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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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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0일 09시 54분 등록

불안한 그대에게 (또 나에게)

 

고민, 고민이 많아 보여. 걱정이 많다는 건 두려운 게 많다는 거야. 두려움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거라고들 하잖아, 아마 네가 하는 지금의 걱정에도 실체가 없을지도 몰라. 실체가 없다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거야. 고민 없는 사람은 없지. 고민 없는 사람은 보통 사람은 아니야. 대부분 사람들은 걱정을 안고 살고 있어. 근데 너의 고민은 남다르게 많아. 조금 더 진행되면 걱정과 고민이 병적으로 많아지게 돼.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할지도 몰라. 공황장애, 심인성 불면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지. 삶에는 곳곳에 긴 한숨을 배치해 놔야 해. 리부팅을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해줘야 하는 거야. 책상 위에 컴퓨터도 하는 걸 하물며 사람이. 그런데 너 아니? 사람은 그걸 잘 못한다? 히히. 인간은 컴퓨터와 또 달라서 심호흡, 휴식, 휴가, 안식 없이는 번아웃으로 곧장 가게 돼. 너는 너의 삶에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더 잘하려 하지 않아도 돼. 남들보다 더 뛰어나려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하고, 근사하게 살고 있어. 그래서 말이야, 딴짓해도 괜찮아. 

 

나 일하는 베트남에선 낮 12시 정각이 되면 현지 직원들은 하던 일을 일제히 멈추고 책상 밑에 이불을 펴기 시작해. 그 전에 어떤 급박한 일을 했든, 나는 모르겠고일단 자리 깔고 누워. 그리곤 그대로 잠이 든단 말씀이야. 이렇게 능동적인 시스템 재부팅을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선 일하는 중에 휴식이라 해 봤자 기껏해야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거나 의자에 길게 앉아서 조는 수준이잖아. 책상 밑에 이불 펴고 누워 자는 사람들을 보고 처음엔 놀랐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방법은 사시사철 더운 이 나라에서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편이란 걸 알게 됐지. 오수(午睡)라고도 한다지. 낮잠은 오전과 오후를 이어주고 밤잠은 하루와 하루를 이어주는 훌륭한 리부팅 시스템이었던 거야. 너도 너만의매일 리부팅 시스템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그렇다고 사무실에 침낭을 펴진 마셔. 

 

어느 날 책을 읽다가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어. 남아메리카의 어느 토인 족은 사람이 죽으면 묘지에다가 우리나라처럼 사자 死者 쓰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주듯이을 하나씩 묻어준다고 해. 그러니까 그 토인 족은 죽은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그 종족의 언어 중에 하나를 떼서 그와 함께 그 말을 묻고는 후에 그 말을 쓰지 않는다는 거야.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와 함께 묻히는 어휘는 빈도가 많은 말로 선택된다고 해.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는데 나는 그 뒤가 무척이나 궁금했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문득 스스로 물었어. 나는 어떤 말을 가져갈까? 

 

사람들에게 더 이상 쓰지 못하게 하는 말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어. ‘엄살을 같이 묻으면 사람들은 얼마나 각박해질까? 가만있자, ‘ㅆㅂ을 데리고 가면 이 세상에 스트레스로 넘쳐날걸? ‘사랑을 묻어버리면 사랑에 가려진 온갖 진실들이 드러날까? ‘침묵을 묻으면 소란해 살 수 있을까? 이거 완전 재미있군그래. 누군가, 위대한 권력자가고민이란 단어를 가져가면 우린 즐거울 거야. 그런데 그러고 나면 삶이 약간은 가벼워질 것 같기도 한데 그럼 이렇게 하지. ‘고민은 남아메리카 토인 족 어느 실력자가 가져간 것으로 하고 우리 삶에는 긴장, 초조, 떨림 1g만 남겨두기로 하는 건 어때? ‘작게 되는 것은 한때 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하니 지금 우리 앞을 가로막는 큰 것들은 언젠가 작아지게 될 거야. 걱정 마. 

 

어떤 형태로든 오늘 하루를 살았다면 지금까지 가장 위대한 날을 산 것이니, 어깨에 힘을 쫙 빼고, 박수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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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13:34:03 *.161.10.144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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