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알로하
  • 조회 수 788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9년 6월 2일 06시 52분 등록


저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엄마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입니다. 요즘처럼 따뜻하고 나른한 봄날 오후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어린 저의 손을 잡고, 등에는 동생을 업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저보다 세 살 어리니까 아마도 그 때 저는 대여섯 살 정도 였겠지요. 한 손은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빵인지 과자인지를 쥐고 먹으면서 기차길을 따라 걷다가 건널목도 건너서 한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랑 동생과 함께 나들이 가듯 신나게 걷던 기억만 나지 그렇게 걸어서 어디에 갔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 물어보니 우리가 갔던 곳은 요리 강습 교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엄마는 남편과 두 아이 외에도 시아버지에 3명의 시동생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유일한 성인 여자였고, 집안 살림과 육아를 홀로 맡아 하셨답니다. 고된 대가족 살림을 하던 중에도 요리하는 것만큼은 즐거우셨다네요.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있었던 요리 교실을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차가 없어서 그 먼 길을 걸어 가야 했고,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서 두 아이를 업고 붙잡고 다녀야 했지만 그 시절 엄마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숨통이었던 터라,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한식 조리도 배우고, 양식 조리도 배우고 나중에는 베이킹도 배워서 빵도 굽고 과자도 만드셨는데요. 할아버지를 비롯한 성인 남자들의 입에는 양식 조리나 빵과 과자는 입에 안 맞았기에 국이나 반찬만 만들었고 엄마의 재주는 그렇게 묻힐 뻔 했답니다. 그러다 저와 동생들이 자라면서 간식으로 빵과 과자를 만들어 주셨고, 그제서야 엄마의 베이킹 재주는 빛을 발했나 봅니다. 저와 동생들은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사브레, 버터 쿠키 등의 과자와 슈크림 빵 등 동네 아이들과는 다르게 엄마표 핸드 메이드 간식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어느 해 저의 생일, 엄마는 큰 딸을 위해서 손수 2단 케이크를 만드셨고, 동네 아이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어 주셨지요. 그 때 동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이런저런 간식과 2단 케이크를 보며 부러워했는데, 정작 저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다소 투박한 케이크가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아이들 생일 파티처럼 제과점에서 파는 예쁜 케이크를 사줬으면 하고 바랐으니, 참으로 돼지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었네요.

그 때 한 번의 생일 파티 이후로는 케이크를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도 엄마는 베이킹에 취미를 잃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가족 살림에다 시아버지 병수발에 세 아이까지 키우느라 더 이상 빵을 구울 여유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엄마표 빵과 과자는 기억속에서 점점 희미해졌고, 저는 바라던 대로 제과점에서 만든 빵과 수퍼마켓에서 산 과자를 먹으며 컸습니다.

 

자라면서 저는 더 이상 다를 수 없다 싶을 만큼 성격, 재능, 취향, 지향점, 외모 등 모든 것이 엄마와 달라졌습니다. 특히 엄마의 가장 큰 특기이자 자랑인 요리를 서른이 다 되도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요. 엄마의 취미인 많이 만들어서 나눠 먹기도 이해가 안 됐었습니다. 간혹 친 엄마 맞냐고 농담을 할 정도였고, 엄마도 어떻게 너 같은 애가 나한테서 나왔냐며 다름을 인정하셨지요. 하지만 엄마처럼 미련하고 답답하게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엄마를 닮지 않음이 전혀 아쉽지 않았고, 오히려 안심이 되고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저는 매주 식빵과 스콘을 구워 나눠먹고, 가족과 친구들의 생일에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을까요?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가장 맞을 것 같습니다. ^^

처음에 시작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 때 였습니다. 저를 위해 밥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봤고, 그래도 모르겠는 건 엄마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통화를 할 때마다 굶어 죽지는 않겠다며 안심하셨다네요. 가끔은 친구들과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를 하며 한국 음식을 나눠 먹었는데, 맛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봤자 김밥이나 잡채 정도였지만, 한국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 맛이었나 봅니다. 그때 포트럭 파티에 파이나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오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다니케이크는 제과점에서 사먹는 음식으로만 알았는데, 너무 대단해 보였지요. 그런데 그들은 마트에서 케이크 믹스를 사다가 반죽해서 오븐에 굽기만 한 거라면서 오히려 제 김밥을 어떻게 만든거냐며 더 신기해 했습니다. 마침 제가 살던 집에도 오븐이 있었습니다. 궁금한 맘에 저도 친구들처럼 믹스를 사다가 우유를 넣고 모양을 내어 머핀을 만들어 봤습니다. 진짜 될까 했는데... 방금 막 오븐에서 꺼낸 향긋한 머핀 맛이 나더군요. 하긴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먹었으니 그 맛이 날 수 밖에요. 맛이 나는 것이 신기해서 이것 저것 만들어 봤지만, 재료를 미리 섞은 믹스를 사서 만드는 수준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몇 번 만들어보니 신기함이 사라졌고 새로운 취미도 그렇게 흥미를 잃었습니다.

