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산후우울증 증세가 한 달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자가 무슨 산후우울증이냐고요? ‘정신적인 출산’이란 것도 있습니다. 책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런 증세가 이번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14권의 책을 쓰면서 책을 쓸 때마다 이런 증세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약 10년 전에 구본형 선생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정도로 책을 많이 쓰면 책을 쓰는 것이 쉽게 되지요?” 나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답은 달랐습니다. “매번 첫 책을 쓰는 것처럼 쓰지 않으면 책을 쓸 수가 없다. 오히려 첫 책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저의 심정이 딱 그렇습니다. ‘알고 있는 것은 다 썼는데 무슨 수로 다시 채워야 하나?’ <객주><임꺽정><장길산>과 같은 대하소설을 쓴 김주영이 1989년 절필선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일보와 7년간에 걸친 연재계약을 한 지 불과 1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소설이 ‘동어반복’이 너무 심하고, 상업성에 침식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의 그런 선언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100퍼센트 이해가 됩니다. ‘책을 쓰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우면 쓰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쓰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 더 큰 고통이 오는 것을 느낍니다.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또 쓰게 됩니다. 그런 산고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면 옥동자가 탄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주영이 절필선언을 한 것도, 2년 후에 다시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는 2년 후에 <홍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넘기면 또 하나의 산을 넘을 수 있는 힘과 의욕이 생긴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또 극복해가야겠지요. “절망으로 쓰고 희망으로 고친다.”는 말을 잊지 않고 뚜벅뚜벅 걸아가면 또 하나의 정신적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 힘든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목요편지>가 <금요편지>가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오늘을 즐겁게,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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