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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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는 다른 현실 속 관계
필립 로스는 현대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4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작가로서 1959년에 데뷔하여 40년이 넘게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플리쳐상은 물론이고 펜 (PEN) 상 중 2006년에는 “불멸의 독창성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작가”와 2007년에는 “지속적인 작업과 한결 같은 성취로 미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현대 미국문제를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소설 속에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 제가 읽은 책은 2006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에브리맨>입니다.
<에브리맨>은 남자 주인공의 장례식인 황폐한 공동묘지에서 시작해서 공동묘지에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 사이에 주인공이 회상하는 자신의 일생이 펼쳐지는데 지극히 인간적이다 못해 (여성 독자의 입장에선) 도대체 왜 그러고 사니?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철딱서니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끝까지 이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제목인 “에브리맨”이 말해주듯 소설 속 주인공은 다름아닌 저희 모두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필립 로스는 우리 모두가 살면서 부딪히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실수투성이 삶 속에 담긴 갈등과 회한 그리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삭막함을 결코 길지 않은 한 남자의 적나라한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브리맨”이라 불리우는 주인공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동네 작은 보석상을 하는데 그 가게 이름 역시 ‘에브리맨”이기도 합니다. 이는 주인공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 모두 특별한 날에는 자신의 가게에서 쥬얼리를 사며 행복을 느끼기를 바라는 따듯한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일상의 고단함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날에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이렇듯 소박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가정을 꾸리게 된 남자 주인공은 아들 둘을 얻고 역시나 평범한 삶을 꾸리던 중 이제는 미국에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이혼을 합니다. 이혼이 의례 그렇듯 아내와 남편은 이혼의 잘못이 서로에게 있다 탓하게 되고 엄마를 따라 간 두 아들 역시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 여기며 일생 아버지를 미워하고 멀리하며 삽니다. 주인공 입장에선 첫 번째 결혼은 자신이 어린 시절 철이 없어 서로 맞지 않는 짝을 찾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행운의 여신이 도운건지 두 번째 부인은 첫 번째 부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깊고 헌신적인 여성을 만납니다. 남자 스스로도 과분하다고 여길 정도니까요. 더불어 두 번째 부인에게서 딸을 얻었는데 아들들과는 달리 너무 사랑스럽고 아이도 아빠를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합니다. 비로소 꽉 찬 행복이 주인공을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그. 러. 나 이 남자. 나이 50이 되더니 24살짜리 광고 모델에게 홀딱 반하고 맙니다. 그 때까지 남자의 커리어는 그럭저럭 잘 풀려서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며 젊은 여자들이 주변에 너무 많은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습니다. 어린 모델과 파리로 여행을 떠나 애정행각을 벌이며 아내에게 수 없는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습니다. 결국 너무도 정숙하고 헌신적인 두 번째 아내, 피비는 더는 남편을 신뢰할 수 없다며 결국 그의 곁을 떠나고 맙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쁜 일은 꼭 겹쳐서 일어나는 걸까요. 같은 시기 그가 늘 의지하고 고향처럼 따듯했던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이하며 그의 곁을 떠나고 맙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차디찬 현실을 깨닫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에 갖다 대는 순간, 그는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헌신적으로 그를 뒷받침했던 두 여자를 잃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과오를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남자 주인공 역시 자신의 애정 행각이 단순한 욕정에 끌린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어이 24살짜리 어린 여자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24살짜리 어린 모델의 소비벽은 상상 이상이었고 성격은 늘 달래줘야 하는 딸보다 더 어린 소녀 같았습니다. 그제야 온전히 차린 남자는 비로서 자신이 한 일을 마주하게 됩니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아내를 아주 약한 압력에도 부서져버리는 아내로 바꾸어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이혼 직후의 상황에서는 그녀와 결혼하는 것이 범죄를 덮어버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두 번째 아내는 이미 멀리 떠나 버렸고 그의 곁에는 낭비 벽이 심하고 아프면 외면하는 어린 아내가 있을 뿐입니다. 설상가상 그의 건강은 그 때부터 내리막 길을 타기 시작하며 이런저런 수술이 반복됩니다. 그 때마다 어린 아내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그보다 더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환자를 곤욕스럽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정말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니 그를 끔찍이 아끼던 유일한 피붙이인 형과도 멀어집니다. 이유인즉, 일생 단 한 차례 병치레도 하지 않고 건강하고, 일에서도 승승장구하고 가정도 안정적으로 꾸려가는 형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심 때문에 주인공이 먼저 연락을 끊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우상과도 같았던 형인데 자신은 돌봐줄 사람도 없이 계속해서 수술에 입원에 병원 신세를 지며 인생이 엉망이 되자 초라함과 질투가 범벅이 되어 그토록 좋아하던 형조차 멀리하게 된거죠.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말입니다..
