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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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미래
<21세기 자본>이란 책으로 세계 경제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 출신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3백년간의 통계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그로 인해 심화되는 불평등 현상을 조목조목 따지고 듭니다. 방대한 분량의 통계학적 실증과 자본주의 전체를 꿰뚫는 경제사상으로 인해 결코 읽기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거시경제를 예측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는 현대 경제학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변하지 않을 미래를 알고 싶다면 단 한 권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면 된다고 할 정도이니 반드시 한번은 읽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책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미래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요지는 무엇일까요..?
양극화의 근본요인: r > g
내가 r > g라는 부등식으로 표현할 이 근본적인 불평등은 이 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서 r 은 연평균 자본수익률을 뜻하며,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 소득을 자본 총액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G는 경제 성장률, 즉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이 책의 핵심 주제이자 미래 자본주의를 결정하는 키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r > g 입니다. 즉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여 선진국에 진입하면 할수록 경제성장률은 3~4%에 머물다 결국은 1~2%대로 내려앉아 그 상태로 지속되지만, 자본수익률은 늘 4~6%를 기록하며 자본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양극화 현상은 심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경제성장률 7~8%의 고도 성장을 이룰 때보다 국민총소득 3만불 시대에 들어섰다는 현재 빈, 부 차이를 더 극심하게 느끼는 이유입니다. 즉 국가 전체 경제는 성장을 하여 이제는 선진국에 진입하였지만 (더 이상 성장할 여력이 없어)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며 성장률 1~2%대에 머무르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경제 성장을 피부로 느낄 수 없습니다. 반면 자본가들은 여전히 4~6% 수익률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양극화 현상은 이전 시대보다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 세대들이 70, 80년대 고도 성장 시대를 가리켜 옛날이 살기 좋았다 회상하는 것이겠지요. 그 때는 경제가 매일이 다르게 성장하며 일반 국민들에게도 일자리가 풍부했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제 성장률이 자본 수익률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21세기는 어떤 사회가 될까요..?
“19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대부분 그랬고 21세기에 다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때는, 논리적으로 상속재산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의 일부만 저축해도 전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상속재산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것이고 자본의 집중도는 극히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집중도는 능력주의의 가치, 그리고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피케티의 설명에 의하면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세습주의 사회였던 19세기와 비슷한 모습을 띄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19세기는 계급에 의한 세습주의 사회였다면 21세기는 계급이 “자본”으로 대치된 “자본세습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거죠. 이미 부의 불평등이 가장 극단적으로 벌어진 미국의 경우, 진보주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에선 이제 부자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고는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 정도입니다. 다행히 유럽이나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로 양극화 현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피케티의 말처럼 이대로 가면 저희 나라 역시 머지 않은 미래에 미국이나 영국 정도의 빈, 부 격차가 심화된 사회가 될 날도 예측 가능한 일입니다. 하루 속히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까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그 이전의 불평등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불평등 구조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2010년대에 접어든 오늘날, 필경 사라진 듯했던 부의 불평등이 역사적 최고치를 회복하거나 심지어 이를 넘어서는 수준에 다다랐다. … 자본주의가 더욱더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는 21세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다음 번 위기 혹은 전쟁 (이번에는 그야말로 진정으로 세계적인 대전일 것이다)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피케티는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이 한 국가의 성공적인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성장주의”를 뒷받침하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낙수효과’라고도 알려진 ‘트리클 다운 효과’는 대기업이 성장하면 그 밑으로 중소 기업과 영세 하청업자 들까지 줄줄이 그 혜택을 보게 되고 고용 효과도 늘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20세기 경제성장을 설명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활용되던 이론으로서, 분배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두는 경제학자나 정책 입안자들이 즐겨 쓰는 이론으로 국가경제가 성장하면 자연히 불평등도 줄어든다는 주장합니다. 그런데 피케티는 이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20세기가 19세기에 비해 불평등이 줄어둔 이유는 낙수효과 때문이 아니라 세계 양차대전으로 인해 선진국 경제체제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20세기에는 선진국들이 두 번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 대개 국가들간 혹은 국가 내 부의 편중현상이 사라져서 양극화 현상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인거죠 (보다 쉽게 표현하자면 20세기가 21세기에 비해 평등했던 이유는 전쟁으로 인해 다 같이 못살았기 때문이지 성장에 의한 낙수효과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성장에 의한 낙수효과가 불평등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앞으로도 경제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그의 주장은 더 이상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유수한 경제학자들과 연구소 등에서 그의 이론을 인정하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피케티는 불평등이 심화될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은 어찌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을까요?
“위험은 현실이지만 진정한 대안은 아직 없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 또한 21세기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서 민간 부문과 공공부문의 중간적 형태인 공유적 소유권과 지배구조의 새로운 형태를 개발하는 것도 여전히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적절히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는 오직 지역적인 정치적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너무도 거대하게 성장하여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라도 각국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되살려 자본주의를 규제하고 관리, 감독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사회는 점점 더 자본세습주의 사회가 되어 19세기 귀족계급 사회만큼이나 빈, 부 차가 심해질 것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피케티는 더 이상 경제학이 몇몇 경제학자들의 통계 놀이에 빠져있어서는 안되고 보다 쉽고 간결한 언어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물론, 사회학이나 정치 등 여타 분야와의 통합하여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경제학의 문제를 넘어 정치, 사회적 이슈로 다루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책이 없다는거죠. 마치 자본주의의 미래는 정해졌으니 이제 당신은 어찌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진 작년 여름보단 덜 더운데, 여름이 결코 이 정도는 아니겠죠.
아무쪼록 7월 중순으로 넘어가는 다음 한 주. 늘 건강하시고 활기찬 날들 되세요!
수희향 올림
[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https://blog.naver.com/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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