욱더 인간적인 공동체가 무너진 것은 물론 이제는 ‘가족의 의미’까지도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가며 근대인들보다 훨씬 더 심한 고립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롬은 사람들이 계급이나 신분 등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자유는 획득하였지만 대신 개인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고립감에 빠져들었는데, 이 고립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아를 실현하는 ‘적극적 자유’를 획득해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현대인들은 누구나 계급사회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주체적으로 인생을 꾸려가는 적극적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면 불안감으로 인해 언제든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자유를 넘겨주고 대신 안정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저는 프롬의 책을 읽으며 비로소 자유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고립에서 오는 불안감’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요. 어쩌면 저만의 바다 여행에서 심하게 배가 흔들린다 느낀 건 정작 배가 흔들리는 것이 아닌 제가 흔들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고, 위험도 이익도 모두 그의 것이었다. … 인간은 폐쇄된 세계에서 그가 차지했던 고정된 자리를 잃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과 의미에 대한 해답도 잃어버린다. 그 결과 자기 자신과 삶의 목적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힌다. 강력하고 초인간적인 자본과 시장이 그를 위협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는 적대적이고 소원해졌다. 그는 자유롭다. 그러나 그는 혼자이고 고립되어 있고 사방에서 위협받고 있다. …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과 무력감에 사로 잡힌다. … 개인은 혼자서 세계와 맞선다. 그는 무한하고 위협적인 세계 속에 내던져진 이방인이다. 새로운 자유는 강한 불안감과 무력감, 의심과 고독과 동요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바로 딱 제 심정이었습니다.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를 찾아 저만의 바다여행을 떠났는데 좋기는커녕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멀미에 시달리는 이유 말입니다. 프롬에 의하면 한 개인이 사회적 자유를 획득하면 할수록 그에 따르는 개별적 책임과 불안감을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은 누군가 (심지어 그것이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불안을 없애주고 대신 책임을 져주겠다고 나서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런 권력이나 체제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슬픈 예로 그토록 빼어난 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독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에서 나치즘이 출현한 원인 중의 하나로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해 경제가 몰락하자 “독일대중의 집단불안감”을 꼽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21세기,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일반 대중들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서유럽 선진국이나 미국에서 포퓰리스트나 극우성향을 지닌 정치 리더들이 다시금 출현하는 현상이 좀 더 이해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저만의 바다 여행을 떠났지만 제 안의 불안감으로 인해 이전에 속했던 육지로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였습니다. 여행을 계속하자면 저만의 필살기와는 별개로 새로운 세계, 거친 바다에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힘 (power)이라는 낱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영향력, 그 사람을 지배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갖는 것이다. 후자의 의미는 지배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것은 능력이라는 의미에서 무언가에 숙달하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무력하다고 말할 때 염두는 두는 것이 바로 이 의미다. 우리가 말하는 무력한 사람은 남을 지배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파워’는 ‘지배’나 ‘능력’중 하나를 뜻할 수 있다. … 개인이 유능하면, 즉 자신의 본래 모습과 자유를 바탕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으면, 그는 남을 지배할 필요가 없어지고, 따라서 권력에 대한 욕망도 없어진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바다 여행을 떠났는데 왜 이토록 심하게 흔들리지 뚜렷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마치 연기자가 제 나름 연기 실력을 갈고 닦아 무대에 올랐는데 과연 관객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고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연기라는 필살기를 갈고 닦은 것과 관객으로부터의 호응은 별도의 문제인 것처럼 저만의 필살기를 갖추고 바다 여행에 올랐다고 반드시 새로운 시장에서 반응을 얻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으니까요. 배가 떠나기 전, 철학을 갈고 닦으며 멘탈 갑이 되었다 자부했는데 막상 링에 오르니 역시나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으며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나가야 하는 막막함에 불안감이 마구 올라왔습니다. 프롬의 말처럼 이대로라면 다시 육지로 되돌아 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르네상스 이래 근대 사상의 이념적 목표였던 개인주의의 실현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문화적, 정치적 위기는 개인주의가 너무 많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우기가 개인주의라고 믿고 있는 것이 빈껍데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짧지만 강렬한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제가 떠난 육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습니다.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이제 한국사회는 동북아시아에선 단연코 경제는 물론 정치 선진국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와 더불어 개인주의 역시 만개하며 역으로 개개인의 자아실현에 따라 민주주의의 미래가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즉 프롬의 말처럼, 저 역시 저만의 개인주의를 실현하며 앞으로 나아가거나, 아니면 불안감에 (겉으로는) 개인의 안정을 약속하며 (뒤로는) 강력한 통제를 하는 권위주의적 권력이 등장하는데 일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실런지요..? 사실 저는 정치적 성향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나 하나를 프로답게 바로 세우는 일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음을 프롬을 통해 확실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즉 제가 일을 통해 개인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는 토대도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나 하나 제대로 세우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만큼, 기왕 바다로 나왔으니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프로답게 말입니다.
어느새 2019년 다섯 번째 달의 마지막 날이네요. 여러분들의 2019년은 어찌 흐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편한 주말 되시고 이제 본격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첫째 주도 아자 홧팅입니다! ^^
수희향 올림
[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https://blog.naver.com/alysapark
[카페] 1인회사 연구소 www.Personalculture.co.kr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팟캐스트]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 많이 헤매야 내 길이 보인다
64번째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연지원 작가의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가 이어집니다. 연지원 작가에게 책, 여행, 와인의 의미와 글쓰기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인문학과 실용성은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또한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선택하여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방송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odbbang.com/ch/15849?e=23004573
2. [모집] '좋은 책 읽고 쓰기 습관화 프로그램' <에코독서방> 9기 모집
<에코라이후> 배움&놀이터 주인장이자 라이프 밸런스 컨설턴트인 차칸양 대표가 좋은 책 읽기 습관화 프로그램인 <에코독서방> 9기를 모집합니다. 독서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좋은 책은 좋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생각을 나누게 되면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좋은 기운이 스며들게 된다고 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되시거나, 혼자서 독서 습관을 들이기 힘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5147
3. [모집] 1인회사연구소- 책으로 바꾸는 내 인생: 읽/쓰/토 프로그램
1인회사연구소 수희향 대표가 진행하는 <책으로 바꾸는 내 인생: 읽/쓰/토> 프로그램 6월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수희향 대표는 책을 읽어 6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11년차 1인 지식기업가로 전환을 이루었습니다. 책을 읽고 어떻게 인생이 바뀔 수 있는지, 지속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1인 지식기업가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읽쓰토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해보고, 진짜 인생을 바꾸는 책 읽기를 하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5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