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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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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1일 23시 52분 등록
글쓰기 전문가들이 글쓰기 훈련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기’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나 스티븐 킹 등 대부분의 글쟁이들은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쓰라’고 말한다.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 구양수(歐陽脩)도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했다. 즉 다른 이의 글을 많이 읽고, 깊게 사색하면서 많은 글을 쓰다 보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글쓰기 훈련 방식이다.

이런 훈련 방식이 글쓰기에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방법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보다는 ‘제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양이 많아지면 질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질적으로 많이 읽고 쓰기보다는 제대로 읽고 쓰는 것이 맞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메시지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맞는 훈련 방식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다음과 같은 글쓰기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연애편지처럼 읽고 쓰라.”,

“연애편지처럼 읽고 쓰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읽기와 쓰기로 나눠서 살펴보자.


연애편지를 읽는 마음과 자세로 책 읽기
조선 중기의 문신 이덕수(李德洙)는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이런 독서는 많이 읽기나 빨리 읽기와 완전히 다르다. 러브레터를 읽었던 경험을 기억하면서 다음 글을 읽어보라.

“사랑하는 그대! 무서운 폭풍을 피해 도망쳐온 보잘 것 없는 시골 주막의 이 조그마한 방에서 나는 당신께 글월을 올려야겠습니다. 서글픈 D시에서 제 마음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낯선 사람들 틈을 헤매고 다니는 동안에는 당신께 글월을 드릴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지금 이 오두막집에서, 이 외로움 속에서, 눈보라가 미친 듯이 창문에 휘몰아치는 이 좁은 방안에서 맨 처음 당신의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자, 내 마음을 엄습한 것은 당신의 모습과 추억이었습니다. 아! 그대여, 그토록 성결하고, 그토록 다정하던, 아아, 최초의 행복했던 순간이 되살아납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대가 눈치챘듯이 이 글은 누군가에게 쓴 연애편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보낸 러브레터이다. 나는 괴테의 책을 읽었거나 눈치가 빠른 독자를 속이기 위해 글에서 네 글자를 바꿨다.

만약에 그대가 사랑하는 이에게 러브레터를 받는다면 어떻게 읽겠는가? 아마도 ‘독서의 기술’에서 모티머 아들러(Motimer J. Ardler)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읽을 것이다.

“사랑에 빠져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들은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의 견지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의 견지에서 부분을 읽는다. 콘텍스트와 애매성에 민감해지고,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 진다. 말의 색깔과 문장의 냄새와 절의 무게를 알아차린다. 심지어는 구두점까지도 고려한다.”

많은 이들이 강조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책을 읽는 방법은 연애편지를 읽듯이 책을 읽는 것이다. 연애편지처럼 책을 읽는 것은 집중해서 꼼꼼히 읽고 깊이 음미하고 철저히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책의 정수를 빨아들일 수 있다. 많이 읽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면 좋은 책들을 리스트 업해서 마음을 다해 제대로 읽는 것이 좋다.


연애편지처럼 글쓰기
이외수 선생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설가인 김영하 역시 “연애편지 쓰듯 글을 쓰면 반드시 감동적인 글이 나온다.”고 말한다. 연애편지가 감동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논리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글쓰기의 기술’의 저자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강미은 교수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강 교수의 생각에 내 생각 두 가지를 더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애편지는 독자가 분명하다. 독자의 취향과 성격, 수준이 분명하고, 단 한 명의 독자만 만족시키면 된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글은 없다. 그러니 핵심 독자를 정하라. 그리고 그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라.

그대는 자신의 글을 어떤 사람이 읽어주길 바라는가? 그 사람이 이 글을 읽고 무엇을 얻고 느끼기를 바라는가? 많은 사람도 필요 없다. 한 사람만 마음속에 그려라. 그리고 그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 노력하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열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어렵다. 그런데 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여러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정말 그렇다.

둘째, 연애편지는 목적이 분명하다. 연애편지는 대체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확실하고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기와 같은 글쓰기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글의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목표가 분명하면 글쓰기가 한결 쉬워진다. 여기서의 교훈은 이것이다. 확실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글을 써라.

셋째, 연애편지를 쓸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하게 된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것처럼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최선을 다할 것이고, 적어도 대충대충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부탁을 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모두를 쏟아 붓는다.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시집을 몇 번이나 뒤적이게 되고, 영화 속에서 명대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이의 잘 쓴 연애편지를 참조하기로 한다. 고쳐쓰기를 귀찮아하는 이더라도 연애편지를 쓸 때만은 그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마음과 재능과 정성을 다하는 것만큼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방법은 없다.

넷째, 연애편지는 좋아하는 대상에 관해 쓴다. 많은 이들이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함께 공명하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자신이 좋아한다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해 관심과 공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관심 없고 공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쓰면서 읽는 이에게 그것을 바라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언어적 사기이다. 좋아한다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모르면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아는 것은 소용이 없다.

