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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3일 00시 10분 등록
철학은 처음이시죠? - 서양철학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손금이나 사주를 볼 줄 아냐는 질문은 차라리 귀엽습니다. 지금껏 만난 철학과 졸업생 중에서 가장 멀쩡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최강의 부정적 반응은 ‘얼마나 이기적이면 철학과를 갈 수 있죠?’ 였습니다. 이렇게 강한 반응을 보인 사람이 지금은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철학전공자가 아니지만 철학책을 읽어보았다는 분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읽다보면 자꾸만 철학자들 이야기가 나와서, ‘설마 읽다가 죽기야 하겠어?’하는 마음으로 철학책을 읽어보았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어떤 분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논리력을 키우고 싶었고, 논리력을 키워볼 목적으로 서양철학사를 읽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철학책 읽어봤다는 분들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철학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나름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철학책 읽기는 난색을 표합니다. 회사 독서 클럽에서 철학책을 다뤄본 적이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나 정호경 신부님의 <장자 읽기>를 읽어 보았지만 대부분 어려워했습니다. 

철학 입문자분들이 철학책을 읽으면 마치 ‘입에 자갈을 넣고 씹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역사가 사실을, 소설이 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면, 철학의 소재는 개념어 입니다. 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에서 강조하고 깊은 개념을 반복적으로 다듬습니다.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개념어를 추출해 내면서 동시에 개념어를 새롭게 연결하는 작업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개념어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독자는 소화하지 못하는 개념어들이 마치 ‘입에 부어진 자갈을 씹어야 하는 심정’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게 우려진 개념어와 개념어들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세로운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권 두 권 좋은 철학책을 읽다보면 더 깊고 넓은 세계를 가보고 싶어 집니다. 사실 이런 체험은 클래식, 즉 고전으로 불리는 대부분의 영역에 공통된 성격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니체를 공부해보고 싶다면, 일단 니체가 저술한 1차 자료를 보기보다는 1차 자료를 재가공한 2차 자료를 여러 가지 구해 먼저 접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2차 자료를 보면서 1차 자료를 보게 되면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1차 자료를 이해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그냥 서울 성벽길을 돌아도 좋지만 여행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며 성벽길을 돌면 훨씬 재미있고 깊게 음미할 수 있는 이치일 겁니다. 

서양 철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책 몇 권 추천해 보겠습니다.   


1. 철학사

* <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자음과모음)

- 철학사로 철학을 접근하길 추천합니다. 슈퇴리히 세계철학사는 놀랍게도 쉬우면서도 동시에 깊이 있게 서술하기라는 두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았습니다. 좋은 철학사 한 권 있으면 평생 철학 공부할 때 길잡이가 됩니다. 철학사 책은 빌려보기보다는 구입해서 곁에 두기를 권합니다. 도서관 대출기간이 보통 2주입니다만, 철학사 책을 2주 만에 읽으라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곁에 두고 짬짬이 보면 됩니다. 읽고 싶은 곳만 우선 읽어도 무방합니다. 반드시 새책을 구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고책 사이트나 중고책방에서 구입하길 권합니다. 분명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이 깔끔할 겁니다.


2. 철학 입문서

1) 한국 작가

* <철학, 역사를 만나다> (안광복, 어크로스)

*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사계절)

- 철학을 주제로 대중적인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가장 대표적인 한국 작가 3명입니다. 안광복 작가는 플라톤을 전공하였고 실제로 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김용규 작가는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습니다. 강신주 작가는 장자를 전공하였습니다.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이 작가들의 다른 책도 찾아 읽기를 추천합니다. 


2) 외국 작가 

알랭 드 보통과 유발 하라리를 추천합니다. 

*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청미래) 

- 서양철학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구나 싶어서 놀라웠습니다. 

* <불안>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 서양문화사를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꿰뚫은 명작입니다.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 베스트셀러가 깊이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3) 철학소설

* <방드르디, 야생의 삶> (미셸 투르니에, 문학과지성사)

미셸 투르니에는 철학교사 시험에 두 번이나 실패하면서 철학교사가 되는 꿈은 접었지만 대신 철학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화에 도전하는 게 철학의 역할인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이미 신화로 굳어진 로빈슨 크루소(다니엘 디포)를 뒤집어 보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읽어보시면 소위 ‘철학한다’는 게 무엇인지 비교체험 가능합니다. 이 소설은 번역본이 많던데, 저는 그림이 예쁜 ‘문학과지성사’ 번역본을 가장 추천합니다.  


* 번역의 문제 

철학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는 ‘어느 번역본을 봐야하는가’하는 질문이 많습니다. 물론 번역이 좋은 않은 철학책이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번역을 고민하는 문제는 입문용 책을 읽는 단계라기 보다는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 과정을 공부할 때 던질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다보면 알게 되고, 답답하면 다른 번역본 찾게 됩니다. 일단 찾아 읽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만, 1차 자료를 그냥 읽으면 포기하게 되기 쉬우니, 각종 2차 자료를 참고서처럼 사용하며 읽는 게 큰 도움 됩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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