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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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을 향해 내달리던 날씨가 한 번의 비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어느날, 그렇게 농익어 가는 봄밤에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감동이 잔잔한 물결처럼 파문을 만들더니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오르기까지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감동 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잔잔한 전율이 온 몸을 흘렀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울리쉬 뮤흐, 마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터커가 출연한 <타인의 삶>이라는 독일영화 입니다.
대강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민들의 정치이념을 감시하는 직업을 가진, 동독의 비밀 경찰 비즐러, 그는 어느 누구보다 냉철하고 애국심이 투철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의심해 본 적 없으며, 마치 기계처럼, 무감정한 일상에 아무런 의문없이 살아가는 듯이 보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그의 일상은 아주 단순하고 건조해 보입니다. 비밀경찰로서의 일과를 마치고 들어가는 집에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철두철미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의지에 투철한 그 이지만 웬지 모를 허허로움이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집니다.
그런 그의 레이더 망에 두 연인이 잡힌다.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타. 불만많고 말많은 예술가 답지않게 정부의 방침에 너무 고분고분 잘 따른다는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크리스타에게 반한 장관이 드라이만의 꼬투리를 잡아내고 싶어하는 덕에 비즐러는 24시간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됩니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 당하는 자.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서로를 향해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서로는 만나게 됩니다.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의 삶에 귀기울이던 비즐러는 그들의 진실한 사랑과 신념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들에게서 사랑과 연민과 애정을 알게 되는 비즐러의 삶에는 조용한 파문이 입니다. 그러나 그 파문은 조용하되 치명적일만큼 강한 것입니다.
두사람의 사랑의 대화를 흐뭇한 표정으로 음미하는가 하면, 결정적으로 자살한 스승이 생일선물로 보낸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라는 악보를 보고 드라이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비즐러는 그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피아노 선율에 비즐러는 아주 깊숙한 내면을 찌른듯이 보엿습니다.
드라이만은 연극계에서 퇴출당한 스승의 자살에 자극을 받아 동독의 암울한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로 합니다. 자신의 집은 도청이 되지 않고 있다고 굳게 믿는 드라이만은 작가 친구들과 서독잡지의 편집장까지 불러다가 음모를 꾸미고 그런 그들의 불순한 일거수일투족을 동독정부에 보고해야할 비즐러는 오히려 드라이만을 그들의 위협에서 구해내기까지 합니다. 끈질기게 드라이만을 도와줬던 비즐러는 비밀경찰에서 우편배달로 전락하여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까지 4년을 우편물 검색을 하며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릅니다. 그러던 어느날 베를린 장벽은 무너집니다.
드라이만은 자신 만큼은 도청이나 감시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철저하게 도청 당하고 있었소] 그는 자신을 도청했던 사람 HGW XX/7 코드명 비즐러를 발견하게 되고 그가 오히려 자신을 도와 주었음을 알게 됩니다. 드라이만은 초라한 우편배달부가 된 비즐러를 먼발치에서 지켜만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그는 고맙다는 말대신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라는 책을 2년 뒤 출판합니다. 서점에 걸린 드라이만의 대형 사진을 보고 서점에 들어간 비즐러는 그의 신간을 펼쳐봅니다. 비즐러가 펼쳐본 그책의 첫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포장해드릴까요? 라고 묻는 서점직원의 질문에 이 책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서 희미하게 미소짓는 비즐,. 영화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비즐러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변하고 마는 모습에서 영화는 마치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국가체제 안에서 훈련받고 길들여진 비즐러가 갈등하고 번민의 시간을 지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출세를 거머쥘 기회까지 버려가며,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그의 변화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타인의 삶>은, 5년간 그들을 감시하게 된 비즐러가 결국 그들을 돕고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며 나아가 그들의 삶에 동조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그들의 삶으로 살게 되었다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드라이만에게는 자신을 감싸준 비밀경찰 비즐러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도 있고, 자유와 인권이 억압된 그 시절, 비즐러는 국가에 충성스러운 가면을, 드라이만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느정도는 정권에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가면을, 그들 모두는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삶이야말로 곧 <타인의 삶>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한 가지 이상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그들처럼 우리 역시 나만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밀한 내면의 실체,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을 은닉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날 돌아보면 내 영혼을 팔아 넘기고 있었던가! 하는 짙은 회의가 자신을 다 집어삼켜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내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기거나 상실한, 혹은 팔아버리고 마는 삶이 아닌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한 곡이 멋지게 펼쳐지는 삶을 고대해 봅니다.
IP *.128.30.50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감동이 잔잔한 물결처럼 파문을 만들더니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오르기까지 차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감동 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잔잔한 전율이 온 몸을 흘렀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울리쉬 뮤흐, 마티나 게덱, 세바스티안 코치, 울리히 터커가 출연한 <타인의 삶>이라는 독일영화 입니다.
