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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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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1일 08시 57분 등록

현실에서 관계를 지키는 법

우리 문화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경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 인기와 성적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저 역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 강렬한 끌림 혹은 설레임이나 매력>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진정한 사랑이란 (그렇지 않은 걸 알면서도 여전히) 영원히 그런 느낌이 지속되는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제가 알던 자유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프롬은 이번에는 제가 알던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대개 사람들이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 성적 끌림 혹은 감정적 끌림>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적 끌림이나 감정적 끌림은 절대 지속될 수 없는 것으로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시들해지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욕망 혹은 감정적 끌림이 사라진 상태= 사랑이 식은 상태>로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설레임과 흥분이 사라진 일상의 권태를 견디지 못해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기를 반복하는 것. 그것이 현대인들이 영원히 사랑을 쫓되 영원히 사랑을 찾지 못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바로 <에브리맨>의 남자 주인공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프롬은 청춘 시절 자신에게도 사랑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첫 사랑 약혼녀를 어릴 적 친구에게 빼앗기고 자신의 정신분석가와 결혼하지만 얼마 못 가 이혼합니다. 그 후 자신처럼 신프로이트 학파의 여성 심리학자였던 카렌 호나이와 사랑에 빠지지만 둘 사이에는 묘한 경쟁심이 흐르며 결혼까지 이르지는 못합니다. 다음으로 나치즘으로부터 도망쳤다는 공통점을 지닌 사진기자, 헤니 구어란트와 두 번째 결혼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몇 년 뒤 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녀와의 관계는 프롬이 그녀를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끝없이 돌보고 많은 것을 베풀기만 해야 했던, 프롬의 입장에선 다소 힘든 결혼생활이었습니다). 이렇듯 프롬은 미국으로 망명 뒤 사회심리학자로서 명성을 떨치는 것과는 달리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외롭고 힘든 관계를 이어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대중심리학 못지 않게 사랑 혹은 관계의 문제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성장하여 이성과 건강한 애정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적으로 <분리- 독립- 융합>의 단계를 거쳐야 함을 밝혀냅니다. 즉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분리하여 한 개체로 홀로서기를 한 뒤, 비로소 또 다른 한 개체와 융합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지만 대개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특히 모성으로부터 분리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어른이 되기 때문에 홀로서기는 물론이고 그 다음 단계인 이성과의 융합 단계도 헝클어질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성애의 참된 본질은 어린아이의 성장을 돌봐주는 것이며 이것은 그녀로부터 어린아이가 분리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분리를 관용할 뿐 아니라 바라고 후원해주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모성애는 비이기성, 곧 모든 것을 주면서도 사랑하는 자의 행복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과업으로 변한다. 또한 이 단계에서 많은 어머니들은 모성애라는 그들의 과업에서 실패를 겪는다.”

 

프롬 역시 그에게 과한 애착을 보이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여 홀로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투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생물학적으론 성인이 되었으나 아직 정신적으로 어머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청춘의 날들, 그는 어머니를 닮은 여성들에게 끌리지만 (그렇기에) 한편 그들에게 안착하지 못하며 힘든 관계를 이어올 수 밖에 없었다고요. 그런 그가 마침내 인생의 반려자와 만난 것은 그의 나이 53살의 일로서 애니스라는 미국 여성을 만나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애니스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성숙한 관계를 맺으며 남은 일생을 함께 합니다. 그러면서 1956년 발표한 책이 바로 <사랑의 기술>로서 이 책이야말로 프롬 자신이 진정한 사랑,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 탐색한 길고 긴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입니다. 단순한 심리학적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온 삶을 통해 추구한 책이었던 만큼 이 책은 현재까지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에서 번역되어 사랑과 관계 문제에 있어 최고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성숙한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요..?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따로또같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사랑은 역시나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받아들여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실의 관계에서 이 말을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다름에 끌렸다 그 다름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싸움을 반복하다 결국 지쳐서 헤어지는 것이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받으려고만 하는 사랑도 문제지만 주기만 하는 사랑도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이란 주고, 받는 것이지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준다고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물질적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 그는 줌으로써 다른 사람의 생명에 무엇인가 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생명에 야기된 것은 그에게 되돌아 온다.”

 

준다는 의미가 지금까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프롬이 말하는 주는 사랑이란 무엇보다 주기 위해선 내가 충만해야 하고, 나의 충만함을 상대와 나눌 때, 상대방이 충만해져서 다시 나를 채워주는 마치 건강한 생명 에너지를 주고 받는 선 순환의 관계였습니다. 문득 <코끼리와 벼룩>의 찰스 핸디 부부가 떠올랐습니다. 핸디 부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평생을 해로한 부부로서 영국에서도 그 비결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 핸디는 말하기를 자신들은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기다리며 두 개의 악기가 화음을 맞추는 것처럼 조율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것이 비결이 아닐까라고 합니다. 즉 찰스 핸디가 대기업을 나와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아내는 핸디의 비서 역할을 자청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핸디를 지원합니다. 그가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이번엔 핸디가 아내가 가정주부에서 사진작가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을 일을 줄여가며 아내를 지원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핸디 부부 역시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었지만 함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며 차츰 열정만이 전부였던 연인에서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걸어왔다고 합니다. 분명 에브리맨의 남자 주인공과는 다른 궤적의 삶이자 현실에서도 이런 관계가 가능함을 일깨워주는 노년까지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그럼 편한 주말되시고 다음 한 주도 아자 홧팅입니다! ^^

 

수희향 올림

[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https://blog.naver.com/alysapark

[카페] 1인회사 연구소 www.Personalcult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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