이제 칠순이 넘은 그의 곁에 남은 사람은 단 한 사람, 두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입니다. 첫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두 아들이 일생 그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것과는 달리, 딸 낸시는 그를 멀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녀 자신이 딸 하나를 데리고 이혼을 한 상태여서 마음만큼 아버지를 가까이하거나 돌봐줄 수 없습니다. 거기다 낸시의 어머니이자 주인공의 두 번째 부인인 피비가 쓰러지면서 마비가 오자 그녀를 돌보는 것 역시 낸시의 몫이 되며 아버지는 더욱 가까이하기 어려워집니다. 한 때는 원기 왕성한 삶을 살며 자신의 욕정이 이끄는데로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던 한 남자가 이젠 철저히 혼자가 되어 노년을 맞아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그가 노년이 되기 전에 자신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를 알았다면 다른 선택들을 했을까요..? 그랬다면 나이 50에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이 엉망이 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오십 살의 그는 그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쉰 살의 그는 말하기를 일을 정신 없이 돌아가는데 과연 나는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새 열정이 식어버린 결혼 생활은 권태로웠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대개 평범한 우리들이 중년의 한가운데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허함과 권태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 너무도 아름답고 싱그럽고 젊은 모델이 다가오자 자신도 덩달아 젊어지는 느낌에 다시 젊어지는 것처럼 좋았다고 하는 말 앞에선 일견 측은함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꼭 그래야만 했는지는 묻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비록 저희 같은 일반인들이 주인공처럼 3번씩 결혼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이 느끼는 관계 속 갈등과 권태 그리고 회한은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일생을 살며 맺는 관계 속 갈등은 비단 배우자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그리고 동료들까지 여러 관계들이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저는 어제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원에서 <왜 인문고전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공학대학원 분들이라서 과연 인문고전 읽기에 관심이 있을까 내심 염려가 많았는데 막상 뵙고 나니 인문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는 물론, 공대 전공임에도 언젠가 한번은 독립생활자로 살아가야 함에 대한 생각들은 깊이 공감들 하셨습니다. 확실히 저희 사회가 저성장 고령화시대를 맞아 전공무관 살면서 한번쯤은 1인 기업가로서의 삶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마음편지가 독자분들에게도 언젠가 1인 지식기업가로서 전환을 고민할 때, 한 줄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아침을 맞습니다.
그럼 편한 주말되시고 다음 한 주도 인문고전과 함께 한걸음 더 진정한 나다움의 길로 걸어가시는 한 주 되시기 아자 홧팅입니다! ^^
수희향 올림
[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https://blog.naver.com/alysapark
[카페] 1인회사 연구소 www.Personalculture.co.kr
---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 엄마가 시작하고 아이가 끝내는 엄마표 영어
변화경영연구소 10기 김정은 연구원이 세번째 책 <엄마가 시작하고 아이가 끝내는 엄마표 영어>를 출간하였습니다.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면 굳이 ‘하라 하라’하지 않아도 아이는 따라하게 되나 봅니다. 아이가 다섯 살이었을 때부터 중학생이 되기까지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집에서 할 수 있는 영어공부법을 담아냈다고 합니다. 듣고, 읽고, 놀다 보면 영어가 되는 실현 가능한 영어교육법이 궁금하신 분들의 일독 권해드립니다:
http://www.bhgoo.com/2011/854744
2. [팟캐스트]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 많이 헤매야 내 길이 보인다
64번째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연지원 작가의 <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 2부가 이어집니다. 연지원 작가에게 책, 여행, 와인의 의미와 글쓰기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인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인문학과 실용성은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또한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선택하여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방송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odbbang.com/ch/15849?e=23004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