다시 빵을 만들게 된 건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후였습니다. 이번에는 무엇이 저의 핏속에 흐르는 베이킹에 대한 본능을 일깨웠을까요? 본격적인 베이킹 입문기는 다음주로 넘겨야겠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빵과 인문학에 얽힌 이야기도 다음주로 미뤄야겠네요.

6월의 첫날입니다. 이제 정말 여름이네요. 이번주도 건강하고 맛있는 한 주 보내세요~^^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팟캐스트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 많이 헤매야 내 길이 보인다

64번째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연지원 작가의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가 이어집니다연지원 작가에게 여행와인의 의미와 글쓰기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그리고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인문학과 실용성은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또한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선택하여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방송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odbbang.com/ch/15849?e=23004573

 

2. [모집] '좋은 책 읽고 쓰기 습관화 프로그램' <에코독서방> 9기 모집

<에코라이후배움&놀이터 주인장이자 라이프 밸런스 컨설턴트인 차칸양 대표가 좋은 책 읽기 습관화 프로그램인 <에코독서방> 9기를 모집합니다독서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좋은 책은 좋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그리고 이 좋은 생각을 나누게 되면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좋은 기운이 스며들게 된다고 합니다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되시거나혼자서 독서 습관을 들이기 힘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5147

 

3. [모집] 1인회사연구소책으로 바꾸는 내 인생//토 프로그램

1인회사연구소 수희향 대표가 진행하는 <책으로 바꾸는 내 인생//프로그램 6월 참가자를 모집합니다수희향 대표는 책을 읽어 6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11년차 1인 지식기업가로 전환을 이루었습니다책을 읽고 어떻게 인생이 바뀔 수 있는지지속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1인 지식기업가로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읽쓰토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해보고진짜 인생을 바꾸는 책 읽기를 하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5007

 


IP *.180.157.29

프로필 이미지
2019.06.06 09:27:00 *.221.143.48

평소 베이킹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반가운 글입니다^^

다음글도 기대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96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18. 열하일기 1 [1] 제산 2019.03.18 815
3895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0. 아빠와 함께 헌책방 나들이 [1] 제산 2019.04.01 815
3894 국공립 영어도서관, 장서개발회의에 참석했어요! 제산 2019.06.24 815
3893 [금욜편지 96- 정해진 미래] 수희향 2019.07.12 815
3892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이번 주 쉽니다 알로하 2019.12.01 815
3891 최선의 어른 [2] 어니언 2023.01.05 815
3890 소점포에 ‘컨셉 Concept’이 필요한 이유 이철민 2017.11.23 816
3889 <목요편지> 나답게 말하는 법 [2] 운제 2019.01.24 816
3888 [금욜편지 126- 헤라클레스가 에니어그램을 알았더라면- 안티고네편] 수희향 2020.03.06 816
3887 [월요편지 122] 아내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6] 습관의 완성 2022.09.18 816
3886 날개 위의 기적 [1] 어니언 2023.06.01 816
3885 가족처방전 – 이상한 정상가족 file 제산 2018.05.21 817
3884 [화요편지] 엄마의 필살기, 가장 나다운 '사랑의 기술' 아난다 2020.03.17 817
3883 [일상에 스민 문학] - 낯선 남자와의 데이트 [2] 정재엽 2018.03.07 818
3882 [금욜편지 107- 책쓰기는 주제다] 수희향 2019.10.04 818
3881 예지 쿠크츠카 장재용 2019.11.27 818
3880 [수요편지] 월급쟁이 사룡천하(四龍天下) 1 장재용 2020.02.12 818
3879 [내 삶의 단어장] 소금과 막장 사이에 선 순대 에움길~ 2023.04.24 818
3878 백스물다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실수 재키제동 2017.11.17 819
3877 [화요편지] 새해 첫날 띄우는 사랑의 기쁨 [10] 아난다 2019.01.01 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