다섯째, 연애편지는 사랑으로 쓴다. 연애편지를 쓰는 원동력은 깊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사랑만큼 강력한 에너지가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길면서도 간단한 러브레터는 1875년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레쿠루르가 애인인 마르렌느에게 보낸 것이었다. 이 편지에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jet' aime)”라는 말이 1백 80만5천 번이나 되풀이해서 쓰여 있었다. 사랑이라는 에너지는 이런 것이다. 그 넘치는 에너지가 글을 준비하고 쓰는 과정을 이끌어주기 때문에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글에 투영되기에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연애편지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정성들여 쓴 연애편지는 적어도 읽는 이에게 그 사람의 마음은 보여준다.

이런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연애편지는 좋은 글이 될 수 있고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 관한 것, 그 사람을 넘어서 세상까지 달라보이게 된다. 그런 마음과 태도에서 쓰는 글은 이전에 쓴 글의 수준을 넘어선다. 도약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조 시대의 문인 유한전이 김광국이라는 사람의 수장품에 부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문장은 그래서 절묘하다.


연애편지처럼 글쓰기 훈련법
좋은 글을 쓰는데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만 들라면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들겠다. 물론 많이 쓰는 것, 많이 생각하는 것, 많이 읽는 것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기는 어렵다. 애정이 없는 일을 지속적으로 잘하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신이 내려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허무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소재, 사람, 대상)에 대해 쓰는 것이다. 종이 한 장을 꺼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자. 떠오르는 대로 5개만 적어보자. 5개를 적을 때 쯤이면 5개가 더 떠오를 것이고, 10분이면 10개는 적을 수 있을 것이다. 그 10개가 글쓰기 훈련을 위한 소재이다. 리스트는 중간에 바꿔도 좋고 추가해도 무방하다. 리스트는 지도가 아니라 글쓰기의 출발점 역할만 해주면 된다.

글쓰기를 연습할 때는 분량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 반드시 그 분량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만큼은 쓰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매일 쓴다. 이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을 쓴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소설가인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하루에 200백자 원고지 열장, 낱말로는 2천 단어쯤을 쓴다고 밝혔다. 그는 3개월 이내에 초고를 끝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하루에 열장 씩, 3개월을 쓰면 책 한 권 분량이 나온다. 변화경영 사상가인 구본형은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 동안 글을 쓴다. 그에 따르면 1년에 1권 정도의 책이 나온다.

이런 방식은 좋다. 하지만 좋은 방식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이지 훈련 방법이 아니다. 글쓰기에 있어 연습은 필수지만 연습 방법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훈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믿고, 자신에게 맞는 훈련 방법을 정해서 따르면 된다. 매일 아침 6시에 A4 2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기로 규칙을 정하고 그대로 실행한다고 해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일 채워야 하는 분량이 고역이 되어서 포기하기 쉽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처럼 시간이나 의무감이 좋은 글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글쓰기 방법이 와 닿지 않는다면, 마음을 다해 읽고 써보자. 양보다 질로 승부하고 싶고 글쓰기 연습에 공력을 담아 제대로 쓰고 싶다면 그렇게 해보자.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쁠 것도 없고 안 될 이유도 없다. ‘연애편지처럼 쓰기’를 글쓰기 방법으로 정했다면 조금 여유 있고 유연한 방식을 취해보자. ‘매일 일정한 시간대에 매주 정해진 분량을 쓴다’. 예를 들어, ‘매주 완성된 한편의 글과 초안이 완성된 한편의 글을 쓴다’든지, ‘매주 한편의 글을 완성하고 다른 한편을 쓰기 위한 주제 설정과 자료 준비를 마친다’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지금까지 이야기 한 연애편지처럼 글쓰기 훈련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좋아하는 주제를 매일 일정한 시간에 매주 정해진 분량 이상 마음을 다해 쓴다.”
IP *.6.17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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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희
2008.05.12 00:41:39 *.41.62.236
상업적인 책과 좋은책의 구분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차에
해답을 봤네요. 선배들의 글을 더 많이 볼 수있으면 하고 바라던차라 더 반가웠구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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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린
2008.05.12 03:05:00 *.118.175.234
홍승완 님의 글을 읽고 책읽기에 있어 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 모든 여인들을 사랑하려는 소망을 가진 '카사노바'였던 겁니다...ㅎㅎ..저는 여자인데 여자의 경우에는 '카사노바'에 대응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가 않네요. 누구 생각나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아직도 그 원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책 읽어 치우기'에만 집착하고 있는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는 좀 범위를 좁혀서 '동네 제비' 수준만큼만 읽고 쓰겠습니다. 아직도 너무 많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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