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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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호랑 애벌레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벌레 마다 내부에 나비가 한 마리씩 들어있다구? 그런 이야기를 곧이듣다니, 너도 참 웃기는 애구나. 우리의 삶은 기어 다니다가 기어오르는 거야. 우리 모습을 봐! 어느 구석에 나비가 들어 있겠어. 이런 몸뚱이나마 최대한 이용해서, 애벌레의 삶이나 열심히 즐기라고!” “그 애가 옳을지도 몰라. 나한테 무슨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비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그런 환상을 꾸며 낸 것일까?” 커져가는 것이 두려움뿐이었다면 포기해버리고 말면 그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일단 나비가 되면, 너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 말이다. 그런 사랑은, 서로 껴안는 게 고작인 애벌레들의 사랑보다 훨씬 좋은 것이란다.”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중에서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진정한 사랑’너무나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 사랑을 소화하고 싶습니다. 서로 껴안아주는 애벌레의 사랑이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벌레의 사랑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나비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애벌레로서 사랑하는 시간도 충분히 좋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랑법이 필요할 때가 왔으니까요. 먹고 자라는 것이 전부였던 어린 날들. 애벌레 기둥 안에서 치열하게 내 자리를 찾아가던 시절, 밟고 밟히는 경쟁에 지쳐 또 다른 삶을 찾아 헤매던 시간들, 그리고 다시 돌아간 애벌레 기둥에서 내려오기로 마음먹고 난 이후의 나날. 그 모든 시간들이 한 마리의 나비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은 아니었을까요?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5주차 셀프워크샵 ‘내 생의 마지막 날’(2017.5) 중에서 |
퇴직한 지 1년이 넘어갈 무렵이었습니다.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쳤던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이제는 뭔가 시작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퇴직 직후에는 감히 기대도 할 수 없었던 변화였습니다. 물론 반가운 변화였죠. 문제는 '대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였습니다.
꼭 이런 마음일 때 스승을 만났습니다. 스승의 안내를 따라 한 발짝씩 걸으며 막막하기만 하던 제 마음의 밀림에서 길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그 길 위에서 평화로웠습니다. 할 수 만 있다면 '죽음의 레이스'라 불릴 정도로 혹독한 연구원 과정이라도 다시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 때와 달라져 있었습니다. 먼저 연구원에 지원하던 당시와는 달리 저는 이미 지켜야할 현장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저를 움직이게 했던 그 일, 그러니까 '삶을 바꾸는 일'이 단기성과를 기대하고 의욕만으로 덤빌 종류의 프로젝트가 아님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아무런 의심없이 믿고 따르던 스승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었겠지만요.
그렇게 한참을 불안해하다 4년 전 꼭 지금의 저와 같은 엄마들을 향해 띄웠던 초대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안내로 체험한 '재생의 원리'를 엄마로서의 일상속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워크샵형 프로그램의 공지문이었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우면서도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엄마 자신만의 답안지를 만들어 가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으로 가족과 사회를 기쁘게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간절한 희망을 품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래. 이거다. 어쩌면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나를 위해 만들어 두었던 프로그램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직을 떠나 자유인으로서의 새 출발을 앞두기도 한데다 마냥 어리던 다섯 살 창훈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아기띠에 넣고 다니던 서영이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이쯤에서 엄마로서의 답안지도 한번쯤 업데이트 할 때가 된 거니까.’
그렇게 오로지 저만을 위한 셀프워크샵이 시작되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널 힘들게 하는 거니? 진짜로 살고 싶은 삶은 어떤 거니? 그 삶을 만나는 걸 망설이게 하는 건 뭐니?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면 그 삶을 위해 지금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니?' 등등 아무도 물어주지 않기에 대답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질문들에 온 마음을 다해 답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이 모여 익어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저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세상에나, 출판용 원고도 아니고 혼자만 보는 책을 만드는데 1년을 꼬박 쓰다니 제 정신이냐구요? 이해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이 책이 묶여 나오기 직전까지도요. 왠지 모를 끌림으로 제 안에 다 있는 이야기를 굳이 인쇄해 묶어 밑줄 긋고 메모해가며 읽었습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읽듯이요. 그리고 나니 제 이야기라고 생각할 때는 보이지 않던 책 속의 그녀를 위한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감히 12기 후배 연구원들의 안내자 역할을 자처할 용기를 내고, 또 이를 감당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책에서 얻은 확신 덕분이었습니다. 한 발을 내딛으니 또 다음 걸음을 위한 길이 열려왔습니다.
그렇게 그 책을 쓰면서 발견한 길 위에서 2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일견 막연해 보이는 열망을 어쩌지 못하는 저 자신을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었던 그 힘이야말로 제 안에 잠들어 있던 생명력을 다시 깨워내는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었다는 것을요. 다시 말해 나비가 되기 위한 '고치의 시간'이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 스스로를 수용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힘을 기르는 수행의 시간이며, '나비'란 비로소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된 존재를 이르는 말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책쓰기'가 제게 효과적인 수행의 도구가 되어주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겠지요?
우리 시대의 영적 구루라 불리고 계신 틱낫한 스님께서도 저서 <화>에서 '자기 자신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고통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길이 된다. 그 책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줄 것이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줄 것이다.'고 말씀하고 계시네요. 자신에 대한 책쓰기로 새삶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