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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4일 23시 38분 등록

아버님이 돌아가신 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다. 간암으로 1년 반 가까이 투병 생활을 하신 때문에 암과 싸워야 했던 당신은 물론이거니와 집안 식구들도 많은 고생을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신 아버님이 우리 식구들에게 주신 가장 큰 교훈은 “건강”이었다.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 모든 일이 다 부질없는 것이다”는 가르침을 난 어린 나이에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런 때문인지 난 운동을 좋아했고 또 꾸준히 해왔다. 중년에 접어든 지금까지 몸이 아파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는 일이 거의 없는 건강 체질을 갖게 된 것은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이런 가르침 덕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강 중에 한 가지 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오복의 하나라는 ‘치아’건강이다. 이빨도 유전 성향이 있는 건지 몰라도 난 어렸을 때부터 이빨이 잘 썩는 편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앞니 2개가 상했다. 그 때 이 앞니를 잘 치료하지 못한 것이 고생의 시작이었다.

인근 친척 되는 치과의사 분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그 분의 치료 기술상에 문제가 좀 있었던 듯싶다. 처음 2개가 상했던 것이 옆의 이까지 번져 4개가 되고, 그게 다시 6개로 늘어났다. 과자, 사탕 등 이빨에 좋지 않은 간식을 무분별하게 많이 먹고 이빨을 잘 닦지 않은 것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문제 있는 치과의사를 만난 것도 큰 불행 중 하나였다. 여하튼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앞니 6개를 발췌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

앞니를 발췌하고 브리지(Bridge : 고정식 틀니)를 하게 되었을 때 만난 치과의사는 다행스럽게도 나와 운(運) 때가 맞는 분이었다. (치과를 여러 곳 다녀 본 후 갖게 된 느낌인데, 환자와 궁합이 맞는 의사가 있다는 걸 나는 이제 운명처럼 믿는다. 잘한다고 소문난 치과라도 뭔가 불편하고 나와 잘 안 맞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동네 조그만 병원의 그저 그런 치과의사인데 잘 맞는 의사가 있기도 하다.) 의사 선생님은 훌륭하게 시술을 하셨고, 난 그때 해 넣은 브리지를 30년 이상 사용했다. 영구치가 나고 10년 정도 있다가 발췌를 한 후 브리지를 끼고 30년 이상을 살았으니, 어느 게 내 진짜 이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 때 브리지는 잘 만들어 졌고, 오랫동안 내 진짜 이빨인 것처럼 불편 없이 사용했다. 그런데 작년 말 이 브리지의 기둥부분에 조그만 구멍이 생겼다. 수명이 다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주에 30년 이상 내 이빨 노릇을 하며 정들었던 브리지를 떼어내고 임플란트 시술을 하게 됐다.

요즘은 임플란트를 많이 하므로 전혀 어려울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내 경우는 좀 달랐다. 발췌한지 30년이 지나서 잇몸 뼈가 많이 쪼그라든 상태이므로 뼈이식이 필요했고, 위쪽 앞니 부분이라서 더구나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임플란트는 윗니가 그리고 앞니 쪽이 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걱정이 있었다. 임플란트를 완성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임시치아를 사용하는데, 브리지를 떼어내고 나서 임시치아를 하기 전까지 한동안을 앞니가 없는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치과의사는 잇몸의 붓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적어도 열흘 이상, 가능하면 오랜 기간 동안 임시치아 없이 지내는 게 좋다고 했다. 회사 출근도 해야 하니 가능한 한 빨리 임시치아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20년 이상 사용할 임플란트인데 모양을 고려해서 잇몸에 무리를 주어 가면서 까지 임시치아를 빨리 해 넣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마디로 앞니빨이 왕창 빠진 ‘영구’가 된 상태에서 열흘 이상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니 어떻게 앞니빨을 휑하니 뚫어 놓고 직장생활을 하란 말이냐? 그게 시방 말이 되는 소리냐? 회의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가끔은 불만에 가득 찬 고객을 만나서 달래야 할 일도 있는데... 앞니빨 없이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하란 말이냐? 하기야 불만 고객을 상대 할 때는 이빨 없는 게 도움이 좀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화가 난 고객이라도 이빨을 드러내며 살며시 웃어주면..... 화가 좀 풀어지지 않을라나?

걱정스러웠다. 브리지를 떼어내면 발음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바람이 많이 새지 않을까? 팥죽 할아범 같아 보이지 않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치과의사는 30년 이상 사용하고 있었으니 브리지를 떼어내는 게 내 이빨을 뽑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 거라는 얘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내 물음에는 “글쎄요? 어쩔까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겠지요.” 하는 말이 전부였다.

마음의 준비? 어떤 게 마음의 준비인가? 이빨 빠진 영구 모습을 자꾸 상상해보고 그 모습에 익숙해지라는 얘기인가?

지난 수요일 드디어 시술에 들어갔다. 먼저 마취를 한 상태에서 브리지를 떼어냈다. 마취 때문에 얼얼한 가운데에서도 앞니 부분이 허전한 게 느껴진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임플란트를 심는 작업이 시작 됐다. 6개의 이빨 부위에 임플란트 4개를 심는 공사다. 잇몸을 가르고, 끌을 댄 채 망치로 두드리고, 드릴로 뚫고, 끌로 깍아내고... 난 채석장의 돌덩어리가 된 느낌이었고 치과의사는 석공 같았다. 그런데 이놈의 석공이 중간 중간에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해댄다. “야! 이거 심각하네... 김간호사, 이거 (#%^*&^*@) 되겠어? (^*&#%^*@) 해야 되는 거 아닐까? 야! 이거 정말 힘들겠는데!” 간호사와 자기들끼리의 용어를 써가면서 뭔 말을 해 대는데, 안 그래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터에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써진다. 이거 잘 되고 있는 건가?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2시간 40분에 걸친 난공사였다. 하지만 공사는 비교적 잘 마무리 됐다.

