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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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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2일 19시 02분 등록
"오랜만에 선생님도 뵙고, 술이나 한잔 합시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문자메세지 하나를 받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만나는 녀석이었다. 아 그렇지! 다음 주엔 스승의 날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선생님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의 담임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다른 이유로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 때 항상 생각나는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드려, 혹시 내 이름을 잊어버리신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전화를 걸어도, “선생님 저 지환이에요.” 한마디 하면, "어! 그래. 짜식. 잘 있었냐?" 하시며 그 한마디로 내 마음을 쓸어내리게 만드시는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우리는 지금도 잊지 못해, 이렇게 찾아뵙고 있다.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뜬금없이 팥빙수를 먹자며, 학교에는 한마디 얘기도 없이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탈옥(?)시켜 커피숍으로 끌고 가신 분. 소풍날 호프집 하나를 빌려 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껏 놀으라며 술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 물론 술 값도 모두 내주셨다. 스승의 날에 선물을 가져오면 무조건 돌려보낼테니 꿈에도 그런 짓 할 생각 말라고 협박을 하시던 분. 평소에는 그렇게도 온화하지만 정말 잘못했다 싶으면 몽둥이 찜질을 아끼지 않던 분. 그렇게 맞은 우리들이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당연히 우리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지’라고 생각할 만큼 신뢰와 믿음이 갔던 분이었다.

선생님을 뵙기로 한 날. 또 이런저런 옛 기억을 떠올리며 약속장소로 향했다. 한 1년 만에 뵈니 많이 늙으셨다. 워낙 동안이신지라 늙었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는데, 이번엔 확실히 나이 드셨다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이 늙었다는 사실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는 손의 따뜻함과 백만 불짜리 그 미소는 여전했다. 한적한 한정식집에 12명의 친구들과 선생님은 그렇게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기억력도 어찌나 좋으신지, 우리 말고도 제자들이 수두룩 할텐데 함께 자리한 우리는 물론이며, 참석하지 못한 녀석들까지도 한명 한명 이름을 기억해내시며 안부를 묻는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 친구들이 하나둘씩 손에 쥐어드리는 선물을 받으시며, 또 제발 이런 짓을 하지 말라 하신다.

얼마 전 나에게는 또 한 분의 스승이 생겼다. 이 분은 선생님이라 불리지 않고, 사부님이라 불린다. 사부라고 불린다고 해서 그분이 무술의 고수이거나 한건 아니다. 그분에게는 수업을 들은 적도 없었고 만난 적도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평생 동안 사용해도 될 만큼 크고 가치 있는 가르침들을 얻었다. 그래서 난 그분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고, 내가 그분의 글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된 것처럼, 나 역시 글을 통해 나를 그분에게 소개했다. 그는 나의 글을 읽었고, 나를 제자로 허락해 주었다.

이틀 전에는 처음으로 4기 연구원 오프라인 수업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으로만 뵐 수 있었던 그 분과 식사를 하고, 수업을 하고, 맥주도 한잔 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오랫동안 알아왔던 분처럼 편안했다. 글을 통해 알게 된 그 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그 분의 글은 진실했었나보다. 나의 글 또한 그렇게 진실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구원 전체모임에서 양푼 비빔밥을 해 먹자고 제안하시는 분. 개울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물 수제비 뜨기를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분. 관광버스 안에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멋지게 부르시는 분. 이 좋은 봄날 자신의 홈페이지를 시로 도배하고 싶어 시 축제를 벌이시는 분. 맥주를 마실 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동료들과 건물 옥상에서 맥주 마시는 장면을 떠올리면 맥주 맛이 더욱 좋아진다는 분. 직접 만난 그 분은 이런 분이었다.

나에겐 이제 사부님이 있다. 요즘 세상에 사부라는 존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사부님이 있다. 앞으로 스승의 날이 다가올 때는 두 배로 바빠지게 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20배, 200배로 좋을 뿐이다. 공자에게는 70여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부님께서는 100명의 제자를 갖게 될 것이다. 일단 양으로는 사부님이 공자를 앞선다. 나이도 성별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다른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사람들이다. 단지 양만 앞서는 것이 아닐 것이다.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마음, 그것은 공자의 제자들을 훨씬 앞지르고도 남을 것이다.

선생님, 그리고 사부님.
저의 두 분의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


IP *.34.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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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
2008.05.13 11:20:15 *.128.30.50
나도 공자부분 읽으면서 사부님이 떠올랐었는데...
특히 증점의 이야기에서 '나도 너와 함께 하고 싶구나'라고 공자가 말하는 부분에서는 사부님인줄 알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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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5.13 16:54:22 *.122.143.151

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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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2008.05.13 17:32:05 *.248.75.5
우린 어쩔 수 없나봐,
공자의 70명 똘마니들과 우리들을 대치해보는 것,
공자에게서 사부님을 떠올리는 것,
그 말투와 사부님 말투를 비교해보는 것,
다들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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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5.14 09:09:33 *.244.220.254
지환아~ 손금 없어지겠다. ㅎㅎㅎ
아! 그런데 내 손금도 없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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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5.14 15:11:44 *.39.173.162
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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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5 02:28:24 *.41.62.236

지환이 발표할때 느꼈는데 무척 재미있었어.
진중하기만한 줄 알았는데 생기발랄.
함께 공부하게 되어 영광야. 앤누나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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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5.18 22:11:18 *.36.210.11
지환을 보면 난 때로 3기 정화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그녀는 한 해 전 무척 추워했다. 실제로 오돌오돌 떨어대고 많이 애틋하게 찾으며 쉼 없이 노력했다. 한 해 후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우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다고 자타가 공인한다.

지환의 눈가는 언제나 그렁그렁한 샘이 자작자작 스며 반짝반짝 빛난다. 글을 보면 활기차고 깡다구가 있으며 어깨를 대할 땐 약간 오라 붙은 것이 조용한 편이다.

저 깊은 골에 스며들어 있는 불씨 하나!
누군가를 떠올리는 촛불에 그에 대한 염원도 깃든다.

그러나 그보다 언제나 흐뭇하게 민소가 번지는 것은 그의 곁에 당차게 머물러 있는 옹골진 여인네 하나! 그녀라면 더 없이 충분하다는 걸 느낀다.

지환아우야, 애끓는 그대 마음 사부님과 자주 연락하며 활활 소통의 길로 타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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