대강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민들의 정치이념을 감시하는 직업을 가진, 동독의 비밀 경찰 비즐러, 그는 어느 누구보다 냉철하고 애국심이 투철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의심해 본 적 없으며, 마치 기계처럼, 무감정한 일상에 아무런 의문없이 살아가는 듯이 보입니다. 화면에 보이는 그의 일상은 아주 단순하고 건조해 보입니다. 비밀경찰로서의 일과를 마치고 들어가는 집에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철두철미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의지에 투철한 그 이지만 웬지 모를 허허로움이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집니다.
그런 그의 레이더 망에 두 연인이 잡힌다.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이자 여배우인 크리스타. 불만많고 말많은 예술가 답지않게 정부의 방침에 너무 고분고분 잘 따른다는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크리스타에게 반한 장관이 드라이만의 꼬투리를 잡아내고 싶어하는 덕에 비즐러는 24시간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됩니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 당하는 자.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서로를 향해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서로는 만나게 됩니다.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의 삶에 귀기울이던 비즐러는 그들의 진실한 사랑과 신념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들에게서 사랑과 연민과 애정을 알게 되는 비즐러의 삶에는 조용한 파문이 입니다. 그러나 그 파문은 조용하되 치명적일만큼 강한 것입니다.
두사람의 사랑의 대화를 흐뭇한 표정으로 음미하는가 하면, 결정적으로 자살한 스승이 생일선물로 보낸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라는 악보를 보고 드라이만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비즐러는 그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피아노 선율에 비즐러는 아주 깊숙한 내면을 찌른듯이 보엿습니다.
드라이만은 연극계에서 퇴출당한 스승의 자살에 자극을 받아 동독의 암울한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로 합니다. 자신의 집은 도청이 되지 않고 있다고 굳게 믿는 드라이만은 작가 친구들과 서독잡지의 편집장까지 불러다가 음모를 꾸미고 그런 그들의 불순한 일거수일투족을 동독정부에 보고해야할 비즐러는 오히려 드라이만을 그들의 위협에서 구해내기까지 합니다. 끈질기게 드라이만을 도와줬던 비즐러는 비밀경찰에서 우편배달로 전락하여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까지 4년을 우편물 검색을 하며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릅니다. 그러던 어느날 베를린 장벽은 무너집니다.
드라이만은 자신 만큼은 도청이나 감시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철저하게 도청 당하고 있었소] 그는 자신을 도청했던 사람 HGW XX/7 코드명 비즐러를 발견하게 되고 그가 오히려 자신을 도와 주었음을 알게 됩니다. 드라이만은 초라한 우편배달부가 된 비즐러를 먼발치에서 지켜만보고 발길을 돌립니다. 그는 고맙다는 말대신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라는 책을 2년 뒤 출판합니다. 서점에 걸린 드라이만의 대형 사진을 보고 서점에 들어간 비즐러는 그의 신간을 펼쳐봅니다. 비즐러가 펼쳐본 그책의 첫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포장해드릴까요? 라고 묻는 서점직원의 질문에 이 책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서 희미하게 미소짓는 비즐,. 영화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비즐러가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변하고 마는 모습에서 영화는 마치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국가체제 안에서 훈련받고 길들여진 비즐러가 갈등하고 번민의 시간을 지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출세를 거머쥘 기회까지 버려가며,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아가는 그의 변화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타인의 삶>은, 5년간 그들을 감시하게 된 비즐러가 결국 그들을 돕고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며 나아가 그들의 삶에 동조하게 되었고 결국 자신이 그들의 삶으로 살게 되었다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드라이만에게는 자신을 감싸준 비밀경찰 비즐러의 삶이 <타인의 삶>일 수도 있고, 자유와 인권이 억압된 그 시절, 비즐러는 국가에 충성스러운 가면을, 드라이만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느정도는 정권에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가면을, 그들 모두는 저마다의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삶이야말로 곧 <타인의 삶>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한 가지 이상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그들처럼 우리 역시 나만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밀한 내면의 실체,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을 은닉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날 돌아보면 내 영혼을 팔아 넘기고 있었던가! 하는 짙은 회의가 자신을 다 집어삼켜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내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기거나 상실한, 혹은 팔아버리고 마는 삶이 아닌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 한 곡이 멋지게 펼쳐지는 삶을 고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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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
제목 '착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 그리고 책의 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책을 너무나 고마운 HGW XX7에게 바칩니다.
그들의 사랑을 눈 감아준 라즐로 작전 이후 우편물 취급소에서 일하게된 비즐로. 우연히 서점에서 너무나 익숙한 제목의 책을 발견한다.
책을 건네는 점원이 "포장해드릴까요?"라고 묻자 비즐로는 대답한다.
"아뇨. 절 위한 것입니다."
독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하여 7개 수상 부문.
최우수 작품 과 감독상
마지막 장면에 그 표정, 게르트 비즐러 역의 울리히 뮈에는 남우 주연상을, 게오르크 드라이만 역의 세바스티안 코흐는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은미씨도 영화 좋아하는구나. 정말 좋았죠. 두번이나 보고,
어쩌다 한 번 더 보게 되었어요.
오월이 오면 영화번개 한번 칠까요.
찬 맥주도 마시면서. ^!~
VR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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