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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28일 01시 01분 등록
정확히 기억한다. 2006년 1월 1일.
8년이라는 시간동안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던 비즈니스 세계에 사표를 내고 ‘자유인’(自由人), 일명 백수가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빠르게 달리고 있던 말 위에서 잠시 내려와 내가 달려온 길과 달려갈 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주변에서 응원하던 사람들은 성공적인 커리어 패스를 쌓고 있다고 조언하였지만, 승부는 이미 과열되고 있었다. 달리는 말에 대한 채찍질이 더하면 더해질수록, 주변의 풍광들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뭇잎의 푸르름도, 이름모를 들꽃의 꽃향기도, 미소짓는 아이의 웃음도 말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 돈키호테적 행동이었다. 아무튼 AB형 특유의 돌아이적 본성의 발로라고나 할까, MBTI유형 INFJ의 이상주의적 몽상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은 벌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아내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요즘은 불쑥 사표낸다고 하면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년 1월 20일 셋째가 태어났다.
백수의 시한부 시한은 6개월을 잡았다. 왜냐하면 정확히 그 시간만큼 먹고 살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금쪽 같은 시간에 내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첫째, 아내의 산후조리 돕기. 둘째, 아이들과 시간보내기. 셋째, 좋아하는 책 100권 읽기.
넷째, 내가 정말 좋아하는 천복(天福) 찾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네 가지 모두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성과(成果)를 얻지는 못했다. 6개월이 지난 후 부랴부랴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다시 과거의 본업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소명을 찾기 위해, 너무 감정적으로 오버해서 사표를 내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

그런데 이 시절 필명 류시화 씨의 번역본에 강하게 필(!)이 꼽혀있던 상태였다. 인생수업을 시작으로 그가 번역한 대부분의 책들을 소년적 감수성으로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000페이지가 넘는 오만한 책 한 권을 만나게 된다. ‘나는 네가 아니라 왜 나인가?’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얼굴의 책이었다. 얼떨결에 구입하고 난 후 많은 고민을 하였다.‘이거 너무한거 아니야?’라며 책망어린 질문을 던지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인디언’을 만났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의 삶과 철학에 빠져들었다. 한 번의 쉼도 없이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시(詩)였으며, 경건한 종교(宗敎)였다. 책의 분량에 압도된 첫인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행복하게 인디언과 함께 드넓은 대지를 여행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삶을 살았던 민족을 만난 것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중략)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1854년 시애틀추장 성명서)

미타쿠예 오야신. 이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 모두는 한 형제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들소 사냥 이후에도 자신들을 위해 희생되었던 동물들에게 신성한 제례의식을 행했다. 당신들의 죽음이 있어 우리들의 삶이 존재함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인디언들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 경건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인디언들에게 기도와 명상은 교회나 절에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지금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그들에게 활동하고 존재하는 모든 곳이 교회였으며, 신성한 곳이었다.

비교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사상적 편린에 어린 시절부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민족이 ‘인디언’이라고 알고 있다. 그의 저작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가 꿈꿨던 자연의 삶이 바로 인디언의 삶이었으리라 상상해 본다. 그는 신화 속 여행을 선택했다. 그는 ‘네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合一). 이 문구를 가르치기 위해 캠벨은 신화라는 거대한 숲으로의 여행을 안내했다.

여행 끝에 얻는 교훈은 간단하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 모두는 형제라는 사실이다. 세상에 목적(目的)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모두 그 나름의 존재이유(存在理由)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감사(感謝)라는 기도와 명상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나라는 멀리 있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 나라는 하느님의 보편적 현존이 우리의 이웃들 안에서, 우리의 원수들 안에서, 우리 모두 안에서 실현되는 데 있습니다.”<네가 바로 그것이다> 246p

인디언들에게 4월은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블랙푸트 족)이라고 한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하느님의 나라를 저기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이 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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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4.28 03:17:42 *.36.210.11
INFJ 그대는 나 하고 정 반대에 더러운 성깔(?)만 같으네. ㅋ
AB형이 또라이 돈키호테라고? 우하하.

미타쿠예 오야신! 그대는 매력 만점의 하느님이로구나. 아멘~


낮에 인생의 선배를 따라 성북동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 마리아를 닮으신 자애의 석가모니상을 언뜻 지나치며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쓰고 갈 줄 알았던 길상사를 헌사한 여인의 <공덕비>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였다는 매달린 예수님보다 깨달음의 석가모니불보다 한 여인의 삶이 더 가차이 경건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신의 자비와 진리보다 그 어떤 성현의 지혜보다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녀의 마지막 인생이 멋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과 행함이 이미 예수요 부처였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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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28 10:41:50 *.244.220.254
여인의 <공덕비> 아래서 합장하고 계신 누님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려지네요. 그 여인네의 마음과 행함이 예수요 부처라는 말씀에 가슴깊이 공감합니다. 그 여인의 모습이 누님과 오버랩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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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4.28 12:01:38 *.97.37.242
거암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또 놀라게 되네.

시한부 自由人되기, 아이들과 시간 보내기, 좋아하는 책 100권 읽기...

멋지다!!

그리고 "미타쿠예 오야신" 좋은 말 배우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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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28 12:25:37 *.244.220.254
역시 제가 워크샵에서 경거망동한 춤(!)을 추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 이미지 메이킹에 완전히 망가진 것 같습니다. 아리따운 써니누님께서 제 옆자리에만 없었어도~ 제가 미인들만 보면 약간 오버를 하거든요. 아무튼 부지런히 이미지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정산형님~ 강남에서 언제 번개 한번하면 좋겠습니다. 빈대떡, 오징어숙회 그리고 막걸리 좋은 컴비네이션이죠? 선릉역 근처에서 함 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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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4.28 16:46:52 *.122.143.151

거암.. 당신은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같네.

아니라구? 그런 사람이 아니라구?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

절대 외면에 치중하여서는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없다는 쉬운 진리를 거암을 보면서 항상 다시 깨닫게 되네.

이미지메이킹.. 한번 거암은 영원한 거암인거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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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4.29 07:34:59 *.244.220.254
제 외면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나보네요.......ㅋㅋㅋ
이제 보름 후면 형님의 기가막힌 애드립의 향연을 볼 수 있겠네요.
손꼽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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