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재용
 - 조회 수 137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하루애愛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시인 김수영은 어릴 적, 장사하시는 아버지 곁에서 보고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 말을 꼽은 적이 있다. 김수영이 꼽은 우리 말에는 컴퓨터 화면에 빨간 밑줄이 그어지는 말도 있다. 시인 김수영과 우리 사이, 그가 살던 시대와 내가 사는 시간 사이를 흐르는 언어 조류가 빠르게 지나가서 이제는 단박에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이 많다. 이 거센 조류에 우리의 언어, 나의 단어를 꼽아 죽방멸치처럼 가두고 싶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일었다. 해외에 살며 한국어 사용이 뚜렷하게 줄어들었다. 가끔 사물과 단어가 연결되지 않을 때도 있고, 일상에서 즐겨 쓰던 사소한 표현조차 생각나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의 진화론적 관점이 혹시라도 내 언어 지각에도 적용된다면 앞으로 잊어버릴 아름다운 단어들이 얼마나 많을 텐가. 많이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알고 있는 단어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면 낭패가 된다. 시간이 흐르기 전에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단어들을 갈무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던 것이다.
하루, 오늘 하루. 나는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정에서
자정까지. 사전을 뒤적여 보니 오늘은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날’이라 한다. 하루는 오늘과 비슷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오늘이므로 오늘은 그대와 나,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시공간적 최대공약수다. 긴 하루가 있고 짧은 하루가 있는 만큼 하루는 마음의
시간이다. 읽어 내리느라 식겁했던 토마스 만 Thomas Mann의 ‘마의 산’ Der zauberberg 에서 발견한 하루라는 마음의
시간은 내 마음을 후벼 판다.  
 똑같지 않은 하루가 내 삶에 많아진 건 라오스에 살며 건진 가장 큰 소득이다. 하루라는
것이, 그리니치 천문대발 시간이 아니라 지구 자전축에 착 달라붙어 그저 둥글게 돌아가는 지구 회전목마
같은 시간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 건 라오스가 내게 준 선물이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한 이 느린 시간에 늘 감사한다. 
주말 아침 자다 지쳐 일어나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 앞 까페로 가 에스프레소를 시켜 놓고 그 진함을 마주하고 한참을 바라보다 마침내 고것이 목구멍을 지나갈 때를 좋아한다. 가끔 잠자리를 챙겨 차를 몰아 낯선 동네를 지나고 드디어 도착한 숲에서 나무 사이로 뛰어 놀다 밤이 되어 침낭 속에 들어가 밤하늘과 내가 직선이 될 때 나는 환장한다. 아들과 침대에 누워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내 유년을 끄집어 내는 밤을 좋아한다. 딸과 침대에 누워 먼 나라 그리스에서 전해져 온다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며 왜? 왜? 물어오는 딸의 질문에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면서 ‘우린 너무 어려운 말을 쓰고 있어’하며 속으로 자책할 때가 좋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가는 버스 안에서 어딘지도 모를 경부고속도로 풍경을 응시하는 일이 나는 좋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 놓고 한가하게 아내와 진한 커피를 나눠 마시는 시간이 좋다. 드디어 다다른 암벽의 꼭대기에서 그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드넓은 하늘에 흩날리는 구름 그 장면에 나는 미친다. 아무도 자기를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흥에 겨워 온갖 오버를 하며 걸 그룹 춤을 추는 딸의 뒷모습을 아빠 미소로 보는 걸 좋아하고, 아들이 내 옷을 입고는 드디어 나는 어른이다 하는 행동을 보일 때 그 신화 같은 아이 마음을 읽어 내는 일이 좋다. 자이언츠가 8회말 역전할 때가 좋고 산에서 사지를 함께 다녀 온 산 친구들과 코펠에 술을 따라 마시며 사는 얘기, 실 없는 농담을 나누는 게 즐겁다. 책에 빠져들 때가 좋고 글을 쓸 때 좋은 표현이 나오면 뿌듯하다. 비 온 뒤 라오스집 마당을 맨발로 거닐며 발가락 사이로 진흙이 스며들 때가 좋다. 토요일, 낮잠을 자고 일어나 여전히 토요일임을 확인할 때 좋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3294 | 
                    
                         
                        [화요편지]4주차 워크숍_사랑하는 나에게                     |                                                                                                                                                                                                                 아난다 | 2019.08.13 | 1594 | 
| 3293 | 
                    
                         
                        역사는 처음이시죠? - 한국사                     |                                                                                                                                                                                                                 제산 | 2019.08.12 | 1585 | 
| 3292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우리나라' 와인                     |                                                                                                                                                                                                                 알로하 | 2019.08.11 | 1696 | 
| 3291 | [금욜편지 100- 백번째 편지와 첫 만남] | 수희향 | 2019.08.09 | 1372 | 
| 3290 | [수요편지] 잘 사는 나라 | 장재용 | 2019.08.07 | 1376 | 
| 3289 | [화요편지]4주차 미션보드_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다 | 아난다 | 2019.08.06 | 1364 | 
| 3288 | 여름 방학 - 교실 이데아 | 제산 | 2019.08.05 | 1354 | 
| 3287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한 여름에 즐기는 와인                     |                                                                                                                                                                                                                 알로하 | 2019.08.04 | 1351 | 
| 3286 | [금욜편지 99- 10년의 책읽기를 마치며] | 수희향 | 2019.08.02 | 1342 | 
| » | [수요편지] 하루애愛 | 장재용 | 2019.07.31 | 1376 | 
| 3284 | 
                    
                         
                        [화요편지]3주차 워크숍_내 안에서 가장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                     |                                                                                                                                                                                                                 아난다 | 2019.07.30 | 1541 | 
| 3283 | 철학은 처음이시죠? - 동양철학 | 제산 | 2019.07.28 | 1630 | 
| 3282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황제들이 사랑한 치즈 2                     |                                                                                                                                                                                                                 알로하 | 2019.07.28 | 1765 | 
| 3281 | 목요편지 _ 딸들과의 여행 | 운제 | 2019.07.26 | 1347 | 
| 3280 | [금욜편지 98- 내가 만드는 나의 미래] | 수희향 | 2019.07.26 | 1252 | 
| 3279 | [수요편지] 잠들지 않는 유년 | 장재용 | 2019.07.25 | 1451 | 
| 3278 | [화요편지] 내 인생이 서러운 100가지 이유 | 아난다 | 2019.07.23 | 1408 | 
| 3277 | 철학은 처음이시죠? - 서양철학 [1] | 제산 | 2019.07.23 | 1477 | 
| 3276 | 
                    
                         
                        [알로하의 맛있는 편지] 황제들이 사랑한 치즈 1                     |                                                                                                                                                                                                                 알로하 | 2019.07.21 | 2210 | 
| 3275 | [금욜편지 97- 내일을 바꾸는 오늘] | 수희향 | 2019.07.19 | 14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