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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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낯선 남자와 한 이불 덮은 사연
우기의 끝이 보인다. 막바지라 아쉬웠는지 지금 사이공 하늘은 무지막지한 장대비를 쏟아 내는 중이다. 건기는 슬슬 몸을 풀고, 우기는 끝을 향해 간다. 우기에 내리는 비는 대부분 국지성호우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시커먼 구름이 빠르게 돌아다니며 장난치는 아이처럼 아이스버킷을 여기 저기 기울이고 다닌다. 예보는 없다. 예측도 있을 수 없다. 하늘이 꾸물꾸물해지거나 빗방울이 한 두 방울 온다 싶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지체 없이 비를 피하든지 판초 우의를 덮어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낭패를 보게 된다. 대신 호우는 길지 않다. 한꺼번에 모두 쏟아내면 깔끔하게 물러나 빛나는 태양에게 하늘을 양보한다. 어느 날, 아내는 하늘이 맑았을 때 늦깎이 불어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차였다.
여기까지 쓰고 난 뒤 이 글을 이어갈까 말까를 망설인다. 제목이 선정적인데다 사연을 읽고 나면 마치 낚시 글에 걸린 듯 허무한 결말에 서로가 난감할 수 있겠다 싶어서다. 3초를 망설이고 다시 이어가기로 한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 잘도 잡히던 택시는 그날 따라 꼭꼭 숨어버렸고 클릭하면 곧바로 달려오던 Grab (동남아지역 자가용 공유 택시 앱) 택시도 자취를 감췄더란다. 일이 나려 그랬는지 오랜만에 영업용 오토바이를 잡아 탔고 유난히 맑은 하늘에 시원한 맞바람 맞으며 기분 좋게 가던 중에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길이었으므로 젊은 오토바이 기사 청년은 속도를 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아내와 하나의 판초 우의를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우악스럽게 상상하기 싫게 같이 덮었단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청년은 젊었다. 그의 넓은 어깨 안으로 판초 우의를 함께 썼고 밖은 쏟아지는 비로 시끄러웠으나 이불 안은 포근했다고 전한다. 가늘게 비치는 우의 밖 풍경을 실눈을 하고 봤고 오토바이가 덜컹거릴 때마다 청년의 옆구리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가 했단다. 나는 호탕하게 (보이려) 웃었다. 좋았겠수. 추임새도 느긋하게 (보이려) 넣었다.
나는 아내가 지디 (G-Dragon, 본명 권지용) 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TV 유튜브에서 가끔 지디를 챙겨가며 검색할 때 사실 온 집안의 전원을 내리고 싶다. 내 이름의 이니셜도 지디와 같아서 가끔 ‘지디’를 옆에 두고 다른 지디를 찾느냐고 말하면 더러는 이 놈이 드디어 미쳤나 하는 듯 놀라기도 하고 더러는 완벽하게 못 들은 체 함으로써 부인한다. 나는 내 아내의 다른 남자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중년이 지나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될 때가 온다 해도 그것만은 생각하기 싫다. 그런데 가끔 사소하지만 내 아내의 남자들이 이렇게 생활 속에서 느닷없이 생겨날 때 나이에 맞지 않는 질투라는 게 생겨나는 것이다. 질투는 자기가 못 가진 것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데 원동력 할아버지가 있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질 수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으므로 나에게 더는 질투가 필요 없는데도 가끔 일렁이는 감정의 끝을 따라가 보면 그것은 값싼 질투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혼자서 피식 웃는다.
내 감정선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아내는 결국 회심의 한방을 날리며 놀리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그 남자가 말이야, 어휴, 젊더라니까.”
아, 베트남 살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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