이제 몇일 지나고 나니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헌데 뼈이식 한 부분은 꿰맨 곳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해서 크게 웃지도, 말을 많이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입을 놀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말할 때 보면 앞니빨을 이용하는 발음(치음)이 잘 안 된다. 발음이 새기도 하거니와, 그런 발음을 하려면 입술에 힘이 들어가면서 입술이 위로 올라가서 앞니 부분이 여지없이 드러나 버린다. 바로 앞니 빠진 영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는 거다. 아이고!!

시술을 하고나서 난 정말 이빨 여섯 개를 뽑아버린 상실감 같은 것을 느꼈다. 기분이 우울해지고, 이제 내 몸의 일부분을 자연에게 반납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이빨 여섯 개지만 30년 뒤에는 이 몸 전체를 반납해야할 상황이 올 거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거야. 그것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정말 오래 남지 않은 거야.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지금 읽고 있는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 난 정말 마음에 드는 한 구절을 건졌다. 「집과 가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너의 몫에 만족하거라. 신이 너에게 지혜의 책을 내리셨다. 그 충고를 따르도록 해라. 성실히 일해라. 아이들을 잘 길러 미래를 준비시켜라. 그리고 너의 이웃을 도와라. 그리하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고려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까보다.
IP *.5.9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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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5.04 23:48:49 *.178.33.220
전 이야기에서 마스크(가면)를 벗으라고 했는데
정산형아는 마스크를 써야겠다고 말하는군여. -__-;;

한수기누나한테 심각한 사정이 있어 이번 오프수업에 빠질 수 있다고
얘기했다는데 혹시 이 대공사 때문인가여?

그렇다면 마스크 없이 와도 무방하니까 암 걱정말고 오시길..
우리끼리 한번 웃어버리고, 수업하면 되자나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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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8.05.05 07:32:12 *.39.173.162
큰형
고생하셨습니다.

내 이가 다 얼얼합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된다니 그래도 다행스럽습니다.
앞으로 20년은 거뜬한거죠.

항상 건승하시길 기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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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모자
2008.05.05 18:52:44 *.160.33.149
고생 많았네.
한 50년 써야할테니 천천히 꼼꼼하게 잘 하라하시게.
썩은 이 버리고 새 이들을 얻었으니 맛있는 것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인생으로의 두 번째 출발인 셈이네. 축하하네.

이는 빠졌지만 수업에는 빠지지 않길 바라네.

수업 면제 받으려면 두가지 서류를 올려야 하네. 잘 보고 착오 없도록 하시게.

1. 앞니 빠진 얼굴 정면 사진 올리게. 입을 크게 벌려 차아가 있던 자리를 보이고,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얼굴이 명료하게 보이게 찍게. 눈을 감지 말게.

2. 치음을 열개 발음해서 녹음해 올리시게. 바람이 쉬~쉬하고 많이 새야하네. 촛불이 꺼져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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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연구원
2008.05.05 23:49:02 *.250.10.50
부디 사부의 명령대로 행하시어 수업을 면제 받기를 바랍니다. 혹여 이글을 채찍으로 알고 무리하게 수업에 참석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오매불망 그대의 UCC동영상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팬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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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5.06 11:52:50 *.51.218.151
푸하하하아아아아----
사부님, 그거 별나라 유머입니까? 갈수록 멋지십니다. 감동 짱 먹었슴다...


"이는 빠졌지만 수업은 빠지지 않길 바라네."

넵, 조교의 직권으로 결석하는 사람,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라도 나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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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5.06 13:45:54 *.97.37.242
ㅎㅎㅎㅎ, 사부님 유머에 찌뿌둥했던 잇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입니다.
사부님, 이는 빠졌지만 수업은 빠지지 않겠습니다! (이빨 앙!~ 물고)
제자는 스승 따라간다고...
사부님도 좀 빠진게 있지만 수업은 빠지지 않으시쟎아요? ㅋㅋ (죄송^^)

前 연구원님,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것 같아 눈물납니다. 빨간모자 사부님이나 소은 조교님과는 근본이 다른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군요. 오늘 같이 화창하고 따뜻한 날엔 햇살 같이 비춰주던 선배님이 더 그리워져요. 연구원 수료 축하드립니다.
글구, 선배님 동영상보다 더 좋은거 보여드릴께 그날 오세요. 왕창 빠진 실물로 보심이... ㅎㅎㅎ

재우, 홍스야 걱정해줘 고맙다. 여러분들 염려 덕분에 상태가 좋은 편이야. 토욜날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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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6 21:48:06 *.41.62.236

어쩐지 구여운 영구 오라버님이 기대 만발 됩니당. 므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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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
2008.05.06 23:17:23 *.239.140.223
많이 부으실텐데...다들 경험이 없어 그저 치아만 없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힘내십시요...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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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5.07 07:28:35 *.244.220.254
소년(?) 같은 솔직함과 순수성을 저희들이 좋아하는거 아시죠?
뒤따라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맑은 모습 보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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